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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되이 백 년 사는 사람 되지 않으리 - 한세상 자유롭게 살다 간 한국의 풍류 인물 20
김삼웅 지음 / 원더박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진정한 ‘풍류’와 ‘화이부동’의 정신으로 산 자유로운 영혼 20명의 이야기다. 풍류(風流)란 무엇인가? 대개 풍류하면 한량이나 방랑객을 떠올리는데, 이것이야말로 풍류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와 선입관이다. 저자 김상웅은 풍류를 “일체의 삿(邪)됨과 속(俗)됨이 없는 생각과 행동의 인격체”(p. 11)라고 말한다. 즉 올곧게 인생을 살아가되, 때로는 규범과 속박을 뛰어넘어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책 서문 마지막에는 <노자>의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 소개되어 있는데, 꽤나 인상적이다. 흐르는 물이 결코 선두를 다투지 않듯이 치열한 경쟁 체제 속에서 조금 느리더라도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 정도를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 그것이 현대의 풍류 정신인 것이다.
이미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풍류(風流)’를 공자와 노자와 석가의 가르침을 포함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유교는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인간 본성을 살리는 것이며, 불교는 아집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도교는 인간의 허위를 버리는 것이다. 나는 대표적인 풍류 인물로 동양에서는 장자(莊子), 서양에서는 H. D. 소로우를 떠올린다. 소설의 인물로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있다. 이들은 세상에 빛을 비추는 선지자적 아웃사이더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풍류 인물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이 책은 스무 명의 우리나라 풍류인을 소개한다. 인물 선정의 기준은 입신출세에 목매달지 않으면서 화이부동(和而不同, 사이좋게 보이지만 무턱대고 어울리지 않음)의 자세로 세상을 산 사람들이다. 저자는 친일 행적이 있거나 독재 권력에 아부한 자들은 아무리 멋진 글을 쓰고 말을 했어도 풍류인에서 제외시켰다. 그러기에 더욱 이 책이 기대가 되었다. 원효, 김시습, 서경덕, 허균, 김삿갓, 한용운, 이병기, 정인보, 함석헌, 문익환, 장일순 등,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풍류인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특히 ‘무위당 장일순’은 풍류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준다. 그의 호 ‘무위당(无爲堂)’은 인위적으로 무엇인가 만들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삶, 자신의 소유를 비우고 자연 순리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삶의 태도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후에 그는 죽을 때까지 ‘일속자(一粟子)’라는 호를 사용했다. 그는 좁쌀 한 알에도 우주만물이 숨 쉬고 있으니 스스로를 낮추어 작은 씨앗의 생명이 되고자 했다. ‘서각(鼠角)’이라는 호도 사용했는데, ‘쥐뿔’이라는 뜻으로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겸손함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풀벌레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일상의 생활이 경쟁을 도구로 하는 삶의 허영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또한 독재에 맞서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의 막후로 활동했며 치열하게 살았지만, 세상에 함몰되지 않고 생명사상으로 새 길을 열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꾸준히 시(詩), 서(書), 화(畵)를 익혀 일가를 이루었다. 후대에 사람들은 그를 ‘제일 잘 놀다 간 자유인’이라 말했다. 그는 물질만능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는’ 무위자연의 삶을 살았던 이 시대의 풍류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풍류인들이 한없이 부러웠고, 나의 삶을 돌아보며 부끄러워했다.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거나 살아온 삶이 헛헛할 때, 이 책을 읽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