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커피기행 1 - 고대 문명과 예술을 찾아 떠난 세계 커피기행 1
최재영 글.사진 / 북스타(Bookstar)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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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하면 사족을 쓰지 못하는 나에게 「세계 커피 기행」1, 2 권은 하루 일과를 마친 저녁 시간 좋은 가을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작가는 20여년 공무원 생활을 하고 난 뒤 무려 15년 동안 54개국을 여행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각 나라에서 직접 겪은 문화와 커피에 관해서 세련되지는 않지만 정감 있게 묘사합니다. 전문 작가가 아니라서 글이 유려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이 직접 발로 체험한 것들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오히려 커피 향기가 솔솔 묻어나옵니다. 사진도 직접 찍고, 그림도 직접 그렸다니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수채화는 수준급이고, 커피에 관한 소개는 이미 전문가 수준인 듯합니다. 정원사에 의해 가꿔져 핀 꽃만이 향기가 절정이고 모양이 최고인 것은 아니죠. 그보다 들꽃의 절박한 어여쁨이 더 가슴을 벅차게 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라면 이 책이 주는 대리만족의 행복감을 느낄 것입니다.

  커피 기행답게 커피의 고향 에티오피아에서 시작해서 이집트,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간 1권은 각 나라의 고유한 커피 문화 이야기를 꽃피워 올립니다. 비엔나에서 맛본 실망스런 비엔나 커피, 카운터 앞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테라스에 앉아 마시는 것보다 엄청 싸다는 이탈리아 커피점, 걸죽하고 찐한 모르코 커피, 스위스의 쉬납스 커피, 등. 글과 사진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되는 않는군요. 그래도 1장 뒤편에 있는 ‘커피학 개론’과 각 장 여기저기에 있는 ‘카페 팁(cafe tip)’은 커피에 관해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합니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이 책의 제목이 무색할 뻔 했습니다.

  2권은 1권에서 다 다루지 못한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을 거쳐 러시아와 아시아로 넘어 옵니다. 아시아와 북미, 중남미의 커피 기행을 읽으면서 이제 커피는 세계인 모두를 사로잡았음을 느낍니다. 이전에 BookStar에서 출판한 「신의 커피」를 읽으면서 커피의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는데, 이 책의 저자도 그 책을 읽었다고 하네요. 저자가 한없이 부러워지는군요. 사진, 그림에 일가견이 있는 저자는 세계 커피의 경험과 세계 문화 예술의 체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네요. 저자가 한 없이 부럽습니다. 그 마음 저자의 글 솜씨를 따라 딱 두 글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하.” 이 책, 세계 여행을 꿈꾸는 자들을 미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하하.” 나도 떠나고 싶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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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가 잃어버린 주기도문
김형국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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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주기도문」, 제목이 매우 도발적입니다. 그러나 날카롭고 분명한 지적입니다. 한국교회는 주기도문을 잃어버렸습니다. 주기도문은 공동체의 기도이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온통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기 원하는 이기적 기도만을 드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지요. 한국교회는 주기도문을 달달 외워 항상 기도하지만, 주기도문의 정신과 가치는 이미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주기도문은 예배를 마치는 형식적인 기도로 전락했습니다. 수많은 교회의 기도회(새벽기도, 금요기도회, 등)와 공식 예배의 대표기도를 들어보면 온통 물질의 부요함과 육체의 건강, 세속적 성공, 그리고 교회의 외적 성장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자 김형국 목사는 한국교회가 주기도문의 의미와 그 정신을 제대로 배우고 그 정신에 따라 주기도문을 드린다면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주기도문 설교집을 내놓았습니다.

  “1장, 우리, 하나님 나라 백성”과 “2장 하나님 나라 백성의 기도”는 산상수훈 안에서 주기도문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주기도문이 ‘하나님의 백성’만이 드릴 수 있는 기도임을 분명히 합니다. 산상수훈대로 살아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산상수훈대로 살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하나님 자신을 구하는 기도이며 인격적인 기도로서, 하나님이 묻고 내가 답하는 기도”(pp. 64~72)라고 했습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주기도문이 담대한 기도인 이유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도자 자신이 바뀌길 원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3장부터 10장까지는 주기도문의 단어와 문구 하나하나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매우 꼼꼼히 살펴봅니다. 너무 자세해서 독자들이 논점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시리즈로 주기도문을 설교한 것임을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으며 분명 필요한 것입니다.

  본래 주기도문은 간략한 언어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도문을 가르치면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하셨을까요? 주기도문의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잘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기보다 주기도문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변화되어 주기도문대로 살아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마지막에 있는 “주기도문으로 드리는 기도의 예”(pp. 342~347)는 주기도문의 가르침과 의미를 각인시키고, 주기도문을 실제 날마다 드리는 우리의 기도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나 자신을 위한 기도’, ‘내가 속한 교회를 위한 기도’, ‘한국교회를 위한 기도’로 풀어 놓은 것은 참신했습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기”(pp. 350~363)에 나오는 질문들은 자세한 설명으로 흐트러진 주기도의 의미들을 정리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이 주기도문을 잃어버린 짝퉁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뼈아프게 도전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에게도 기도를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 나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어 주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살게 하소서. 나의 삶을 통해 주의 이름이 높아지고 주님 뜻이 온전히 드러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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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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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故) 박완서 작가의 수필집 「노란집」은 2000년대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집에서 쓴 글들을 그의 딸 호원숙 씨가 묶어 2013년 8월 열림원에서 출간한 따끈따끈한 책입니다. 올 추석 명절 휴가 기간 중 읽었습니다. 정말 추석 명절에 읽기에 제격이지 싶습니다. 이미 작고(作故)하신 부모님들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나의 부모님은 일제 강점기에 결혼하셨고, 만주에 사시다가 해방을 맞이하셨습니다. 오직 어머니하고 단 둘이 월남하신 아버지는 육이오 전쟁에 참전하시어 부상까지 당하셨죠. 어머니는 생전에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야야, 내 고생한 이야기를 쓰면 소설책 몇 권은 나오겠다.”

  노부부의 삶을 짧은 소설 형식으로 쓴 <그들만의 사랑법>을 읽는 내내, 영감님과 마나님은 바로 나의 어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늘 배고팠던 잔인한 계절, 그 봄의 기운은 노부부에게 젊은 날을 기억하게 하고,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나이 들어 눈귀 어두워 서로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도 그 분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며, 희망으로 서로를 일으켜 세웁니다. “지금 노부부를 소통시키고 있는 건 말이 아니라 봄기운인 것을”(p. 17). 부모님 살아생전 서로에게 먼저 죽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당신 손으로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고 싶으셨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삼 년 되는 해 어머니 곁으로 가셨습니다. 추석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 여름 낮의 꿈’에 나오는 내용이 마음에 아른 거렸습니다. “부엌 쪽에서 마나님이 설거지하는 소리가 점점 아득해진다. 마지막 날까지 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죽음도 이렇게 달콤하게 왔으면, 그러면서도 그에게 가장 익숙한 생활음, 그릇 달그락대는 소리에 안타깝게 매달리다가 마침내 스르르 놓아버린다.”(pp. 54~55).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삶은 때로 고단하고 누추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 묘사된 것처럼 아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을 발견하고, 초라한 것에서도 오묘하고 위대한 그 무엇을 발견하며 사는 삶이 좋은 삶 아닐까요? 이 책을 읽으며 삶의 잔잔한 행복들을 느낍니다. 나의 부모 세대가 지난한 삶 속에서도 가족 사랑과 자연 사랑으로 희망을 놓지 않았듯, 나도 고단한 삶 가운데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위로받으며 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이 책 곳곳에 담겨있는 이철원 화가의 그림들이 참 정감 넘칩니다. 박완서 작가의 글과 어쩜 이다지도 잘 어울릴 수 있을까요? 박완서 작가의 글은 봄기운처럼 따사롭고 봄꽃처럼 향기롭습니다. ‘황홀한 만남’에서 작가는 이렇게 씁니다. “상사초가 피어난 건 저 달빛을 만나고저 함이었구나, 떨리는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 삶은 누추하기도 하고 오묘한 것이기도 하여 살다 보면 아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과 만나질 때도 있는 것이다”(pp. 270~272).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이 문장이 나의 마음에 계속 메아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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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세계문학 마음바다 2
조지 오웰 지음, 안경환 옮김 / 홍익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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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가인 늙은 수퇘지 ‘메이저’의 연설과 이후 자연스럽게 일어난 반란으로 매너 농장은 동물들의 손에 넘어갑니다. 동물들은 ‘동물주의 이념’과 ‘일곱 계명’을 공포하고, 두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지도자로 인정받습니다. 결국 농장 안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스노볼은 축출되고 나폴레옹이 권력을 장악합니다. 나폴레옹은 친위견들을 활용해 농장의 모든 것들을 통제합니다. 동물들은 노예처럼 일만해야 했습니다. 노동조건은 더욱 힘들어졌지만, 동물들은 체제에 순응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나폴레옹이 추진한 풍차 건설은 실패하지만, 나폴레옹은 이 실패를 통해 오히려 더욱 강력한 독제체제를 구축합니다. 모든 통계는 조작되고 농장의 삶의 질은 좋아졌다고 선전합니다. 이의를 제기하는 동물은 사형 당했기에 모두들 침묵할 뿐입니다. 지배계급인 돼지들은 전쟁의 승리를 선전하며 나폴레옹 정권의 위대함을 찬양합니다. 이런 체제 속에 순진한 다른 동물들은 처절하게 이용만 당하고 죽어갑니다. 대표적으로 말(馬) ‘복서’가 그랬습니다. ‘복서’는 자신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자유의 몸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이기적인 욕망을 제어하고 위대한 농장의 건설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바로 위대한 ‘동물농장’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세월은 흐르고 돼지 몇 마리를 제외하고 저 옛날의 ‘반란’을 기억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농장은 여전히 번창해갔지만, 동물들의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배계급인 개와 돼지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를 한 번, 인간을 한 번, 그리고 인간을 한 번, 돼지를 한 번, 번갈아 쳐다보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돼지이고 어느 쪽이 인간인지 도무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pp. 168~169). 「동물농장」은 동물들을 빗대어 인간의 어리석을 풍자한 우화소설이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에 대한 냉소로 가득한 반유토피아 정치소설입니다. 홍익출판사에서 나온 「동물농장」은 번역자 안경환 교수의 친절한 ‘해설’과 오웰의 서문 부록들, 그리고 문학 평론가 정여울 씨가 번역자와 인터뷰한 내용들을 수록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동물농장」을 저자 조지 오웰의 저작 동기를 이해하고 저자의 관점에서 책을 읽어내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조지 오웰은 1900년대의 러시아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칼 마르크스(Marx)와 레닌(Lenin)의 ‘공산당 선언’에 따라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고, 권력투쟁에서 트로츠키기(Trotskii)는 축출되고 스탈린(Stalin)이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지도자 돼지들은 쉽게 이런 인물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거의 몰락한 현시대에서 오웰의 이 소설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오웰은 모든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로 이 책을 썼기 때문에, 지금도 이 책은 시의성(時宜性)이 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유명한 책 「1984」을 읽으면서 전체주의에 대해 느꼈던 오싹한 감정을 이 책에서도 느끼게 됩니다. 어디 전체주의가 공산주의뿐이겠습니까? 제국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오늘날 모든 사회 속에 전체주의의 모습은 보편적으로 일어납니다. 「동물농장」의 마지막은 아무런 희망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어떤 정치와 국가 체계도 결코 유토피아를 이룰 수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사회에서든 인간 개개인은 온전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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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이광호 지음 / 홍익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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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유명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이 두 분의 명성은 이미 알고 있으나 그들의 사상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에게 책 제목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는 매우 흥미롭고 도전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 율곡은 퇴계의 제자이며 둘 다 위대한 성리학자 아니었나? 두 분이 생각을 다투었다니 무슨 의미일까?’ 이런 질문을 하며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얼마 전에 율곡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읽은 터라, 성리학(性理學)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겼습니다. 퇴계의 <성학십도(聖學十道)>와 율곡의 <성학집요(聖學輯要)>에 따르면, 학문은 스스로 성인(聖人)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닫고 인간답게 사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나이(35세 차이) 뿐 아니라 기질과 생각 그리고 지향점이 달랐습니다. 편역자인 이광호 교수는 ‘해제’(여는 글)에서 두 사람이 “같은 유학자이지만 유학에 대한 이해의 관점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힙니다. 퇴계는 “궁극적 진리 곧 하늘을 향하고”(p. 12) 있었던 반면, 율곡은 ”땅에서 살아 움직이는 현실을 향하고 있었다“(p. 13)고 말합니다. 과연 퇴계와 율곡이 주고 받은 시와 편지, 그리고 이 분들과 관련된 문서들을 통해 이런 것들을 확인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이 분들이 주고받은 시(詩)에서, 서로 생각이 달라도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고 존경하는 옛 선비의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분 사이에 오간 편지의 내용은 차분히 읽어도 다 이해하기 어렵군요. 내가 유학 특히 성리학에 관해 오리엔테이션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그럴 것입니다. 편역자의 해설이 크게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유학(儒學)의 도는 지선(至善)이라 하는데, “지선에 대한 인식을 격물치지(格物致知), 곧 사물에 나아가 앎을 얻는 것”(p. 53)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밝혀줍니다. 사실, 두 분의 차이는 이기론(理氣論)을 주축으로 하는 성리학의 본질에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관념론과 경험론, 유심론과 유물론의 대립처럼, 퇴계 이황으로 대표되는 이(理)를 중시하는 이상주의와 율곡 이이로 대표되는 기(氣)를 중시하는 현실주의가 대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두 큰 봉우리가 함께 통합되고 어우러진다면, 성리학은 지금도 여전히 인간과 세상을 깊이 이해하는 길을 열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 매우 단단하고 마음에 듭니다. 퇴계나 율곡의 시와 편지, 글들을 먼저 차분히 번역하고 자세한 각주와 해설로 이해를 돕습니다. 그리고는 원문(原文)인 한문 전문을 실었습니다. 편역자의 해설과 여러 글들로 이 책의 가치는 커졌습니다. 책표지도 멋집니다. 홍익출판사답습니다. 퇴계의 <성학십도(聖學十道)>와 율곡의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완독한 뒤, 다시 이 책을 꼼꼼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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