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피임, 인구 조절의 대안일까?」은 세더잘(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세더잘 시리즈는 하나의 현안 문제(current issue)에 대한 찬반을 균형 있게 제시하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인문교양서입니다.
저는 여성의 선택권보다 태아의 생명권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낙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저의 관점을 더 확실하게 다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무분별한 피임으로 문란한 성관계를 부추기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중세기독교에서는 성교 자체를 일종의 죄악으로 보고,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했었죠. 그리고 지금도 일부 극보수적인 기독교에서는 출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부부간의 성행위도 죄악으로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부부의 성관계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이고 결혼 생활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모든 인공적인 피임법에 단호히 반대하는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로마 가톨릭에서 피임법에 대한 “반대의 이유는 … 피임이란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때를 결정할 권리를 사람에게 주는 것인데, 이는 오로지 하나님만의 영역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p. 52). 그러나 이런 식으로 따지면 죽음 직전에 있는 환자들도 치료하는 것도 금지해야 합니다. 생명의 결정권이 하나님께 있으니까요. 물론 하나는 죽일 권리고 하나는 살릴 권리이지만 말입니다.
한편, 이 책 첫머리에 소개된 ‘벅 대 벨(Buck v. Bell) 소송’ 사건을 통해서도 드러나지만 국가나 정부에 의해 정책적으로 피임법이나 가족계획법을 주도하는 것은 인권을 침해할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기타 어떤 신분에 의해 차별받지 않으며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p. 63)고 발표한 유엔의 세계 인권선언문의 정신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특히 제 3세계에서는 인구조절과 피임은 동전의 앞뒤 면처럼 함께 갈 수 밖에 없는데, ‘멕시쾨티 정책’(pp. 81~82)처럼 선진국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해서는 더욱 안 될 것입니다.
피임에 관한 것은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나라와 사회와 시대마다 고려해야할 변수가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필리핀 같은 경우 대부분의 국민이 가톨릭교도인 관계로 피임정책이 없고 시민 단체에 따로 예산을 지원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p. 80). 이런 나라에서는 피임 찬성과 반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피임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금욕의 중요성도 함께 가르치는 인생관과 가치관을 올바르게 형성해주는 일이 중요하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