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 피임, 인구 조절의 대안일까?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 20
재키 베일리 지음, 장선하 옮김, 김호연 감수 / 내인생의책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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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피임, 인구 조절의 대안일까?」은 세더잘(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세더잘 시리즈는 하나의 현안 문제(current issue)에 대한 찬반을 균형 있게 제시하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인문교양서입니다.

  저는 여성의 선택권보다 태아의 생명권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낙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저의 관점을 더 확실하게 다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무분별한 피임으로 문란한 성관계를 부추기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중세기독교에서는 성교 자체를 일종의 죄악으로 보고,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했었죠. 그리고 지금도 일부 극보수적인 기독교에서는 출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부부간의 성행위도 죄악으로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부부의 성관계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이고 결혼 생활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모든 인공적인 피임법에 단호히 반대하는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로마 가톨릭에서 피임법에 대한 “반대의 이유는 … 피임이란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때를 결정할 권리를 사람에게 주는 것인데, 이는 오로지 하나님만의 영역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p. 52). 그러나 이런 식으로 따지면 죽음 직전에 있는 환자들도 치료하는 것도 금지해야 합니다. 생명의 결정권이 하나님께 있으니까요. 물론 하나는 죽일 권리고 하나는 살릴 권리이지만 말입니다.

  한편, 이 책 첫머리에 소개된 ‘벅 대 벨(Buck v. Bell) 소송’ 사건을 통해서도 드러나지만 국가나 정부에 의해 정책적으로 피임법이나 가족계획법을 주도하는 것은 인권을 침해할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기타 어떤 신분에 의해 차별받지 않으며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p. 63)고 발표한 유엔의 세계 인권선언문의 정신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특히 제 3세계에서는 인구조절과 피임은 동전의 앞뒤 면처럼 함께 갈 수 밖에 없는데, ‘멕시쾨티 정책’(pp. 81~82)처럼 선진국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해서는 더욱 안 될 것입니다.

  피임에 관한 것은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나라와 사회와 시대마다 고려해야할 변수가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필리핀 같은 경우 대부분의 국민이 가톨릭교도인 관계로 피임정책이 없고 시민 단체에 따로 예산을 지원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p. 80). 이런 나라에서는 피임 찬성과 반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피임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금욕의 중요성도 함께 가르치는 인생관과 가치관을 올바르게 형성해주는 일이 중요하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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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처럼 형통하라 -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 사는 삶의 원리
김형준 지음 / 두란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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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 김형준 목사님은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한 분임이 분명합니다. 그가 동안교회에 부임하면서 두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하나는 교회의 리더십이 교체되더라도 교인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교회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전환시켜나가는 것이었습니다(p. 8).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위해 리더십의 모델로 여호수아를 생각했고, 그래서 여호수아서를 동안교회에서 설교한 것입니다.

  김형준 목사님은 치유와 회복의 설교자답게 여호수아서를 강해하면서, 핵심 단어로 ‘형통’을 잡았습니다. Part1에서 가나안 전쟁을 시작하기 전 준비과정(여호수아1장~5장)을 다루면서, “형통의 시작: 형통은 두려움을 뛰어 넘을 때 시작된다”라고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Part2에서 가나안 정복 전쟁(여호수아6장~12장)을 다루면서, “형통의 시련: 형통은 전쟁의 상처에 새살을 돋게 한다.”라고 했습니다. Part3에서 가나안 땅 분배(여호수아 13장~21장)를 다루면서, “형통의 유산: 형통은 나눌수록 커지는 오병이어다”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Part4에서 이스라엘 지파들의 관계와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과 세겜 언약 갱신(여호수아 22장~24장)을 다루면서, “형통의 열매: 형통은 끝없이 형통을 낳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각 Part에서 다음과 같은 단어들에 집중합니다. 승리, 희망, 기회, 순종, 회복, 충전, 첫사랑, 안식, 축복, 약속, 형통, 등.

  전체적으로 읽어나가기에 무리가 없고 문체도 부드럽습니다. 여호수아서를 펴놓고 본문을 먼저 읽고 김 목사님의 설교를 본다면 여호수아서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각 설교 끝에 “형통의 법칙”이라고 해서 박스 안에 설교 내용에 걸맞은 믿음의 조언과 충고를 하고 있어서, 여호수아 말씀을 개인의 삶에 적용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아쉬운 점은 성경을 지나치게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한두 군데 보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간의 범죄를 다루는 ‘형통의 법칙11’에서, “전진의 중단과 실패의 원인은 가계의 영적, 심리적 뿌리에서 찾아야 합니다”(p. 136)라고 한 것은 본문의 의도에서 벗어난 가르침입니다. 아간 이야기는 개인 한명의 탐욕이 어떻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리고 공동체에 실패를 가져다 줄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 아닐까요?

  32, 33번째 설교(본문을 여호수아24:14~18과 사사기2:6~10로 잡았네요)의 타이틀이 인상적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신과 자신의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기로 결단합니다. 그 결과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결단하라”(p. 367), “오직 하나님만 남기는 인생을 살라”(p. 337) 오래 오래 마음에 남는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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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 - 위대하신 왕의 가장 고귀한 선택
팀 켈러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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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복음이란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인 복음서는 신약 성경에 네 권 있습니다. 복음서 중 제일 먼저 기록되었다고 추정되는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짧고,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예수님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의 예수님을 ‘종으로 오신 예수님’이라고 묘사하곤 합니다.

  여기, 21세기의 C. S. 루이스(Lewis)라고 찬사를 받는 팀 켈러 목사님이 주옥과 같은 마가복음 설교집을 내놓았습니다. 예사로운 목사님들의 설교집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성경을 보는 눈이 열렸다고 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 팀 켈러 목사님은 삼위 일체 하나님의 현존을 보여주는 예수님의 세례 받으시는 사건을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와 연결시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합니다. “창조와 구속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왜 중요한 것일까?”(p. 33). 답은 이렇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며 서로를 섬기는 분이십니다. 말하자면, 천지창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춤을 추신 것입니다. 사랑의 춤!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바로 사랑의 춤을 추신 것입니다.

  이 책의 part1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합니다. 중풍병자를 향하여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막2:5)라 선언하신 그 분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그리스도(구원자)이십니다.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막2:28)이라 주장하신 그 분은 우리에게 참 안식(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분은 능력이며, 거룩이며, 자비입니다. part2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십자가의 길을 갈 힘을 얻으시고, 대속적 죽음을 결심하시고 실행에 옮기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질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신자들의 삶에 주님의 십자가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켈러 목사님은 이런 표현으로 십자가의 의미를 밝힙니다. “사랑할 수 없어도 사랑을 멈추지 말라”,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 “날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등등.

  켈러 목사님처럼 마가복음의 첫 구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1:1)의 말씀에 집중하여 그 깊은 의미를 잘 드러낸 설교집은 없을 것입니다. 시시껄렁한 설교집이 아닙니다. 복음을 가장 잘 드러낸 신학서, 기독교 변증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감탄하고 밑줄을 긋고 동감했는지 모릅니다. 기독교 신앙에 관심있는 분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특히 마가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하게 권합니다. 꼭,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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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 - 이 땅에서 하늘 시민답게 살아가는 법
송태근 지음 / 성서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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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송태근 목사님이 삼일교회 담임 목사로 가셔서 수요 예배 때 행한 설교 모음집입니다. 전임 목사의 불미스런 일로 많이 상처받은 교우들에게 기쁨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빌립보서를 강해했다고 저자는 밝힙니다. 그러기에 첫 번째 설교에서 바울의 인사말(빌1:1~2)을 전하면서, 그리스도인의 표지로 ‘따뜻함’을 제시합니다. “진리는 따뜻함을 친구로 삼아야 온전한 진리가 됩니다”(p. 12)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군요. 그동안 내홍을 겪은 삼일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져주는 메시지입니다.

  송 목사님은 바울이 겸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인사말에서 교회의 직분인 “감독들과 집사들”을 언급한 것은, 바울이 동역자들을 존중했다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글쎄요? 다른 편지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빌립보서에서만 언급한 것은 빌립보 교회만의 독특한 문제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여기 “감독과 집사들”은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투기와 분쟁으로”(빌1:15) 그리스도를 전파한 자들이 아니었을까요?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지도자로 주도권을 잡고자 했던 감독과 집사들에게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한 것입니다. 어쨌든 사도 바울의 의도를 정확하게 해석했든 못했든, 송 목사님이 해석은 담임목사의 부재 속에서 어수선한 마음으로 있는 삼일교회 부교역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 책의 초반부 설교에서는 담임목사로 사역하는 자신의 마음 자세를 분명히 드러내고 상처 입은 성도들을 감싸 안는 메시지가 넘쳐납니다. 그것은 설교의 제목에도 잘 나타납니다. “은혜에 참여한 자,” “예수의 마음을 품은 자,”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는 자,”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위하는 자” “두렵고 떨리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 등등. 후반부 설교에는 좀 더 힘찬 어조로 회의(懷疑)하고 갈등하는 성도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 “복음을 위해 자유를 절제한다,” “겸손하고 지혜롭게 사역을 돕는다,” “그 무엇보다 은혜를 사모한다” 등등.

  송 목사님은 ‘하늘의 시민권’(빌3:20)을 가진 자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붙잡고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항상 기쁘게 승리하는 인생으로 살아야 할 것을 힘주어 말했습니다. 이것은 이 설교의 일차 대상인 삼일교회 성도들에게 참으로 시의적절한 설교입니다. 설교집을 읽는 내내, 상처 입은 교회를 붙잡고 세우고자 하는 담임 목회자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하늘 시민권자로 자긍심을 가지고, 고결한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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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철학할 시간 - 소크라테스와 철학 트레킹
한석환 지음 / 유리창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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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에 문예 출판사에서 나온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플라톤의 사복음서라고 하는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을 번역하여 묶은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약 60페이지 정도의 많지 않은 분량이었는데, 읽어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페이지 여백에다 소크라테스 스스로가 변론하고 있는 자신의 죄명을 정리하여 적으면서 간신히 소크라테스의 논리를 따라 갔습니다.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그의 주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죽음은 두 가지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죽음이 허무한 상태로 전혀 감각을 갖지 못하는 것이라면, 죽음은 뛰어난 소득입니다. 어떤 사람이 꿈조차 꾸지 않는 숙면을 했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는 죽음이 다른 곳으로의 여행이라면, 훌륭한 사람들을 만날 것이니 그 또한 좋은 것이죠. 소크라테스는 변론을 이렇게 마칩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각기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가 하는 것은 오직 신만이 알뿐입니다.”(「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문예출판사 刊, pp. 53~56). 스스로를 진리를 추구하는 사명을 가진 철학자로 생각하고, 신의 소명을 따르다가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소크라테스, 그의 사상 못지않게 그의 고결한 인격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석환 교수가 「지금, 철학할 시간」(유리창 刊)이라는 책을 냈네요. ‘소크라테스와 철학 트레킹’이라는 부제목처럼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자유롭게 번역 해석하고, 그와 예수를 비교하며 철학함(doing philosophy)에 대해 말합니다. 한 교수가 머리말에서 말했듯,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변론 2.0> 즉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변주곡쯤 됩니다. 거기다가 <서주>는 <에우티프론>를, <옥중 이야기 1, 2>는 각각 <크리톤>, <파이돈>의 줄거리를 쉽게 풀어 썼습니다(p. 8). 이 책, 참 재미있습니다. 저처럼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직역한 책을 어렵게 읽어본 사람은 한 교수가 쓴 책이 얼마나 쉽고 재미있게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그 외의 책들을 소개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철학함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철학은 진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만이 철학을 하므로, 철학은 가장 인간적인 활동입니다. 결국 철학은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법을 알려주는 것인가요? 델피의 신전에 써 있다는 글귀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는 자기 인식에 대한 개안(開眼)을 의미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나됨은 어떤 것인가?’를 계속 질문하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캐묻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습니다. 한석환 교수는 소크라테스의 이런 주장을 재미있게 설명합니다. “캐묻지 않는 삶, 비판적 성찰이 없는 삶은 격화소양(隔靴搔癢), 즉 ‘신 신고 발바닥 긁는 것’과 같은 삶이다”(p. 146). 결국 철학은 자신이 영혼을 돌보고 연마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 너무나 좋습니다.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쉽고 재미있습니다. 부록으로 본문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과 고유명사를 부연 설명할 정도로 친절합니다. 머리말부터 마지막 부록까지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철학책을 이렇게 즐기며 읽을 수 있다니! 이제는 소크라테스 뿐 아니라 한석환 교수의 열렬한 팬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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