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4
닐 웬본 지음, 김병화 옮김 / 포노(PHONO)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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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멘델스존, 그 삶과 음악>은PHONO의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작곡가의 연대기적인 삶 속에 그의 작품들을 배열하고 설명함으로써, 그런 음악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역사적 배경 아래서 음악을 이해하고 감상하게 해 준다. 이 시리즈의 책을 읽음으로써, 위대한 음악가의 작품을 좀 더 깊게 이해하고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된다.  

멘델스존의 작품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의 집안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저자는 다음 문장으로 독자에게 확실히 각인 시킨다 “그 가문은 문화계의 로스차일드 가문이었다. 가문의 역사와 전통은 멘델스존의 자기인식과 세계관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p. 21). 이 책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 모세 멘델스존,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 뿐 아니라 큰 고모 브렌델, 누나 파니 등을 이야기하며 대단한 가문의 신동 멘델스존을 소개한다. 한편, 그가 신동임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처럼 알려지지 않음은 그의 가문이 너무나 대단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부모는 모차르트가 신동임을 선전함으로 재정적 도움을 많이 받아내야 했지만, 멘델스존의 집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펠릭스 멘델스존이 15세에 외조모 벨라 잘로몬으로부터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선물로 받았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다. 그가 신동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펠릭스가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 적절한지 계속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가 멘델스존의 삶에서 1825~1829년을 ‘성숙기로의 도약’ 시기로 잡은 것은 매우 적절하다. 멘델스존의 가족이 19개의 방이 딸린 정원 주택(Gartenhaus)로 이사한 후 펠릭스는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며, <한 여름 밤의 꿈>을 작곡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은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 집에서 누린 가족과의 행복한 시절과 더 관련이 깊을 것이다. <한 여름 밤의 꿈>의 서곡(overture)은 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연 작품으로 평가되며, 앞으로 나올 멘델스존의 다른 작품은 이 장르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작품 안에 있는 스케르초(Scherzo), 야상곡(Notturno), 결혼 행진곡(Wedding March)를 들어보라. 생명력 넘치는 기운과 함께 고상한 기품을 느낄 수 있다. 

‘대여행가(Grand Tuourist, 1829~1832년)’ 시기는 멘델스존이 ‘묘사적 음악’의 가능성을 새롭게 탐구하기 시작한 때였다. 확실히 <헤브리디스, Hebriden>(핑갈의 동굴)은 문학작품에 대한 음악적 반응이 아니라, 어떤 장소의 정신을 환기시킨다(p. 122). 그는 이 시기에 <무언가(Songs Without words)>의 첫 번째 모음집을 완성한다. 그의 주장대로 “음악은 말보다 천 배는 더 나은 내용을 영혼을 채워준다”(p. 124). 이 후부터 펠릭스의 나이 28세에 세실 장르노와 결혼하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우울했던 멘델스존에게 세실과의 관계는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여섯 개의 프렐류드와 푸가>(Preludes and Fugues, Op. 35)를 작곡했다. 이 작품은 <무언가>의 살롱적인 우아함과 달리 풍부하고 안정적인 면이 강하며, 고전주의 작품과의 새로운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멘델스존의 능력이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어머니 레아의 죽음으로 멘델스존 일가의 친밀한 삶은 종결된다. 이 때 그는 <무언가> E단조(장송행진곡, Trauermarsch)를 작곡한다. 펠릭스 멘델스존의 나이 34세에 쓴 <한 여름 밤의 꿈>에 달린 부수음악, Op61은 그의 작품 중 최고일뿐 아니라 음악사 전체에서도 놀라만한 작업이었다. 열일곱에 작곡했던 서곡에 열세 곡을 추가하여 연극 자체에 어울리는 마법을 발휘해 오래전에 방문했던 세계를 재창조해 낸 것이다(pp. 207~208). 이후 멘델스존의 명성은 정점에 있었지만, 그는 그 때 대중의 요구와 사적 창작적 생황의 상충하는 요구 사이에서 괴로워했다. 과중한 업무와 작업으로 멘델스존은 지쳤지만 어려서부터 항상 활동적이 되도록 교육받은 그는 열정이 부족할수록 오히려 시간을 쏟아 부어야 했을 것이다. 과로로 탈진상태에 이른데다 누이 파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멘델스존은 큰 충격을 받고 끝내 회복되지 못한다. 그의 작품 <현악사중주 6번 F단조, Op. 80>은 멘델스존의 고통스런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도 누이처럼 갑작스런 발작으로 3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나는 멘델스존의 개인사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 부록 CD 두 장에 수록된 곡들을 빠짐없이 들었다. 그가 한없이 가깝게 다가왔다. 그리고 멘델스존이 현재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보다 상대적으로 과소평가 받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한 번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 64>을 듣는다. 내가 제일 즐겨듣는 멘델스존의 작품 중 하나다. 이 책의 저자도 지적했듯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아무리 자주 들어도 그 참신함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희귀한 작품이다.”(p. 214).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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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사진 - 사진으로 기록한 현대사의 맨 얼굴, 퓰리처상 사진 부문 70년간의 연대기
핼 부엘 지음, 박우정 옮김 / 현암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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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을 받기 위한 필수요건은 전년도 미국 일간신문에 실린 사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어떤 명확한 수상 규정이 없다. 그야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들은 현대사의 한 장면을 독자에게 깊이 각인시킨다. 엄청나게 다양한 사진들, 100만분의 1초에 역사를 정시킨 사진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기억하고 많은 교훈을 얻는다. 기사화된 글보다 사진 한 장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읽어내기도 하고 깊은 감동이나 충격을 받기도 한다.  

<퓰리처상 사진(The Pulitzer Prize-winning Photographs 1942~2011)>은 AP의 사진국장으로 일했던 핼 부엘(Hal Buell)이 1942년부터 2011년까지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들을 다섯 기로 나누어 정리하고 설명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엄청나게 다양한 사진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 다큐멘터리다. 저자는 이런 사진들이 시기별로 어떤 카메라로 촬영되었고, 각 시기별 특징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라플렉스카메라에서 스피드그래픽으로, 다시 35mm카메라로, 이제는 디지털과 휴대용 위성전화 등으로 사진 기술이 변화하면서 시기별로 퓰리처상 사진들이 어떤 특징을 이루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초기(1942~1961) 퓰리처상 수상작은 대부분 강렬하고 단순하며 마치 포스터 같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이오섬의 성조기’가 대표적인 예다.   

제2기(1962~1969)에는 35mm카메라 덕분에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놓칠까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기술적으로 넓은 범위를 담을 수 있는 광각렌즈와 멀리 떨어진 곳을 찍을 수 있는 망원렌즈 덕에 창의적인 사진기자들은 세상을 다르게 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장면이나 사람을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특종사진뿐 아니라 특집사진도 수상하게 되었다. 사카이 도시오의 사진, <Quiet Rain, Quiet Time>은 특집사진의 진수를 잘 보여준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전쟁은 일시적으로 멈추고, 한 병사는 벙커의 모래주머니 위에 앉아 있고, 뒤에는 또 다른 병사가 총을 들고 조용히 앉아 망을 보고 있다. 폭우로 적의 공격은 멈추었지만, 언제 갑자기 공격이 시작될지 모른다. 격렬한 교전 중 정적이 감돌고 있지만 이보다 전쟁의 긴장을 잘 표현한 사진이 있을까?   

제3기(1970~1980)에 특집사진 부문은 ‘뉴스’와는 점점 거리를 두고, 스토리를 들려주는 기사를 추구하게 된다. 댈러스 키니의 <계절노동자들의 물결>은 당시 미국 계절노동자들의 가난한 생활을 카메라 앵글에 잘 담아냈다. 그들은 형편없는 보수에 심한 질병을 앓고 있으며, 노동자 가족들은 시골 뒤안길에 숨어 눈에도 잘 띄지 않았다.   

제4기(1981~2002)는 칼러사진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아프리카 사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에 디지털카메라와 휴대용 위성전화가 등장한 덕이다. 스탠 그로스펠드의 에티오피아의 <기아>, 케빈 카터의 <수단의 굶주린 소녀>, AP사진팀의 <르완다: 죽음의 마을> 등은 이미 신문지상을 통해 우리의 기억의 망막에 깊게 각인된 사진들이다. 이제 제5기(2003~2011)는 진보한 디지털 기술로 그 어느 때보다 지역과 관계없이 더 많은 사진을 더 신속하게 보내게 되었다. 이제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가 숙제로 남았다. 너무 쉽게 사진을 조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 덕분에 나는 세계 현대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퓰리처상 수상작들 대부분을 결코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없었다. 인류역사는 전쟁과 투쟁, 갈등, 가난과 질병, 자연재해와 사고, 화재 등 수많은 고통과 아픔으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특종사진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연약함과 악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몇 몇 특집사진들을 통해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인생은 여전히 살만하고 아름다움과 희망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르네 바이어는 소아암의 일종인 신경아세포종을 앓는 데릭의 투병기를 취재했다. 일자리를 잃은 가난한 가족이지만 심각한 질병 앞에서 온 가족이 단단히 뭉치는 휴먼드라마를 보여준다. 또 프레스턴 개너웨이는 간암으로 죽어가는 캐럴린이 가족들과 함께한 삶을 기록으로 남겼다. 생명의 탄생, 가족, 사랑, 우정, 용기, 헌신 등과 같은 삶의 미덕들이 있기에, 우리네 삶은 고통 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삶의 희망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특집사진들이 더 많이 신문에 실리고 퓰리처상을 수상해서, 전 세계 더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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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소녀 아키아나 - 그녀의 삶, 그림, 에세이
아키아나 크라마리크 지음, 유정희 옮김 / 크리스천석세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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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아키아나를 ‘천재소녀’라고 부른다. 아키아나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고, ABC 방송, CNN 방송에 소개되었을 뿐 아니라, 미국 수정교회(Crystal Catherdral)에도 초청받았다. 현재 세계 20대 화가에 선정되었고, 그의 작품은 작품 당 6억원의 가치가 있단다. 갑자기 등장한 아키아나, 우리는 그녀와 그녀의 작품(그림과 시)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대양’이라는 뜻을 담은 아키아나(Akiane), 이 소녀는 4살 때인 어느 날 엄마에게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하고는 천국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자신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림 그리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키아나의 가족은 신앙의 분위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아키아나는 일반 교육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키아나는 직접 시까지 썼다. 그림뿐 아니라 시도 어디서 배운 적이 없기에 놀라운 일이었다. 또 그림과 시에 탁월한 아키아나지만 다른 사람의 그림이나 시에는 전혀 관심도 갖지 않았다. 도대체 그녀의 그림과 글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냥 타고난 재능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 자신, 사람들이 작품의 영감을 어디에서 주로 얻는지 질문할 때, 분명하게 말한다. “하나님에게서요!”(p. 79).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들도 자신들이 가르치거나 어디서 배운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한다. 아키아나가 사실주의 미술과 시의 분야에서 최연소 영재로 인정받았을 때, 그의 부모들은 고백한다. “놀랍게도 우리가 보상을 받은 것은 열성적인 노력이 아니라 인내와 지속적인 기도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돕기 위해 아키아나의 사명을 진전시키려고 애쓸 때마다 항상 문이 닫혔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노력을 멈추면,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셨다.. 가장 좋은 기회들은 항상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통해서 왔다.”(pp. 98~99). "우리 딸의 사명에 동참하는 것은 복된 일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아무것도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된 것이 없기 때문에 무얼 내세우거나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다.“(p. 102).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천재 소녀, 아키아나>로 착각하고 있었다. ‘천재 소녀’가 아니라, ‘천국 소녀’가 맞다. 아키아나의 재능은 타고난 재능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불충분하다. 그는 특별한 사명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천국 소녀’다. 그녀의 고백처럼, 자신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이 하나님께 향하고 또 자신의 시를 통해 사람들이 계속 하나님께 주목하게 하는 것이 그녀의 사명인 것이다(pp. 96~97). 이것은 그의 작품이 증명한다. 그녀가 8살에 그린 <평화의 왕자>를 보라.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항상 상대를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불과 40시간 만에 완성한 것이란다. 젖니 4개가 빠져나가도 모를 정도로 몰입한 그림이다. 이것을 어찌 8살의 어린 소녀의 단순히 타고난 재능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천국 소녀다! 이 책은 단순히 아키아나의 삶과 그림, 에세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생, 인생의 사명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인생의 신비에 대해 많이 놀라고, 삶의 의미와 사명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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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 休.止 - 세상과 싸울 필요 없습니다
마가렛 휘틀리 지음, 강소연 옮김, 황성원 그림 / 부엔리브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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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목은 <Perseverance, 인내>다. 그래서 저자는 제 1장 첫 번째 글에서 “삶은 인내의 여정”(p. 13)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남은 인생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할까요? 남은 삶을 잘 인내해 내는 비결은 무엇일까요?"(p. 14) 이 책이 던지는 화두다. 이 책은 이 화두를 붙잡고 씨름할 수 있도록, 영적 스승, 수도자, 학자, 시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한두 편 수록하고 그 옆에 저자 자신의 글을 싣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책이 참 예쁘다. 여백이 있는 깔끔한 일러스트 덕에 책이 여유로워 보이고, 책을 들추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듯하다.

저자의 고백처럼, 세상은 강물이 흐르듯 흘러간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은 함께 흘러간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 “미래 역시 현재만큼 불확실할 뿐이다”(월트 휘트먼, p. 24).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해하고 염려하며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확보하려고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현명한 삶의 태도일까? 저자는 분명한 어조로 충고한다. “불확실을 벗 삼아 사는 것, 의외로 아주 건강한 삶을 살게 될 겁니다”(p. 26). 그렇다. 불확실 속에서도 진리는 있고, 우리는 그 진리를 따라 살려고 하면 된다.  

우리는 욕망을 따라 살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의 좌절로 생기는 분노는 우리를 집어 삼키고 불태우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은 내 마음에 반응한 것일 뿐이다. 분명,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게다. 때로 격렬한 감정이 생기더라도, 모든 감정은 그냥 지나가는 것뿐임을 명심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조금은 더 담담한 여유로움을 가질 수는 없을까? 현재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면 된다. 그러면 여전히 절망 속에서도 살아남아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타인과 만나며 살아간다. 그 타인도 고통과 절망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러니 찬사도 비난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남을 탓하지 말고, 남을 향한 공격성을 죽여야 한다. 저자는 8세기경 수도승 샨티디바의 말을 인용한다. “화가 치밀면 나무토막과 같이 앉아 있으라”(p 118). 질투 또한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다. 때로는 실패해도 ‘체념’하지는 말고, ‘용인’은 할 줄 알아야겠지. 저자는 “체념은 흠씬 두들겨 맞은 상태”이고 “용인은 체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그만두기”라고 정의한다(p. 157). 실패조차 포용하면 더욱 다채로운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의연한 마음으로 인생살기, 초연(超然), ‘Que Sera Sera(Whatever will be, will be - ‘일어나게 되어 있는 일은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거나 안달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이 책의 일관된 가르침은 우리는 자신만의 자유롭고 진실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을 지독히도 열심히 살았으며, 때론 기뻤고, 때론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라 하면 또 이렇게 살 것입니다”(p. 234). 토마스 머튼의 글들이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성공에 등 돌리기 - 결과에 기대지 말라. 지금껏 한 모든 일은 가치가 없고 사실 어떤 결실도 없다는 사실에 직면할 것이다. … 이러한 사실에 익숙해지면 결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의 진실에 집중할 것이다. … 결국 삶에서의 인간관계가 모든 답이 될 것이다”(p. 217). "오직 자신만의 진실한 삶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삶이 위태로운 줄타기처럼 보여도, 언제나 현재를 살고자 한다면, 당신 또한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p. 10). 삶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삶에 좌절하거나 분노하거나 또는 삶이 허망하게 느껴질 때, 이 책을 다시 집어 읽을 필요가 있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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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바보새 되어 부르는 노래
최태선 지음 / 대장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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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력이 낯설다. 55년생 목사. 그게 다다. 이력에 관해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어 좋다는 그가 오히려 친근감 있게 다가온다. 그의 글들은 진솔하다. 목회하면서 신앙에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있고, 그가 인용한 시(詩)와 글들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37편의 에세이를 3절로 나누어, ‘삶을 노래하다,’ ‘신앙을 노래하다,’ ‘하나님 나라를 노래하다’라고 제목을 붙였다. 글의 흐름이 부드럽고 읽기 쉽다. 그러나 내용은 결코 신변잡기식 잡담이 아니다.  

‘삶을 노래’한 1절의 글들은 그리스도인 개인의 성품과 삶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체로 따뜻하고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운전대를 잡으면 수도승도 별 수 없고, 남의 글에 대한 이해보단 매몰찬 비난 등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사납고 거친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음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화석습(朝花夕拾)’ 즉, 아침에 떨어진 꽃은 저녁에 가서야 줍는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곧장 줍지 않고 떨어진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취할 줄 아는 여유로움도 필요하고, 번성의 과거와 쇠락의 현재 사이의 실존적 아이러니도 깊이 고뇌할 줄 아는 삶의 열정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또 “가장 가난한 자가 되어 가난한 자들을 돕는다”는 사랑의 수녀회처럼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 남을 섬길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을 노래’한 2절의 글들은 조금 더 급진적이다. 논리와 주장만으로는 교회와 개인의 신앙개혁을 이룰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저자는 윤동주의 시(詩), ‘십자가’에서 “십자가가 허락된다면”이라는 시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인의 표현에는 십자가를 대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기꺼이 십자가로 향하는 그의 결심에도, 그것이 자신의 결단이나 희생이라는 오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지는 은총이라 여기는 시인의 겸손이 느껴집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희생이 아니라 은총입니다”(p. 117). 나 자신부터 신앙 생활하면서 마치 주님을 위해 대단한 희생을 하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저자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눅9:23)에서 ‘지고’는 ‘귀중한 것을 품에 안고 가다’라는 의미가 있는 헬라어 ‘바스타제인’이라고 지적한다. 즉, 십자가는 희생이 아니라 영광이며, 소중이 여기고 품에 안고 가야 하는 것이란다. 나의 신앙생활은 얼마나 무례하고 교만했는지 모른다. 나 자신부터 개혁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삶의 태도와 성품의 바꿈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인도를 겸손히 ‘받아들이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노래’한 3절은 현실 교회를 향해 서슬이 시퍼런 칼을 들이댄다. 그러면서도 균형이 잡혀 있다. 그는 “교회는 개혁하는 장소가 아니라 경축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브래넌 매닝의 글을 인용하며, 교회가 기쁨의 회합, 의와 평강과 희락이 실현되고,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샬롬을 경험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또 현실 교회의 엄청난 경쟁체제를 비판하며, 교회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올림픽 이념)이 아니라 ‘더 느리게, 더 낮게, 더 가까이’ 살려고 노력하는 나라임을 강조한다. 오늘날 교회는 헌금의 비리가 너무나 많지만, 그렇다고 헌금 없는 교회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돈 없이 살 수 없는 인간이 돈 없는 교회를 추구하는 것은 삶이 없는 교회를 만드는 것”(p. 247)이라는 저자의 지적이 날카롭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그 돈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의 문제가 아닌가! 교회는 삶을 나누는 곳이어야 한다.  

저자 최태선 목사가 섬기는 교회에 가보고 싶다. 그가 돈이 없이 산속 집으로 들어갔다는 그의 집에 가서 신앙과 교회, 삶에 대해 저자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 그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앙의 진정성, 진실함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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