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차경남 변호사는 <도덕경>을 아주 쉽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는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도덕경 1~20장을 풀어냈는데, 얼마나 재미있던지 깊이 몰입해 읽었습니다. 차 변호사가 언제 도덕경의 나머지 장들을 풀어낼지 기다렸는데,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라는 부제를 달고 이렇게 「노자2」가 나왔습니다. 1권보다 표지가 세련되었네요. 도덕경 21장의 설명 덕에 <도덕경>이 무엇인지 감(感)을 잡게 되었습니다. 1권에서 <도덕경>은 시(詩)의 형식으로 된 철학임을 배웠습니다. 2권에서는 <도덕경>의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본질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도덕경> 그러면 윤리 책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노자(老子)에게 “도(道)”는 우주의 궁극적 원리나 영원한 이치를 뜻하는 것입니다. “덕(德)”도 윤리적인 덕이 아니라, 도를 체득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정신적인 힘입니다(p. 14). 그러니까 <도덕경>은 윤리 교범이 아니라 우주의 원리를 깨달아 지혜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자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아마도 “무위(無爲)”일 것입니다. 차 변호사는 도덕경 5천자를 용광로에 넣고 끓이면 결국 ‘무위’라는 두 글자가 남게 될 것이라고 재치있게 표현했습니다. 무위란 ‘행위 없는 행위’(doing without doer)이며, ‘무아(無我), 에고(ego)없음, 존재의 텅 빔’입니다(pp. 4~5). 그 텅 빈 존재의 중심에서 우주의 참 진리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도덕경과 도덕경의 해석을 접하면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47장의 “문 밖에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알고(不出戶 知天下)”라는 표현은 득도(得道)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일 것입니다. 붓다도 말했다지요. “땅으로 인하여 넘어진 사람, 땅에 의지하여 일어난다”(p. 256). 넘어진 사람은 땅을 탓할 필요가 없듯, 우리는 마음을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 들여다 봄이 진리를 발견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들여다 볼 때, 중요한 것은 진리를 객관화시켜서는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진리는 하나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 중의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29장의 “천하는 신령한 물건”도 마음에 남습니다. 천하의 도를 깨달아 가면, 과도함(甚)과 탐닉(奢)과 교만(泰)을 피하고 지혜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노자2: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를 읽고 나니, 책꽂이에 「도덕경: 진리는 말하여 질 수 없다」와 함께 가지런히 꽂혀있는 「노자3: 학문이 끝나는 곳에 도가 있다」가 손짓하네요. 3권으로 달려가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