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으로 읽는 동아시아 삼국지 1 - 한중일 동아시아史를 한 바늘로 꿰어낸 신개념 역사서 옆으로 읽는 동아시아 삼국지 1
이희진 지음 / 동아시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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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등학교 시절 국사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선생님은 아직 고등학생들에게는 어려운 사관(史觀)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역사적 사실 그대로의 역사는 없다는 것, 기록된 역사는 이미 해석된 역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자료들을 다루고 역사를 기술하느냐가 중요한데, 아직까지도 한국사를 서술할 때 일제의 잔재인 ‘식민지 사관’에 입각해 기록된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일례로 중국은 대국이었고 한국은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에 불과한 나라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선생님은 단언하셨습니다. 중국에게 조공을 바치는 것은 오히려 중국으로부터 더 많은 것들을 챙기는 고도의 외교적 수단이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근대 메이지 유신을 통해 부국강성(富國强盛)을 이루어 조선을 침략해서는 마치 중국의 속국이었던 한국을 해방시켜주고 근대화시켜 준 것처럼 주장하는데, 이 또한 터무니없는 날조라는 것입니다. 학창시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대체 우리나라는 뭐하고 있었는지 조선 왕조가 한심해 보였고 중국과 일본에 대해 울화통이 치밀었습니다.

  중국의 역사왜곡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울 때,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의 무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광개토왕비는 현재 중국정부가 비각을 세우고 유리벽을 설치했습니다. 그 안에서는 사진도 촬영도 금지입니다. 장군총은 아직도 옛 위엄을 간직하고 있지만, 관리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듯 했습니다. 중국은 고구려의 역사를 마치 자신들의 역사인 냥 서술하고 세계문화유산에 중국의 문화재로 등재하려고 시도한다고 합니다. 또 일본이 독도를 자신들의 땅으로 우길 때, 시간을 내서 울릉도와 독도를 다녀왔습니다. 일본은 중국과도 영토분쟁을 하고 있다지요. 이런 일들이 발생할 때마다 중국과 일본을 욕하기만 했지, 실상 그들의 주장과 주장의 근거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이 책, <옆으로 읽는 동아시아 삼국지1>은 무척이나 흥미롭게 동아시아 역사를 서술했습니다. ‘1부. 문명과 역사의 시작’에서는 청동기 문명인 랴오허(遼河) 문명을 동아시아 역사의 시발점으로 보고 먼저 동아시아 중원의 역사를 기록합니다. 상(商), 주(周),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진(秦), 한(漢)나라로 이어지면서 어떻게 천손(天孫) 사상에서 천명(天命)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天子) 사상이 나오고, 중화사상(中華思想)이 나오게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고조선, 부여와 삼한 ,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을 다룹니다. ‘2부. 분열과 분쟁의 시대’에서는 중국 삼국시대와 진(晉), 송(宋), 등의 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어떤 역학 관계 속에 있었는지 말합니다. ‘3부. 통일의 시대’에서는 중국의 수(隨), 당(唐), 나라의 역사에서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신라와 당의 전쟁 등을 기록했습니다. 마지막 ‘4부. 고대사회의 혼란과 붕괴’에서는 당(唐)나라의 현종즉위에서 멸망 시기에 발해가 어떻게 건국되고, 후백제, 후고구려, 고려가 건국되었는지 흥미진진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의 중화주의(中華主義)과 일본의 황국사관(皇國史觀)이 정권의 장악과 유지를 위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조금은 추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대가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때는 각 부의 앞에 도표로 정리해 놓은 ‘동아시아 연표’가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많은 것을 생각하며 읽은 역사책이었습니다. 저자가 ‘마치는 글’에서 <옆으로 읽는 동아시아 삼국지 제 2권>의 내용을 소개해 놓았는데,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언제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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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3 : 학문이 끝나는 곳에 도가 있다 노자, 도덕경 시리즈 3
차경남 지음 / 글라이더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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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차경남 변호사가 노자의 <도덕경> 51장~81장을 해설한 것입니다. <도덕경>은 학문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도(道)’입니다. 학문은 인간의 머리로 세우는 세계라면, ‘도’는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비우고 떨어내는 순수의 세계입니다(p. 6). 그렇다고 <도덕경>을 이해하기 위해 논리와 이론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뛰어 넘는 것이어야 하겠죠. 그래서 “학(學)이 끝나는 곳에 도(道)가 시작된다”(p. 7)는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지식과 달리 지혜는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 도약(跳躍)하여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自覺)입니다.

  제3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노자의 ‘도(道)와 무위(無爲)’ 사상이 편안한 상황에서 그저 유유자적하면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인간 세상의 환난과 불행을 깊이 통찰하면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도둑질한 영화”를 말하는 53장의 시(詩)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pp. 32~33). 차 변호사는 이를 재치있게 표현합니다. “노자의 무위의 철학은 그 발원지가 하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땅이다!”(p. 39). 사실 <도덕경>은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관과는 달리 현실에 대해 많은 것들을 말합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治大國 若烹小鮮)”(p. 99).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도 ‘무위(無爲)’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위’란 단지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주의 근본이치인 ‘도(道)’를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를 따르는 삶은 물처럼 흘러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자가 물을 좋아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인위(人爲)와 조작(造作)을 버리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적어놓고도 멋있어 보이는데요. 그러나 차 변호사가 지적했듯, 물의 덕을 머리로 이해하기는 쉽지만 몸으로 체득하기는 어렵습니다(p. 237). 그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 양식이니까요! 다시, 1권의 책 제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는 말하여 질 수 없다”(不言之敎)!

  차 변호사 덕에 <도덕경>에 깊이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도덕경>에 대한 해설서를 처음으로 대했지만, 이 책보다 더 쉽고 깊이 있는 <도덕경> 해설서는 찾기 어렵겠다 싶습니다. 노자의 사상을 알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장자의 도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차경남의 <노자1, 2, 3>을 꼭 읽어 보라고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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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2 : 문 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 노자, 도덕경 시리즈 2
차경남 지음 / 글라이더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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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차경남 변호사는 <도덕경>을 아주 쉽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는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도덕경 1~20장을 풀어냈는데, 얼마나 재미있던지 깊이 몰입해 읽었습니다. 차 변호사가 언제 도덕경의 나머지 장들을 풀어낼지 기다렸는데,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라는 부제를 달고 이렇게 「노자2」가 나왔습니다. 1권보다 표지가 세련되었네요. 도덕경 21장의 설명 덕에 <도덕경>이 무엇인지 감(感)을 잡게 되었습니다. 1권에서 <도덕경>은 시(詩)의 형식으로 된 철학임을 배웠습니다. 2권에서는 <도덕경>의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본질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도덕경> 그러면 윤리 책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노자(老子)에게 “도(道)”는 우주의 궁극적 원리나 영원한 이치를 뜻하는 것입니다. “덕(德)”도 윤리적인 덕이 아니라, 도를 체득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정신적인 힘입니다(p. 14). 그러니까 <도덕경>은 윤리 교범이 아니라 우주의 원리를 깨달아 지혜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자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아마도 “무위(無爲)”일 것입니다. 차 변호사는 도덕경 5천자를 용광로에 넣고 끓이면 결국 ‘무위’라는 두 글자가 남게 될 것이라고 재치있게 표현했습니다. 무위란 ‘행위 없는 행위’(doing without doer)이며, ‘무아(無我), 에고(ego)없음, 존재의 텅 빔’입니다(pp. 4~5). 그 텅 빈 존재의 중심에서 우주의 참 진리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도덕경과 도덕경의 해석을 접하면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47장의 “문 밖에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알고(不出戶 知天下)”라는 표현은 득도(得道)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일 것입니다. 붓다도 말했다지요. “땅으로 인하여 넘어진 사람, 땅에 의지하여 일어난다”(p. 256). 넘어진 사람은 땅을 탓할 필요가 없듯, 우리는 마음을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 들여다 봄이 진리를 발견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들여다 볼 때, 중요한 것은 진리를 객관화시켜서는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진리는 하나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 중의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29장의 “천하는 신령한 물건”도 마음에 남습니다. 천하의 도를 깨달아 가면, 과도함(甚)과 탐닉(奢)과 교만(泰)을 피하고 지혜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노자2: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를 읽고 나니, 책꽂이에 「도덕경: 진리는 말하여 질 수 없다」와 함께 가지런히 꽂혀있는 「노자3: 학문이 끝나는 곳에 도가 있다」가 손짓하네요. 3권으로 달려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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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철희 옮김 / 책마루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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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아벨리는 그의 저서 <군주론>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선악을 떠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를 의미한다.” 이것이 내가 학창시절 마키아벨리에 대해 배우고 외운 간략한 정리입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에 대한 선입관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의 냉혹하고 비열한 정치인으로 내 머리에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여러 철학서적에서 마키아벨리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접하면서, 직접 그의 <군주론>을 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어려울 것 같아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죠. 

  책마루에서 펴낸 <군주론>은 제일 먼저 탁월한 편집이 눈에 띕니다. 각주를 페이지 안쪽 세로 면에 배치시켜 각주를 보기 편하게 했습니다. 곳곳에 있는 그림들은 마치 초등학교 고학년 교과서 같은 풍인데,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지만 책을 친근하게는 만들어 줍니다. 책 사이즈와 두께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합니다. 실제로 읽어보니 가독성이 뛰어납니다. 마키아벨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신철희 박사에 의해 번역된 이 책은 저 같은 사람들에게 제격입니다. 무엇보다도 역자가 책 서두에서(pp. 8~23) 마키아벨리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설명하기위해 좋은 질문들과 이에 대한 대답을 서술해 놓았는데, 매우 탁월합니다. 첫 번째 질문,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스트(마키아벨리안)’인가?”라는 질문에 역자는 이런 대답을 제시합니다. 마키아벨리는 국가나 군주의 권력 획득과 유지를 논하면서 도덕이나 윤리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 아니며, 국가나 군주의 생존과 관련된 비상상황인 ‘네체시타’(necessita)에서는 도덕에 반하는 행위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네체시타’ 상황이 끝나면 군주는 다시 도덕과 종교로 돌아와야 할 것을 요구합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치체제부터 차근차근 알려줍니다. 여러 군주국의 형태와 통치 방법을 시작으로 군주가 나라를 보호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을 도덕적 이상적 관점이 아닌 매우 현실적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이상적인 군주상은 도덕적으로 완전한 군주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군주는 신의 은총에 의해 지배자가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수성가해서 권력을 만들어가는 자입니다. 그는 오늘날 ‘포퓰리즘(populism)’의 정치적 전략들을 이미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정치가의 덕(virtue)은 진실한 성품과는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정치가의 덕은 정치적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인 유연성을 의미합니다. 즉, 현재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냉철하게 파악하여 그것을 자신의 정권을 위해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기술이 군주의 덕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철저히 이해관계로 설정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다시 정치에 복귀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이 책을 썼지만, 또 한편으로 주변 국가로부터 조국 이탈리아를 지키기 위해 그는 이 책을 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26장을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에 대한 저의 편견을 깨뜨려 주었습니다. 마키아벨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으시다면, ‘책마루’에서 낸 <군주론>을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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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중심의 교회 - 그 교회에 가고 싶다!
매트 챈들러 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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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도”(고린도전서1장)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금과 은은 내게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사도행전)고 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초대 교회는 오직 복음만을 선포하며 복음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의 삶을 바꾸어 놓았고, 결국 로마 제국 전체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을 뒤엎어 놓을 정도로 진리와 생명력으로 충만한가요? 현대교회는 세상에 많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이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십자가의 복음 밖에 전할 것이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십자가의 복음은 뒷전이고 금과 은을 세상에 보여주려 합니다. 한국교회가 거대한 예배당들을 계속 짓고, 교회 나오면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기복적 거짓 복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보실 때 한국교회를 ‘나의 교회’라고 인정해주실까요?

  미국 교회도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 미국 복음주의자의 차세대 리더 매트 챈들러 목사가 <예수 중심의 교회>를 외치고 나왔습니다. 원제목은 “말씀의 피조물 :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교회(Creature of the Word: The Jesus-Centered Church)”입니다. 그는 교회가 복음에 깊게 연결될수록 성령의 역사는 더 강하게 일어날 것이며, 복음의 구심점에서 멀어질수록 성령의 역사는 희미해지고 교회는 그저 종교적 형식만 갖춘 집단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복음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에, ‘복음 중심 교회’는 곧 ‘예수 중심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부에서 채들러 목사는 요한복음 3장을 통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회복, 로마서 12장을 통해 예수님을 중심으로 연합하는 참다운 공동체의 회복, 그리고 예수님을 중심으로한 섬김의 회복과 참된 복음으로 전도하는 일의 회복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고, 성도들이 영적 각성으로 일어나도록 하는 처방전은 ‘오직 예수’ ‘오직 복음’입니다. 2부는 목회자들에게 주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을 목회 중심에 모시면 사역이 살아납니다. 사역자가 하나님의 은혜에 물들 때,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습니다. 설교도 오직 성경 66권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여 큰 그림 안에서 성경의 메시지만을 선포해야 합니다. 주일학교도 온통 복음으로 물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고, 작은 실무 사역에도 복음의 진실이 담기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3부는 예수 중심, 복음 중심의 교회는 반드시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을 살린다고 말합니다.

  챈들러 목사는 이 책에서 현실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고민하며 성경적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차세대 복음주의의 리더로서 걸맞게 그는 교회에 대한 소망을 놓지 않습니다. 이는 에필로그 제목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현실 교회가 아무리 형편없어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복음이 진리인 이상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교회를 보호하고 승리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가 복음 중심, 예수 중심으로 돌아올 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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