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사진 - 사진으로 기록한 현대사의 맨 얼굴, 퓰리처상 사진 부문 70년간의 연대기
핼 부엘 지음, 박우정 옮김 / 현암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퓰리처상을 받기 위한 필수요건은 전년도 미국 일간신문에 실린 사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어떤 명확한 수상 규정이 없다. 그야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들은 현대사의 한 장면을 독자에게 깊이 각인시킨다. 엄청나게 다양한 사진들, 100만분의 1초에 역사를 정시킨 사진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기억하고 많은 교훈을 얻는다. 기사화된 글보다 사진 한 장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읽어내기도 하고 깊은 감동이나 충격을 받기도 한다.  

<퓰리처상 사진(The Pulitzer Prize-winning Photographs 1942~2011)>은 AP의 사진국장으로 일했던 핼 부엘(Hal Buell)이 1942년부터 2011년까지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들을 다섯 기로 나누어 정리하고 설명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엄청나게 다양한 사진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 다큐멘터리다. 저자는 이런 사진들이 시기별로 어떤 카메라로 촬영되었고, 각 시기별 특징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라플렉스카메라에서 스피드그래픽으로, 다시 35mm카메라로, 이제는 디지털과 휴대용 위성전화 등으로 사진 기술이 변화하면서 시기별로 퓰리처상 사진들이 어떤 특징을 이루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초기(1942~1961) 퓰리처상 수상작은 대부분 강렬하고 단순하며 마치 포스터 같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이오섬의 성조기’가 대표적인 예다.   

제2기(1962~1969)에는 35mm카메라 덕분에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놓칠까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기술적으로 넓은 범위를 담을 수 있는 광각렌즈와 멀리 떨어진 곳을 찍을 수 있는 망원렌즈 덕에 창의적인 사진기자들은 세상을 다르게 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장면이나 사람을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특종사진뿐 아니라 특집사진도 수상하게 되었다. 사카이 도시오의 사진, <Quiet Rain, Quiet Time>은 특집사진의 진수를 잘 보여준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전쟁은 일시적으로 멈추고, 한 병사는 벙커의 모래주머니 위에 앉아 있고, 뒤에는 또 다른 병사가 총을 들고 조용히 앉아 망을 보고 있다. 폭우로 적의 공격은 멈추었지만, 언제 갑자기 공격이 시작될지 모른다. 격렬한 교전 중 정적이 감돌고 있지만 이보다 전쟁의 긴장을 잘 표현한 사진이 있을까?   

제3기(1970~1980)에 특집사진 부문은 ‘뉴스’와는 점점 거리를 두고, 스토리를 들려주는 기사를 추구하게 된다. 댈러스 키니의 <계절노동자들의 물결>은 당시 미국 계절노동자들의 가난한 생활을 카메라 앵글에 잘 담아냈다. 그들은 형편없는 보수에 심한 질병을 앓고 있으며, 노동자 가족들은 시골 뒤안길에 숨어 눈에도 잘 띄지 않았다.   

제4기(1981~2002)는 칼러사진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아프리카 사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에 디지털카메라와 휴대용 위성전화가 등장한 덕이다. 스탠 그로스펠드의 에티오피아의 <기아>, 케빈 카터의 <수단의 굶주린 소녀>, AP사진팀의 <르완다: 죽음의 마을> 등은 이미 신문지상을 통해 우리의 기억의 망막에 깊게 각인된 사진들이다. 이제 제5기(2003~2011)는 진보한 디지털 기술로 그 어느 때보다 지역과 관계없이 더 많은 사진을 더 신속하게 보내게 되었다. 이제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가 숙제로 남았다. 너무 쉽게 사진을 조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 덕분에 나는 세계 현대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퓰리처상 수상작들 대부분을 결코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없었다. 인류역사는 전쟁과 투쟁, 갈등, 가난과 질병, 자연재해와 사고, 화재 등 수많은 고통과 아픔으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특종사진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연약함과 악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몇 몇 특집사진들을 통해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인생은 여전히 살만하고 아름다움과 희망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르네 바이어는 소아암의 일종인 신경아세포종을 앓는 데릭의 투병기를 취재했다. 일자리를 잃은 가난한 가족이지만 심각한 질병 앞에서 온 가족이 단단히 뭉치는 휴먼드라마를 보여준다. 또 프레스턴 개너웨이는 간암으로 죽어가는 캐럴린이 가족들과 함께한 삶을 기록으로 남겼다. 생명의 탄생, 가족, 사랑, 우정, 용기, 헌신 등과 같은 삶의 미덕들이 있기에, 우리네 삶은 고통 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삶의 희망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특집사진들이 더 많이 신문에 실리고 퓰리처상을 수상해서, 전 세계 더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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