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故) 박완서 작가의 수필집 「노란집」은 2000년대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집에서 쓴 글들을 그의 딸 호원숙 씨가 묶어 2013년 8월 열림원에서 출간한 따끈따끈한 책입니다. 올 추석 명절 휴가 기간 중 읽었습니다. 정말 추석 명절에 읽기에 제격이지 싶습니다. 이미 작고(作故)하신 부모님들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나의 부모님은 일제 강점기에 결혼하셨고, 만주에 사시다가 해방을 맞이하셨습니다. 오직 어머니하고 단 둘이 월남하신 아버지는 육이오 전쟁에 참전하시어 부상까지 당하셨죠. 어머니는 생전에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야야, 내 고생한 이야기를 쓰면 소설책 몇 권은 나오겠다.”

  노부부의 삶을 짧은 소설 형식으로 쓴 <그들만의 사랑법>을 읽는 내내, 영감님과 마나님은 바로 나의 어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늘 배고팠던 잔인한 계절, 그 봄의 기운은 노부부에게 젊은 날을 기억하게 하고,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나이 들어 눈귀 어두워 서로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도 그 분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며, 희망으로 서로를 일으켜 세웁니다. “지금 노부부를 소통시키고 있는 건 말이 아니라 봄기운인 것을”(p. 17). 부모님 살아생전 서로에게 먼저 죽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당신 손으로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고 싶으셨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삼 년 되는 해 어머니 곁으로 가셨습니다. 추석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 여름 낮의 꿈’에 나오는 내용이 마음에 아른 거렸습니다. “부엌 쪽에서 마나님이 설거지하는 소리가 점점 아득해진다. 마지막 날까지 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죽음도 이렇게 달콤하게 왔으면, 그러면서도 그에게 가장 익숙한 생활음, 그릇 달그락대는 소리에 안타깝게 매달리다가 마침내 스르르 놓아버린다.”(pp. 54~55).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삶은 때로 고단하고 누추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 묘사된 것처럼 아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을 발견하고, 초라한 것에서도 오묘하고 위대한 그 무엇을 발견하며 사는 삶이 좋은 삶 아닐까요? 이 책을 읽으며 삶의 잔잔한 행복들을 느낍니다. 나의 부모 세대가 지난한 삶 속에서도 가족 사랑과 자연 사랑으로 희망을 놓지 않았듯, 나도 고단한 삶 가운데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위로받으며 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이 책 곳곳에 담겨있는 이철원 화가의 그림들이 참 정감 넘칩니다. 박완서 작가의 글과 어쩜 이다지도 잘 어울릴 수 있을까요? 박완서 작가의 글은 봄기운처럼 따사롭고 봄꽃처럼 향기롭습니다. ‘황홀한 만남’에서 작가는 이렇게 씁니다. “상사초가 피어난 건 저 달빛을 만나고저 함이었구나, 떨리는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 삶은 누추하기도 하고 오묘한 것이기도 하여 살다 보면 아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과 만나질 때도 있는 것이다”(pp. 270~272).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이 문장이 나의 마음에 계속 메아리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