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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원영 지음 / 불광출판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기독교인의 집에서 태어나, 기독교인으로 교육받고, 기독교인으로 살고 있다. 당연히 불교의 문외한이다. 호텔에서 불교 경전을 조금 읽어 보고, 등산 갔다가 절에 들어가 본 것 외에는 불교와 접해보지 못했고, 스님하고는 말한 번 섞어 보지 못했다. 그러다 이 책의 제목,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접하고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에 열반에 들어가신 법정 스님의 책들을 몇 권 읽었었기에, 불교의 스님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이 책은 참 쉽다. 나처럼 불교의 용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쓰인 것 같다. 수행자의 출가부터 시작해서 수행, 그들의 일상의 생활, 승가를 이루고 사는 공동체 생활의 장소 사찰과 그곳에서의 행사, 계율, 등을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때로는 그 모든 것의 기원이 되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이 모든 삶의 모습들의 정신을 잘 가르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에 대해 나 나름대로 정의한다면,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며, 자기 개혁의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역경(逆境)을 이겨낸 성공이 아니라, 순경(順境)을 벗어버리는 ‘위대한 포기’를 통해 자유를 얻는 길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출가이며, 과정은 승가라는 공동체 생활이며, 마지막은 열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타종교의 입장에서, 출가는 어떤 점에서 가장 이기적인 행동같이 느껴졌다. 자신은 자유를 찾아 깨달음의 길을 떠나지만, 수행자가 떠남으로 해서 남은 모든 자들은 얼마나 고통을 받을까?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함께 이웃 사랑에 있다. 남을 위해 사는 삶이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의 길이라고 가르친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너무 자아에 함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하나, 출가하지 않은 중생들은 아무리 성실하고 올바르게 살아도 깨달음을 얻거나 온전한 자유를 얻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불교를 오해한 것일까? 그 깊은 도를 잘 모르는 나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수행편과 생활편이 특히 인상에 남는다. 스님들이 탁발하는 방식을 읽으면서 물신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좋은 삶의 본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문’과 ‘수행’의 방식을 보면서 참 종교의 단아한 모습들을 보았다. “고요한 가운데 또 다시 치열한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수행자다. 아침이 오는 소리를 들을 줄 알며, 자신을 비워 사유할 줄 아는 수행자다”(p. 99)라는 표현이 마음에 다가왔다. 자신을 비우는 것, 이것은 단순히 자신의 육체를 괴롭히는 고행(苦行)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고요한 마음의 집중 곧 ‘정진’을 하기 위해 안거를 수행하고, “진정한 수행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다른 이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p. 106)이라는 표현에 동감이 갔다. 삼의일발(三衣一鉢)과 주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발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모든 종교의 지도자들이 추구해야할 단순하고 검소한 삶의 모습을 보았다. 또 함께 수행자의 길을 가는 도반(道伴)의 소중함을 배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는 서양철학으로 말하면 에피쿠로스학파의 가르침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피쿠로스(Epicurus)는 ‘우정, 자유, 사색’을 최고의 행복을 위한 조건으로 보았다. 최고의 행복(쾌락)을 추구한 에피쿠로스는 나에게 오두막 하나에 철학을 논할 수 있는 좋은 친구 그리고 먹을 음식이 있으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했단다.
이 책을 통해, 스님들이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자의 길을 걷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았고 이해하게 되었다. 다음에는 직접 불교의 도(道)에 대해 배워보고 싶어진다. 저자 원영 스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지만, 진실한 수행자일 것이다. 이 책 덕분에 앞으로 조금 더 관심을 갖고, 편견없이 불교의 가르침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