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물이다 조정민의 twitter facebook 잠언록 2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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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랑은 나를 먼저 살리기 때문입니다”(p. 14). 이 첫 문장이 나의 생각을 사로잡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일에 항상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일터에서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들이 꼭 있습니다. 아침에 묵상하며 기도할 때는 그를 사랑하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사랑의 마음은 사라지고 어느새 미움의 감정이 내 마음에 가득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고 하는 것일까요? 두 번째 문장이 답입니다. “사랑은 나를 먼저 살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쉽지 않지만, 사랑하려고 노력할 때, 나는 진정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됩니다. 사랑하기를 포기할 때, 나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니까요. 사랑은 나의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듭니다. “사랑은 가치와 의미를 발효시키는 유일한 효소입니다”(p. 16).

   두 번째 아포리즘도 깊은 감동을 줍니다. “사랑할 줄 모르고 용서할 줄 모르고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내가 먼저 사랑하고 용서하고 배려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내리사랑입니다.”(p. 15). 성경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5:8). 저도 하나님께 이런 사랑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그 사랑으로 사랑해야겠죠.

   나는 자꾸 그 사람은 나와 사고방식도 성격도 너무 달라 함께할 수 없다고 단정 지으려합니다. 세 번째 아포리즘이 말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달라도 같이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만 달라도 못 견디는 것은 단지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다름을 견디고 누리는 힘입니다.”(p. 15) 달라서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없으니 차이를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관한 아포리즘 마지막에 대문짝만한 글씨로 이렇게 써있습니다. “신은 사람을 다 알기 때문에 용서하지 않을 수 없고, 사람은 사람을 다 모르기 때문에 용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 깨달음의 짧은 탄성이 나옵니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맛깔스러운 언어와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인생을 소중하게 하는 가치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음(감사, 감동), 영성(믿음, 변화), 삶의 가치(원칙, 선택), 배움(성찰, 지혜, 성숙), 인격(말, 탐욕, 리더), 관계(이웃, 섬김), 일(성공과 실패, 격려), 인생(꿈, 행복, 평안), 진리(죽음, 시간, 고난, 영원) 등. 어느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주제들입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지 보름이 넘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글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용의 깊이 때문입니다. 나의 사무실 책상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고 조금씩 음미해 보겠습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좋은 잠언록을 얻었습니다. 조정민 목사님의 첫 번째 잠언록 <사람이 선물이다>도 구입해야겠네요.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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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비비어의 끈질김 - 나는 달려갈 길을 다 마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존 비비어 지음, 유정희 옮김 / 두란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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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당신에게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그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라.”(p. 311)

   저자 존 비비어가 머리말에서 인용한 <고스트 앤 다크니스>(The Ghost and the Darkness)라는 영화가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생명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식인사자들과 맞서 사람들, 결국 사자들을 물리쳤다! 이 영화를 보고 싶군요. 신앙이란 이처럼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끈질김이 부족한 사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데이트도, 피아노와 기타를 배우는 일도, 운동하는 것도, 책 읽는 것도 끝까지 하지 못했다는 고백! 이 대목에서 마치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동감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주님이 주신 사명을 끈기있게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비비어는 로마서 5장 17절(“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에 따라 은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값없이 권능을 주셔서 우리의 자연적인 능력을 넘어서는 능력을 갖게 해 주시는 것이다.”(p. 51). 이 정의가 마음에 듭니다. 아니 매우 강력히 도전이 됩니다. 지금까지 저는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선물로 주신 구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은혜에 관한 올바른 정의입니다만, 저자는 이 정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은혜는 항상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능력을 주셔서 우리의 무력함을 이기게 하심으로 나타난다”(“카리스”, 존더반, 「성경용어 백과사전」)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로 예수님처럼 살 수 있게 해 줍니다. 은혜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고, 지혜를 주며,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줍니다. 은혜는 우리 죄만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왕 노릇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줍니다.

   저자가 정리한 것처럼, 끈질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다음 다섯 가지 사실로 무장해야겠죠. 첫째, 누구든 환난을 피할 수 없다. 둘째, 당신이 직면한 사건은 새로운 게 아니다. 셋째, 결코 패배할 필요가 없다. 넷째, 은혜는 모든 싸움을 이기기에 충분하다. 다섯째, 시련을 기회로 삼으라. 이렇게 무장한 끈질긴 그리스도인은 끈질기게 믿음을 붙잡고, 끈질기게 겸손으로 허리를 동입니다. 크고 작은 염려를 끈질기게 내려놓고, 세상 가치관에 취하게 하는 습관들을 정리하며 끈질기게 근신합니다. 악한 영의 공격에 말씀으로 끈질기게 대적하며, 끈질기게 기도합니다. 끈질긴 그리스도인은 결국 끈질기게 완주하여 주님으로부터 영광의 상을 받을 것입니다.

 

   요즘 여러 가지 일로 지쳐 있는 저에게 존 비비어의 「끈질김」은 저를 끈질기게 붙잡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포기하지 말라고 일으켜 세웁니다.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책은 지쳐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도전과 힘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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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와 破字 - 깨뜨리고 합쳐서 보는 흥미로운 한자의 문자유희
홍순래 지음 / 어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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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어려서부터 한자 공부를 해왔습니다. 중학교 방학 때는 아버님으로부터 명심보감(明心寶鑑)을 배우기도 했죠. 대학교 때 사범대학에 다녔는데, 저의 전공과는 상관없는 한문교육과 수업도 청강하기도 했습니다. 한글만 있는 글보다 한자가 들어가는 글들이 더 뜻을 명확히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 책 <한자와 파자>는 마치 멍석을 깔고 그 위에 수많은 한자를 던져 놓고 올라와 한바탕 놀아보라고 초청하는 듯합니다. 한자 놀이마당이라고나 할까요!

 

   ‘파자(破字)’는 한자(漢字)의 자획을 분해해서 다양한 의미를 드러내는 수수께끼 같은 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자가 표의문자(表意文字)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 중 단일파자(單一破字)는 이제 한자를 막 익히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겠다 싶습니다. 예를 들어, 양(羊)의 뿔과 발이 잘려나간 글자는? 왕(王). 임금(王)이 양쪽에 상투 틀고 양다리에 칼 꽂은 것은? 미(美). 이런 식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무조건 수십 번씩 쓰며 죽자사자 외웠는데요. 그 때 이런 식으로 배웠다면 더 즐기면서 한자를 배웠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단일파자보다 다자파자(多字破字)가 더 흥미로웠습니다. 문자유희(word play)를 통한 해학(諧謔)과 풍자가 재미있습니다. 한국의 구비문학(口碑文學, oral literature)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일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선조들은 반정(反正)이나 역모(逆謀)를 꾸밀 때 은밀한 비밀 유지를 위해 파자를 많이 사용했다죠.

   저자가 정리한 피자의 활용 편에서 제시한 이름이나 호(號), 필명(筆名), 상품명과 기관명에 활용한 파자를 읽으면서,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나이별 호칭에 파자 활용’은 왜 연령에 따라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예를 들어, 61세를 화갑(華甲)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화(華)자를 파자하면, 십(十)이 여섯 개에다 일(一)이 하나 더 있으므로 61세라는 의미랍니다. 오호! 이런 깊은(?) 뜻이 있다니! 선조들의 재치가 번뜩입니다. 이런 재치는 파자 해몽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에서도 많이 발견됩니다.

 

   한자를 사용하는 사회에서 수없이 활용되는 파자, 그래서 조선시대의 문헌에 엄청나게 나오는 파자들이 있지만, 파자와 관련된 그 방대한 자료들을 이 책처럼 잘 모아 정리한 것은 지금까지 없을 것입니다. 한자를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좋은 자료집입니다. 조선의 문학작품들을 제대로 읽기 원하는 분들, 한문공부에 마음을 두고 있는 학생들, 한자를 가르치는 선생님들, 자녀들에게 한자를 재미있게 가르치기 원하는 부모님들에게 매우 유용한 자료를 많이 담고 있는 이 책, 파자에 관한한 독보적인 책이라고 감히 평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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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브
존 맥아더 지음, 박주성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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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기계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진정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을까요? 존 맥아더 목사님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교회성장의 권위자들은 성경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데 집중한다. 교회 성장학은 구속받지 못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번영을 설교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램프 속에 갇히 지니(genie)처럼 소개하며 많은 돈을 헌금하는 사람에게 건강과 부와 행복들 제공해 주는 분으로 전락키시고 인간을 주인으로 만든다…”(pp. 76~77).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왜 말씀대로 살지 않고 구원받은 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맥아더 목사님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헬라어 “둘로스”에 집중합니다. 이 단어가 ‘종’(servant)으로 번역되었는데, 더 정확히 ‘노예’(slave)라고 번역해야 한답니다. “종은 고용된 존재이고 노예는 소유된 존재”(p. 23)라는 점에서 분명 구별됩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과 1세기 노예제도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는데, 노예는 전적으로 주인의 소유물이며, 주인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주인에게 헌신해야 하며, 전적으로 주인을 의존해야 합니다. 또 노예로서 개인적인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노예라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그리스도 말씀의 절대 권위에 생명을 건 얀 후스(John Huss)와 그의 영향을 받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를 예로 들어 신자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수많은 성경구절들을 소개해 줍니다.

노예라는 치욕적인 칭호는 그리스도인들이 한 때 가장 폭악한 죄의 노예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폭군에서 풀러나 자비로운 새 주인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속전을 주고 폭군에게서 우리를 사서, 우리를 당신의 노예로 삼으셨다는 은유를 사용합니다. 이제 자비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노예’에서 아들로 “입양”하셨습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사자 존 뉴턴(John Newton)이나 고아들의 아버지 조지 뮬러(George Műller)는 이 은혜의 교리에 대한 삶의 증인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칭호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 치욕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로마 시대에서도 황제의 노예들은 자신들의 황제의 노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드러냈습니다. 그 당시 노예는 자신들이 모시는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대우와 인정이 달랐습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임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 13장에 언급되었듯이, 십자가나 노예제도 같은 성경의 심오한 진리들은 역설적으로 들립니다. 그스도의 노예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유롭습니다.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는 것만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화해하고 연합하는 길입니다. 노예가 되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개념은 온전한 구원을 묘사합니다.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p. 219).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참으로 강력한 도전을 줍니다. 이 문장은 저에게 값싼 복음을 버리고 진정한 복음에 반응하며, 그리스도인답게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헌신하라고 도전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노예(slave)다! 언제나 어디서나 이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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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 : 세기말의 보헤미안 - 새롭게 만나는 아르누보의 정수
장우진 지음 / 미술문화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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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말 새로운 예술(아르느보) 사조의 등장에서 윌리엄 모리스와 알폰스 마리아 무하(A. M. Mucha)를 빼놓을 수 없겠죠. 특히 무하의 작품들에 나오는 여인의 우아하고 뇌쇄적인 모습과 꽃과 문양의 장식들, 그의 작품은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사실 저는 무하의 작품들은 여러 번 접했지만, 그의 삶을 소개하고 작품들을 해설한 책은 처음 접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19세기 말 유럽의 예술적 흐름과 감수성을 파악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으로 반갑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Ⅰ. 세기 말의 한 가운데’는 무하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데 너무나 유용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벨 에포크, 보헤미안과 댄디, 데카당스, 상징주의 ,아르누보, 등과 같은 용어들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간략히 제가 이해한대로 정리해 봅니다.

   벨 에포크 - 제 1차 세계 대전 이전의 전쟁없는 30년의 화려한 시기.

   보헤미안 - 부르주아적 생황방식에 반대하며 살았던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들.

   댄디 - 보헤미안의 방탕과 무질서를 멋부림과 사치로 이용한 부르주아들.

   데카당스(decadance) - 심미적 쾌락주의. 종종 병적인 관능성을 지니고 있음.

   상징주의 - 고갱처럼, 화면의 형태와 색채의 음악적 배치로 사물의 의미와 신비를 드러냄.

   아르누보(Art Nouveau) - 19세기 말 현대적 양식(modern style)으로 인식된 예술사조.

 

   ‘Ⅱ. 인생의 극장 앞에’와 ‘Ⅲ. 무하, 세기 말을 장식하다’는 무하의 일생을 잘 서술하고 있습니다. 무하의 삶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저에게는 너무나 흥미로웠습니다. 체코의 소년이 어떻게 벨 에포크를 구가하던 파리에 가서 생계를 꾸려가며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무대 포스터를 그리게 되었는지, 그가 어떻게 장식 패널과 상업포스터로 인기를 끌게 되었는지, 마치 무하에 관한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 장우진은 어린이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읽는 미술책을 만들었다는데, 아마도 그의 그런 경력이 무하의 인생을 매우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힘이 된 듯합니다. 일반적으로 제가 보아왔던 무하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의 상업포스터였습니다. 저자가 지적하듯, 광고에 있어 무하의 감각은 매우 현대적인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광고주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페르펙타 자전거 포스터와 다른 작가의 자전거 포스터를 비교해 설명한 것은 보십시오(pp. 126~129). 이렇게 무하는 상업포스터, 일러스트, 보석 디자이너, 등으로도 명성을 날립니다.

 

   저는 ‘Ⅳ. 무하양식’과 ‘Ⅴ. 보헤미아를 향하여’에서 무하에 관해 가장 새롭고 인상적인 것들을 배웠습니다. 이곳에서 그의 개인적인 작업들을 보았습니다. 그의 포스터에는 언제나 명랑함과 생기발랄함이 넘쳐나지만, 상업적 목적과는 별도로 개인적으로 작업한 파스텔화는 절망, 좌절, 고독, 죽음에 대한 우울한 전망을 보여줍니다(pp. 198~201). 또 그의 말년에 프라하 시청사의 시장실에 그린 프레스코화(p. 242)와 <슬라브 서사시>(pp. 245~255)는 그가 단순한 상업 장식 화가가 아니라 위대한 예술가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 무하를 위대한 예술가로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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