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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 ㅣ Bridge Book 시리즈 1
쇠얀 키에르케고어 지음, 이창우 옮김 / 샘솟는기쁨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키에르케고어’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이 생각난다. 실존적 도약을 통해 믿음에 이른다는 그의 철학적 명제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야 한다는 주장은 신앙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의 이런 사상은 베드로전서4장 7절과 마태복음6장 24절에 관한 강화집 <스스로 판단하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기독교세계(christendom, 기독교를 믿는 자들이 보편화된 나라)에서 신앙은 하나의 합리적 상식, 교양에 불과하다. 그 세계에 사는 사람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글이 생각났다. 파스칼은 신앙을 가질 합리적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확률적으로 지혜로운 일이다. 하나님을 믿었는데 하나님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존재해서 우리의 불신을 심판하신다면, 믿음을 갖지 않은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마는가?’ 파스칼은 이런 식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통해 신앙을 가지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때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인간의 합리적 사고방식을 통해 선택한 믿음은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믿음인가?
그런데 이번에 키에르케고어의 글을 읽으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키에르케고어에 따르면, 확률에 의지해 모험하는 것은 진짜 신앙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의 술에 취한 것이다. 키에르케고어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사건을 말한다. 사람들은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술 취했다고 말했다. 반면 사도들은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술 취했으니 깨어나야 한다고 설교했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어는 확률에 기대어 합리적 사고만을 하는 기독교세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야만 술에서 깨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하는가? 기독교세계 안에서 설교자들은 인간의 이성에 입각해 말씀을 설명하고 선포한다. 설교를 듣는 회중은 거기에 감동하고 열광하며 지식을 즐긴다. 하지만 설교자와 청중 모두 정작 스스로 하나님 앞에 단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잊고 있다.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 실존적으로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술 깬 자가 되어야 함을 키에르케고어는 설파한 것이다.
2부에서 키에르케고어는 산상설교 중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라는 말씀에 집중한다. 그는 산상설교가 인간이 지킬 수 있는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윤리라고 말한다. 산상설교의 가르침은 인간이 실천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필요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복음인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세계에서는 인간이 복음의 요구조건을 지킬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또 다시 인본주의의 술에 취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지 않는 것이다. 복음의 진리 앞에 진지하게 서야 한다. 그의 강화집을 읽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나는 참 복음을 알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