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기 연습 - 행복을 만끽하는 평생 축복의 길
정영순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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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신앙의 본질은 ‘나를 비우고(내려놓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라고 믿는다. ‘내려놓기’란 자기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모습과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 하는 외식적인 모습을 버리는 것이다. 이 ‘내려놓기’는 모든 영성의 출발점이다. 하나님과 본체이신 예수님도 자기를 비우시고(내려놓으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빌2:6~8). 신앙이란 이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는 것이 아닌가!(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의 강단에서 외쳐지는 메시지는 ‘내려놓기’가 아니라, ‘채워넣기’다. 기도하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에 근거해 믿음 생활을 하면,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자기중심적이 되고,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위선자가 되어 간다. 기도를 더 많이 하면 할수록 더욱 탐욕스러운 인간이 되어 간다. 그리고 이런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또 하나의 바벨탑이 되어간다. 

이런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정영순의 <내려놓기 연습>은 나름대로 개개인의 신앙과 교회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루터의 이야기를 하면서 제 2 종교개혁의 소망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생활과 교회 생활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자기중심적인 의식, 남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태도, 신앙생활의 외식적인 껍데기, 왜곡된 신앙의 태도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라고 도전한다. 또 교회 생활에서 조직의 틀, 배타적인 태도, 차별적 의식, 정치적 유혹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도전한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내려놓기 연습’을 해야 할 것들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들이 빠져있고, 저자 자신이 올바른 신앙 공동체를 이루려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나의 예만 들어 보자. 그는 타 교회에 대한 배타적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교인이 새로 교회에 등록하면 크게 환영을 한다. 그러나 교인이 다른 교회로 옮긴다고 하면 어떻게 하는가? … 박수를 치고 환송을 하는가, … 배신자와 같이 여기는 경우도 많이 본다. … 같은 주님을 섬기는데 내가 다니는 이 교회면 어떻고 다른 교회에서 섬기면 어떠한가? …내가 다니는 교회에만 하나님이 계시고, 이웃 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말인가?”(pp. 47~48).  

나는 저자의 이런 단세포적인 비판에 못마땅하다. 저자는 어떤 교인이 자신이 다니던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더 근본적으로 물었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나만의 관계가 아니다. 공동체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교회에서 교인들이 왜 다른 교회로 이동하는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에서 멀어져 있다면 자신의 영혼을 위해 옮겨야 할 것이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더 많은 경우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혹은 자신이 교회의 중요한 직분에서 밀려나서, 개인적인 필요(감정적, 물질적, 영적 필요)를 충족받기 위해 옮기는 것이 아닐까? 내가 볼 때,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자기 중심의식, 다른 교인이나 목회자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태도, 교회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려는 마음의 결여, 등)을 내려놓지 못해서 교회를 옮기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사람들을 정죄하면 안 되겠지만, 그들을 박수치고 환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교회가 오히려 이기적인 신앙을 부추기는 것이며, 제대로 신앙을 지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이 책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큰 틀에서는 대부분 옳지만, 비판하는 글들이 때로는 피상적이고 일방적이다. 이런 책을 쓰려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대안을 제시할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프로필에 제시한 것처럼, “한국교회 ‘성장’에 꼭 필요한 등불이 되려는 비전을 갖고” 교회 친절 및 매너 교육, 여성 리더십 등을 교육하는 일들을 한다. 교회 성장을 위해 친절 교육과 여성 리더십을 교육하는 저자에게 한국교회의 문제에 대한 일반적이고 피상적인 비판을 넘어 더 근본적인 비판과 올바른 신학적 대안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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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박형만 지음 / 한국장로교출판사(한장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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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필사(聖經筆寫), 믿음이 돈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는 성경책을 직접 자신의 글씨로 쓴다. 성경의 분량이 만만하지가 않아, 신구약 성경을 모두 필사하려면 하루 4~5시간씩 꼬박 1~2년은 걸린다. 나는 누가 성경을 필사한다면 ‘대단하십니다’하고 칭찬하지만, 속으로는 성경필사는 미련한 짓이라고 차라리 성경을 연구하고 암송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은가 보다. 필사 과정에서 대부분 눈이 침침해지고 허리가 아프고 팔목이 시큰거림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고통의 과정에서 독특한 은혜를 체험한다. 인내하며 말씀을 차곡차곡 노트에 적어가면서 자신의 죄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가 마음에 깊게 새겨지는 경험들을 한다.  

한 크리스천이 나무에 성경을 빼곡히 적고 십자가를 형상화하여 기독교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 작품들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작품을 만들 때의 작가의 마음과 신앙고백들을 기록한 책이 바로 <선물>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작품 해설집이라 할 수 있다. 표지부터 참 마음에 들었다. 한지 분위기가 나는 흰색바탕에 어디서나 쉽게 주울 수 있는 십자가 모양의 나뭇가지가 그림자를 드러내며 찍혀있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인간이 손을 높이 쳐들어 맞잡고 있는 듯하다. 왼편에는 붉은 세로 막대로 처리하고 책제목도 붉은 색으로 단아하게 새겨져있다. 표지만 보고 있는데, 내 마음에 십자가의 울림이 있다.  

‘천사의 날개’라는 작품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십자가 나무판에 대못을 빼곡히 박아 넣은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죄를 하나하나 고백하며 나무에 못을 박았단다. 어느새 십자가는 온통 못으로 뒤덮이고, 더 이상 못 박을 공간이 없다. 처음에는 한 손으로도 들 수 있는 십자가였는데, 두 손으로 들기도 버거운 십자가가 되었다. 작가에게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곧 회개의 행위였고, 인간의 엄청난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예수님의 지독한 사랑에 대한 신앙고백의 행위였다. ‘천사의 날개’ 작품 사진이 너무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흠이 가득한 검은 바탕에 못이 가득 박힌 십자가가 걸려 있다. 조명이 비치고, 뒷그림자는 마치 예수님이 팔을 벌리고 있는 듯하다. 이 작품 사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작가는 건축 현장에 굴러다니던 나무토막을 들고는 거기에 성경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겨 넣을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버려져 아무도 돌보지 않는 너를 내가 구원해 주마’(p. 13). 이것은 작가 자신을 향한 말씀하신 예수님의 음성이었을 것이다. 그는 1,000일 새벽기도회를 하면서 나무에 성경을 한 글자, 한 글자 새길 때마다, 다메섹에서 바울이 보았던 한 줄기 빛을 보았다. 갈라디아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무에 필사할 때, 그는 바울처럼 살기로 다짐했을 것이다.  

그는 이 작품집을 내면서, ‘성경공부’, ‘기도’, ‘필사’가 자신의 믿음 생활의 근간이라고 고백한다. 성경적인 삶이란, “단순하라(Be simple)”, “포기하라(Give up)”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나무와 여러 재료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십자가를 형상화하는 작업들을 통해 온전한 구원과 믿음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함께 십자가 작품들을 전시한 가게를 열게 된 것은 선물+(PLUS GIFT)라고 말한다. 그의 미술작품 뿐 아니라, 글 솜씨 또한 맛깔스럽고 빼어나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모든 것이 정신없이 지나가는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로 살기를 추구해야 신앙의 세계에 깊이 들어갈 수 있다. 조금 더 천천히 묵상하며 아날로그로 살기! 나도 그렇게 살아보리라. 삶의 몸짓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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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전부가 되게 하라 - 진정한 기도응답과 영적성장의 비밀
앤드류 머레이 지음, 김창대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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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앤드류 머레이가 1912년 남아프리카에서 열린 한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기도에 대해 도전받고 그 때 다루었던 진리들을 글로 남긴 것입니다. 그 컨퍼런스에 모인 자들은 “기도가 영적 생활의 동력”이며, “하늘의 축복과 능력을 가져다주는 중대한 수단”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만큼 중요하다고 여기는 기도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일에 실패했기에, 머레이 목사님은 이 책을 집필하여 기도의 골방에서 읽고, 즉각적으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길 희망한 것입니다. 

저는 책의 영어판 제목(The Prayer Life)처럼 제 기도생활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정기적으로 새벽기도를 하기 원했고, 따로 골방의 기도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지속적으로 기도생활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바쁘다 혹은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며, 저는 기도하는 일을 믿음생활의 우선순위에서 항상 뒤로 제쳐두곤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저자는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를 환경과 연약한 육체 때문이라고 핑계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도전했습니다. 가장 뼈 속 깊이 비수처럼 파고 든 말씀은 기도하지 않는 진짜 이유를 밝혔을 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거룩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숨은 적개심에 있다”(p. 33). 

머레이 목사님은 기도의 중요성을 말씀할 때, 전쟁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장군은 전쟁에서 ‘전략적 요충지’를 우선적으로 사력을 다해 점령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전쟁의 승패가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은밀한 기도의 장소야말로 결정적 승리를 획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라는 것입니다. 제가 왜 사탄(혹은 죄악된 육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믿음의 후퇴를 경험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전략적 요충지’인 골방의 기도를 빼앗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머레이 목사님은 2부에서 ‘지금 있는 그곳에서 기도하라’고 도전합니다. 특히 ‘chapter 5. 기도의 골방에서 하나님을 만나라’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지침은 개인 기도를 다시 시작하고자 마음먹은 저에게 매우 구체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첫째, 기도의 골방에 들어갈 때 당신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심을 감사드리고, 그 분과 함께 자유롭게 대화하라. 둘째, 당신은 기도를 위한 성경 공부를 통해 기도를 준비해야 한다. 셋째, 당신의 마음속에 말씀을 받았다면 그 때 기도를 시작하라. 넷째,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다섯째, 기도의 방과 바깥세상이 가깝게 결속되어 있음을 잊지 마라.”(pp. 84~89).  

‘골방에 비치는 빛’(pp. 91~97)이라는 항목도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기도의 방에 비치는 빛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알게 하며, 인간의 깊은 죄성을 깨닫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누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의 기도골방에 빛을 비쳐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추악함을 더 깊이 깨닫고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길 소망합니다. 

단단한 벽에 못을 박기 위해 망치로 내리치고 또 내리치듯, 이 책은 완악하고 교만한 내 마음에 기도의 중요성과 그 놀라운 축복을 또 강조하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십자가와 성령만을 의지하여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조지 뮬러나 허드슨 테일러 같은 믿음의 용사들처럼 기도하겠습니다. “기도가 전부가 되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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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을 양육하는 행복한 권사 - 권사는 하나님 교회의 어머니이자 행복 전도사이다 직분자 시리즈 3
김병태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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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교회를 섬기는 행복한 장로>, <교회를 세우는 행복한 집사>의 저자, 김병태 목사님이 쓴 교회 직분론 세 번째 책입니다. 이 책은 세 가지의 직분론 중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권사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진 자여야 한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합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자기희생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이죠. 교회처럼 아픔과 상처가 많은 곳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 목사님은 “교회가 영적 병원이라면, 의사는 예수님이고, 목회자와 권사는 바로 간호사와 같다”(p. 39)고 명쾌하게 정의를 내렸습니다. “간호사 같은 권사,” 참 마음에 와 닿는 표현입니다. 권사님들이 교회에 오는 사람들의 작은 상처까지 이해하고 감싸주려면, 좋은 상담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 2장에는 상담에 대한 실제적인 지침을 친절하게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한편, 권사는 탁월한 교사와 구역장이 되어야 한다고 3장에서 말합니다. 권사는 한문으로 ‘勸(격려할 권), 師(스승 사)’입니다. 정말이지 교회에서 목회자 다음으로 성도들을 권면하고 가르쳐야 할 직분이 권사인 셈이죠. 비록 성경에는 그 명칭이 나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권사의 직분처럼 목사님들 다음으로 교회를 신앙으로 세워주는 직분은 없다 싶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4장에는 ‘권사들은 목회를 돕는 효과적인 심방대원이 되라’고, 5장에서는 ‘피스메이커가 되라’고, 6장에서는 ‘목회자를 세워주는 권사가 되라’고 충고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 -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 중에 많은 것들은 권사님들의 입을 통해 시작됩니다. 결국, 모든 교회 직분론의 원론으로 돌아가, 일꾼의 신앙인격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저자는 다른 직분론과 마찬가지로, 거룩한 영적 습관을 계발하고, 집에서 좋은 내조자가 되며, 스스로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 되라고 7, 8, 9 장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김병태 목사님의 세 가지 직분론 중 ‘권사 직분론’을 제일 재미있게 읽고,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10 장, ‘행복의 오솔길을 찾아가는 권사가 되라’를 읽으면서 행복했습니다. 저도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10장은 단지 권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에게 적용되는 근본적인 자세일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누구나 섬김의 자세로 일해야 행복할 것이며, 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해 마음껏 은혜를 누려야 행복할 것이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말고 창조적으로 즐겁게 일해야 행복할 것입니다.  

저는 교회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 무거운 짐이나 의무가 아니라, 행복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꾼 개개인이 주님을 닮은 인격을 가지고, 무엇보다도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의 모든 일꾼들이 맡겨진 직분을 감당하면서 ‘행복의 오솔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의 오솔길’에 저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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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원영 지음 / 불광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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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인의 집에서 태어나, 기독교인으로 교육받고, 기독교인으로 살고 있다. 당연히 불교의 문외한이다. 호텔에서 불교 경전을 조금 읽어 보고, 등산 갔다가 절에 들어가 본 것 외에는 불교와 접해보지 못했고, 스님하고는 말한 번 섞어 보지 못했다. 그러다 이 책의 제목,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접하고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에 열반에 들어가신 법정 스님의 책들을 몇 권 읽었었기에, 불교의 스님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이 책은 참 쉽다. 나처럼 불교의 용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쓰인 것 같다. 수행자의 출가부터 시작해서 수행, 그들의 일상의 생활, 승가를 이루고 사는 공동체 생활의 장소 사찰과 그곳에서의 행사, 계율, 등을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때로는 그 모든 것의 기원이 되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이 모든 삶의 모습들의 정신을 잘 가르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에 대해 나 나름대로 정의한다면,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며, 자기 개혁의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역경(逆境)을 이겨낸 성공이 아니라, 순경(順境)을 벗어버리는 ‘위대한 포기’를 통해 자유를 얻는 길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출가이며, 과정은 승가라는 공동체 생활이며, 마지막은 열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타종교의 입장에서, 출가는 어떤 점에서 가장 이기적인 행동같이 느껴졌다. 자신은 자유를 찾아 깨달음의 길을 떠나지만, 수행자가 떠남으로 해서 남은 모든 자들은 얼마나 고통을 받을까?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함께 이웃 사랑에 있다. 남을 위해 사는 삶이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의 길이라고 가르친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너무 자아에 함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하나, 출가하지 않은 중생들은 아무리 성실하고 올바르게 살아도 깨달음을 얻거나 온전한 자유를 얻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불교를 오해한 것일까? 그 깊은 도를 잘 모르는 나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수행편과 생활편이 특히 인상에 남는다. 스님들이 탁발하는 방식을 읽으면서 물신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좋은 삶의 본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문’과 ‘수행’의 방식을 보면서 참 종교의 단아한 모습들을 보았다. “고요한 가운데 또 다시 치열한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수행자다. 아침이 오는 소리를 들을 줄 알며, 자신을 비워 사유할 줄 아는 수행자다”(p. 99)라는 표현이 마음에 다가왔다. 자신을 비우는 것, 이것은 단순히 자신의 육체를 괴롭히는 고행(苦行)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고요한 마음의 집중 곧 ‘정진’을 하기 위해 안거를 수행하고, “진정한 수행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다른 이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p. 106)이라는 표현에 동감이 갔다. 삼의일발(三衣一鉢)과 주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발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모든 종교의 지도자들이 추구해야할 단순하고 검소한 삶의 모습을 보았다. 또 함께 수행자의 길을 가는 도반(道伴)의 소중함을 배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는 서양철학으로 말하면 에피쿠로스학파의 가르침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피쿠로스(Epicurus)는 ‘우정, 자유, 사색’을 최고의 행복을 위한 조건으로 보았다. 최고의 행복(쾌락)을 추구한 에피쿠로스는 나에게 오두막 하나에 철학을 논할 수 있는 좋은 친구 그리고 먹을 음식이 있으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했단다.  

이 책을 통해, 스님들이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자의 길을 걷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았고 이해하게 되었다. 다음에는 직접 불교의 도(道)에 대해 배워보고 싶어진다. 저자 원영 스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지만, 진실한 수행자일 것이다. 이 책 덕분에 앞으로 조금 더 관심을 갖고, 편견없이 불교의 가르침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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