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 성격 급한 뉴요커, 고대 철학의 지혜를 만나다
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석기용 옮김 / 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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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윌리엄 B. 어빈의 <직언: 죽은 철학자들의 살아 있는 쓴소리>(2012, 토네이도)를 읽으며, 스토아 철학에 대해 눈을 떴다. 스토아 철학은 행복한 삶을 사는 법을 알려주는 철학으로 평정심과 절제, 덕 있는 삶에 대해 가르친다. 이 책에서 제시한 네 명의 스토아 철학자들, 세네카, 무소니우스,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의 가르침은 많은 울림을 주었다. 그 후로 그리스 철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져 정말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러던 중 마시모 피글리우치의 <그리고 나는 스토아 주의자가 되었다>를 접하게 된 것이다. 원제목은 HOW TO BE A STOIC : Using Ancient Philosophy to Live a Modern Life이다. 뉴욕시립대학교의 철학교수인 저자는 에픽테토스의 <담화록(Discourses>을 기초자료로 하여 스토아 철학의 고갱이를 흥미진진하게 드러낸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 가르침 중 하나는 아마도 다음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평정심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그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내게 허락하소서.” 이 기도문은 기독교윤리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자신의 설교에서 사용하여 유명해졌다. 그렇다. 인생은 신비한 것이다. 내가 나의 삶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지만, 인간의 힘을 넘어선 일들에 대해 때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평정심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며 무엇이 할 수 없는 일인지 분별해 내는 지혜다.

 

이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 욕망의 규율에서는 자연이 주는 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삶, 우리가 목표를 정하고 이루기를 기대하며 열심히 올바로 살지만, 항상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며 욕망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하는 지혜에 대해 말한다. ‘2. 행위의 수련에서는 스토아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덕목을 설명한다. 이 덕목들은 기독교의 덕목들과 매우 유사하다. 인생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직업이나 부의 소유, 그가 오른 지위와 명예와 업적과는 관계가 없다. 에픽테투스에 따르면, 인간을 좌절시키는 것은 물리적 고통이 아니라 수치, 두려움, 자기 존중의 상실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평정, 대담, 자유 이런 덕목들을 붙잡아야 한다. ‘3. 승인 훈련에서는 삶의 다양한 상황들에 반응하는 법에 대해 가르친다. 죽음에 대해 어떤 인식을 해야 하는지, 분노, 불안, 외로움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등을 가르친다. 부록에 실린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의 계보와 가르침의 정리는 스토아철학을 이해하는 데 너무나 중요한 사상의 배경과 흐름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스토아주의가 금욕, 인내, 체념 만을 가르치는 소극적인 인생관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최선의 삶인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를 살고자하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인생관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기독교인으로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과 기독교, 특히 신약 성서에 나오는 바울의 가르침이 유사점과 차이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 기독교의 윤리와 스토아 철학의 윤리를 계속 알아가고 비교해 보고자 한다. 이 책은 윌리엄 어빈의 책과 함께 스토아주의에 대해 가장 흥미롭고 가르치고 실천적인 도전을 준다. 스토아 철학의 본질을 알고 싶은 자에게 이 두 권의 책을 추천한다. 한 권만 추천하라면 마시모 피글리우치의 책을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의 경험과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곁들여 있어서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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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필리프 J. 뒤부아 외 지음, 맹슬기 옮김 / 다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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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사전에 새대가리우둔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넌 그것도 모르냐, 새대가리야이런 표현을 들어본 듯하기도 하다. 이 책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을 읽으면서, 이런 표현이 새들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새들에 대한 가장 모욕적 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류학자와 철학자가 함께 쓴 이 책에 등장하는 새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새들이 얼마나 지혜롭게 사는지 알게 된다. 더불어 인간이 조금만 힘을 빼고 가볍게 살아가면 자연계는 더욱 아름답고 행복할 수도 있겠다 싶다.

 

새에게서 배우는 삶의 통찰은 무엇인가? 오리의 털갈이를 이클립스(eclipse)라고 한단다. ‘이크립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빈 시간을 의미한다. 새롭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 안에서 무엇인가 소멸하도록 놔둘 줄도 알아야 한다. 이클립스의 시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본래 우리 안에 있었던 힘과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채우는 데만 급급했던 것 같다. 내 책장에는 책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고, 냉장고에는 몇 개월씩 눈길도 주지 않은 식품들이 들어차 있다. 도대체 이 많은 것들은 언제 한 번이라도 사용할 수 있을까? 비울 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새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큰되부리도요뻐꾸기GPS 장치없이도 방향을 잃지 않고 멋지게 비행한단다. 거기에 반해 인간은 일상에서 가야 할 방향과 올바른 길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잃고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유럽울새는 용맹하고 호전적이어서 자기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권력과 용맹함을 혼동하고 외적으로 크고 용맹해 보이는 독수리에 더 감탄하곤 한다. 모래 목욕을 하는 암탉은 얼마나 행복한가? 저자는 여기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지혜를 배우라고 말한다. 현재를 살아내라!

 

이 책은 이런 식으로 매우 흥미진진하게 새들의 습관, 삶의 방식 등을 알려주면서, 거기서 인간이 배울 수 있는 철학을 언급한다. 마지막 장에 나오는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제비이야기가 나에게는 가장 도전적이었다. 자연은 고통이 오래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최후의 순간은 짧다. 반면 인간은 이미 다한 생명인데 억지로 연장하여 더욱 큰 고통 속에서 살도록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제대로 죽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니, 오로지 지금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책, 참 산뜻한 철학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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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 인문학자 김동완 교수의 소소하고 따스한 사색
김동완 지음 / 봄봄스토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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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따뜻해지는 산문집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들었던 교훈과 명언들이 가득 담겨있다. 그리하여 참신하지는 않지만, 간간이 손 가는 대로 읽으니 마음 편안하다. 저자는 사주명리학에 정통한 사람이라서, 자신에게 익숙한 <논어>, <춘추좌전>, <예기>, <주역>, <도덕경>, <명심보감>, 사마천의 <사기>, 등 동양고전에서 좋은 한문 문장들을 발췌하여 실어 놓았다. 글들이 감동을 주려고 억지를 부리지 않아서 좋다. 그냥 물 흘러가듯 저자의 단상(斷想)을 적어 놓았다. <사랑의 삶>, <평화의 삶>, <더불어 삶>, <행복한 삶>, <운명의 삶>, <의지의 삶>, <균형의 삶>, 이러게 7가지 주제별로 느슨하게 묶어놓은 것도 넉넉해 보인다.

 

이 산문집의 제목을 <균형>으로 잡은 것은 인생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지 싶다. 저자는 김구 선생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김구 선생이 관상학 책에서 자신의 상이 영락없는 거지 상임을 알고 비관하여 자살하려다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단다. “관상불여심사(觀相不如心相)” 즉 관상이 아무리 뛰어나도 심상을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김구 선생은 자신의 의지를 따라 관상을 극복할 수 있음을 깨닫고 훌륭하게 살았다. 그의 사주는 역마살이 보이고 거지 상이 보이지만, 김구는 독립자금을 구걸했고 평생 청빈하게 대한독립만을 위해 타향살이를 살았던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역학의 묘미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장점, 단점이 다 있고, 이 둘을 합치면 무()가 된다고 주장한다. 운명은 그렇게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런 균형 감각이 있으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이 존재함을 보게 된다. 그렇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일 것이다. 바둑의 고수들이 한 수 한 수 둘 때마다 균형을 잡고 맛을 남겨놓듯, 주변 돌들과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잡아 반집 승부를 추구하듯, 인생도 그렇게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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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지혜 - 삶을 관통하는 돈에 대한 사유와 통찰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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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유명한 소설 <비터문>의 저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돈의 지혜(La sagesse de l’argent)>라는 제목으로 돈에 관한 에세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돈은 있어도 문제이고 없어도 문제인 애물단지다. 따라서 이 세상에 돈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이 책은 돈에 대해 다양한 생각들에 대해 엄청나게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매력적인 저술(著述)이다.

 

‘Part 1. 숭배하는 무리, 경원하는 무리에서는 돈에 대한 상반된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작가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기독교의 성자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파스칼, 교황청과 개신교 교회, 종교개혁자 칼뱅과 자본주의, 칼 마르크스와 사회주의,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무니에와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에 이르기까지 돈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태도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영미권 사람들이 성()대해 내숭을 떠는 대신 돈에 관해서는 노골적으로 밝히는 데 반해 프랑스인들은 돈을 금기시하며 비판하는 척한다고, 저자는 꼬집어 지적한다. 이는 ‘3. 프랑스에서 돈은 금기다‘4. 미국의 영혼은 돈이다라는 제목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외적으로 돈에 대해 이렇게까지 다양하고 상반된 태도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Part 2. 금송아지를 둘러싼 세 가지 신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돈에 관한 가지고 있는 신화 세 가지를 언급한다. 그것은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믿음과 풍요가 불행을 낳는다는 주장, 그리고 돈에 대한 탐욕 때문에 순수하고 숭고한 사랑도 사라진다는 생각이다. ‘Part 3. 리치 오블리주(rich oblige)’에서는 제대로 돈쓰는 법을 익혀 부르주아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가 죄악은 아니며, 반대로 가난이 꼭 미덕인 것만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 가난은 다양한 의미를 띠게 되었다. 예컨대 중세에는 가난한 자가 하느님의 순례자였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가난뱅이는 게으름뱅이 취급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혁명으로 가난뱅이는 분노하는 민중으로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자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오늘날 빈곤은 현대성의 실패를 보여 주는 것일 뿐이다. 저자는 오늘날 새로운 빈곤자들이 스스로를 웰빙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것은 삐뚤어진 이상화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도 부를 얻기 원하고 이런 욕망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 서론에서 돈의 지혜돈을 갖는 것이 지혜라는 의미도 있고 돈에 대해 의문을 가져보는 것이 지혜라는 의미도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을 통해 어떤 돈의 지혜를 얻었는가? 저자가 결론에서 말한 대로, 돈을 신성시하지 말고, 지나치게 사랑하지도 말고 혐오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렇다. 돈에 대한 양 극단적인 생각을 버리고, 변증법적으로 돈을 대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돈에 관해 좀 더 유연하고 자유로운 태도를 취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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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적 성찰
엄정식 지음 / 메이트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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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생시절부터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명언 몇 개를 알고 있었다. 그 중 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 그리고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는 나의 노트와 일기장에 영어로 기록해 놓았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주제파악하고 생각하며 살자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소크라테스가 한 이런 말들의 진의(眞意)를 알게 되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에우데에모스의 대화에서 델포이 신전 벽에 쓰인 이 글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어본다. 에우데에모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는 재차 묻는다. “자신을 안다는 사람은 자기 이름을 아는 사람인가? 자기 능력을 아는 사람인가?”(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의 추억). 그러고 보니 내가 에우데에모스와 같은 사람이다. 이 유명한 구절을 노트에까지 기록해 놓았지만, 소크라테스가 어떤 의도에서 이 말을 인용했는지, 자신을 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자기 성찰의 삶을 살지 못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은 안다고 말했다는데, 나는 모르면서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나 같이 스스로 깊이 생각하거나 질문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소위 산파술이라는 대화법을 사용했단다. 소크라테스의 변증술은 대화의 기술을 넘어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그의 대화법을 따른다면, ‘너 자신을 알라는 다음 세 질문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둘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셋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은 나의 진정한 욕구와 능력과 의무에 관한 것이다. 이 질문들에 대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갈 때, 올바른 태도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이 책 제목처럼 지금이야 말로 소크라테스적 성찰이 필요한 때다. 이 책의 저자 엄정식 교수는 소크라테스가 살던 고대 아테네와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이 너무나 유사하다고 말한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결구도나 남북한의 대치 상황이 그렇다. 페리클레스의 지도력 아래서 아테네의 경제적 급성장과 개인주의적 민주화의 진전이 지금의 대한민국의 상황이다. 이런 번영이 개인의 욕구 분출, 사회적 갈등, 부정부패, 향락과 퇴폐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도 똑같다. 이럴 때 일수록 소크라테스적 성찰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올바른 대화의 정신을 통해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 잡다한 지식과 정보의 확장보다 우리의 무지를 자각해야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정신 속에서 진리를 찾아갈 수 있다. 삶의 고통을 회피하기보다 고통에 직면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뇌해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소크라테스처럼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생각 없이 분주하게만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대한민국 사회의 실상은 어떤지, 이런 사회에서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도록 도전한다. 삶의 중요한 주제들, 진리, 고통, 사랑, 웃음, 삶과 죽음, 행복 등을 깊이 생각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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