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참, 알라딘에 유저분들에게 묻는 질문(대부분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모인 곳이라서)치고는 적절한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심리적으로 금덩어리 (반지, 귀걸이, 목걸이, 팔지 등) 두르면 좋습니까? 아니면 금덩어리 대신에 보석 이런 거로 대체해도 비슷한 질문입니다.

 

금속을 몸에 지닌다는 행위가 결국은 화폐의 대용품이고 보면, 물질적인 충족감이라는 게 무슨 의미일는지는 일간 이해 못할 바는 없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돈 벌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라서 싫어할 리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금덩어리라는 금속이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그 실체적인 부피감과 무게감 그리고 희소성으로 심리적인 위안을 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집단화되었을 때의 다수의 요구와 수요에 비해 상당히 적은 물질량이기에 금붙이를 몸에 두름으로써 비교 심리적 충족감을 채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보석이나 금붙이에 유난히 더 집착하는 사람의 심리적 기저에는 만족할 수 없는 심리적 결여의 한 가지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책이라는 것으로 대변되는 지식이란 것도 일종의 현학성에 대한 결핍의 반작용으로써 나타나기도 하죠. 인간은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채우려는 양동이와 같은 심리를 가지고 있거든요. 얼마든지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결핍이 숨어 있는 금덩어리가 자랑하는 비교적 우월성이 표출될 때가 갈등이 생기게 되는 원인이라는 것이죠. "나 금덩어리 누구로부터 받았다거나, 금덩어리 둘렀다고 자랑거리로 삼을 때" 제일 가치가 돋보이는 것이겠죠. 장롱에 혼자만 쳐다보는 금덩어리야 순전히 자신만이 만족감이겠지만 그렇게 크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보다 누구에게 "금덩어리 이만큼 있어. 이 반지 금 몇 돈이거나 목걸이가 금 몇 돈이라는 식으로 자랑"을 하게 되면 금의 가치에 대한 화폐를 제일로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잘 먹히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목에 힘이 들어가거든요. 상대방의 부러운 감탄사가 자신의 행복감은 배가 시키게 되는 셈입니다. 다 알죠? 상대의 부러움으로 치켜 세워졌을 때에 그제야 자신은 단순히 금속의 소유가 만들어 낸 상대적 소유감이 비로소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자신의 위로와 충족을 위해 상대의 누군가는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아주 고약한 심리라는 것입니다.

 

나처럼 금이라는 화학기호 Au, 비중 19.32의 이용상의 가치로 따지는 사람에게 그저 일종의 금속의 한 가지이고 몸속에 들어갔을 때 전혀 무해한 작용으로써의 가치를 따지는 사람들에겐 자랑의 어필은 전혀 통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게 자본적 가치로 둔갑하는 중세 영국의 자본가들의 논리에 따라야 할 가치로는 보이지 않거든요. 금속의 현금성에 따라 따지는 것은 부차적은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니 그런 소유의 부러움이 대상이 될 수야 없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몸에 금속을 달고 사는 경우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의료용으로 치료 목적을 위해서이거나 치장용입니다. 금이빨이야 금이 인체에 무해하고 (일부 치장용은 있겠지만) 가공이나 성형에 유리하니 사용하는 경우겠지요. 그리고는 반지 목걸이 팔지 기타 장신구 등은 전부 치장 용이거든요. 오래전 역사를 보더라도 권력자라든가 고관대작의 신분을 표시하기 위해서 금장신구를 둘렀던 적이 있었죠. 의식주에서 옷과 더불어 장신구는 유물에서도 쉽게 확인되는 부분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오늘날처럼 금장신구의 역할이라는 게 결국 부의 과시 용일뿐이죠. 소유하고 있음으로의 만족감일 것입니다. 이는 종교에서도 금으로 도금함으로써 종교적 위대함이나 숭배의 상징처럼 사용되기도 하거든요.

 

어저께 금덩어리 때문에 사달이 났습니다. ᄒᄒᄒ

와이프가 일하는 직장에 동료가 남편으로부터 금덩어리에 준하는 금액으로 선물을 받았고, 이에 반지와 목걸이를 한다고 자랑질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집 남자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경우로 선물을 하게 된 이유는 말하지 않고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다만, 선물 받아서 금반지와 목걸이 하는 게 심히 부러웠던 거였으니까요. 젠장!!!! 직장 동료는 그런걸 받았다고 동네방네 알리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평소에 남편의 불만은 일상화된 듯이 험담을 늘어놓던 동료가 금덩어리 하라고 돈 선물 주니 이젠 남편이 험담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이 된 겁니다.ㅠ.ㅠ 그동안 잘 해주지 못한 것들의 물질적인 보상이었나 싶었지요. 휴가비 받았다고 그 휴가비로 금반 지하라고 줬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느냐? ㅎㅎㅎㅎ네 너무나도 뻔하게 왜 하겠습니까? 그 직장동료의 남편처럼 당신도 해내라는 요청이 담긴 것이죠. 너무 간접적인 사례가 직접적 와 닿는 경우입니다. 이야기의 의도가 나에겐 참 고약합니다. 그 집 남자에게 비교당하는 게 제일 못마땅했죠.

  

그게 그 남편이 사랑하는 방식이겠지? 금덩어리가 뭐라고. 또 금덩어리 반지 손가락 내보이며 "나 행복해. 이만큼 대우받고 살아."라고 으스대는 기분에 너희들은 엿같은 기분 같지?. 비교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라는 것이지? 그래서, 그래서 그 박탈감을 충족시킬  당신이 주는 금덩어리만이 나의 자존감을 채울 수가 있는 거잖아.라고 판단이 되었습니다.

  

아 이 무슨 불행한 일입니까. 비교해서 행복해야 하고, 비교당해서 기분 더럽다는 이 갈등의 요소가 만들어지는 것이거든요. 그 동료 남편처럼 억수로 평소에 태무심 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하고 그 보상으로 금덩어리 주면 되겠나? 어떻게 위하는 마음이 금덩어리만을 보게 되면, 심리적 불만을 잠재울 수 있냐는 거지. 얼마나 점수 따기 쉬운가? 평소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표현도 하지 않고 무관심하다가 금덩어리 선물로 퉁치는 사랑법이 너무 간단하고 쉬운 거 아닌가 합니다.

 

요구하는 것은 능력 한도 내에서 들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자신 있게 자부했는데, 금덩어리는 도저히 내 능력 범위 밖의 일이니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생을 막노동 회사에서 늘 건설업 경기가 어려웠으니 예전처럼 풍요로운 회사 사정은 꿈도 못 꾸고 있는 형편이고 보니 월급 더 달라는 소리도 안 나오고 있습니다. 예전에야 그랬죠.. 어두운 돈들이 오고 가는 곳에 낙전은 떨어지기 마련이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너무나도 빤하게 드러나는 시대라서 콩고물이라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능력 밖의 돈은 결국은 부당함으로 편취해야 하거나 남모르게 빼앗는 도둑질이라도 하라는 소리가 아니라면, 한정된 급여에 융통성을 발휘하기 어렵긴 마찬가지였으니까요.

 

호의가 습관화가 되면 당연한 권리인 줄 안다는 속어가 있더군요. 조금만이라도 배품은 계속될 때 감흥은 떨어질 것이고 그래도 계속되다 보면 무덤덤해지지만, 문제는 이게 한 번이라도 호의가 사라질 경우에는 금방 불쾌한 표시가 나기 마련이거든요. 하기야 든 자리는 표시 안 나더라도 빈자리는 금방 표시 나는 것처럼, 호의라는 것도 비게 되면 바로 드러나게 됩니다. 함께 살아가는 동안에는 할 수 있는 요구는 거의 대부분 다 들어 주는 편입니다. 못한다거나 안 한다는 말은 거의 해본 적이 없습니다. 피치 못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는다면 대부분 ok 사인을 냈거든요.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해달라면 해주고 이러면 이렇게 해주고 저렇게 하라면 저렇게 해주는 등 거의 로봇처럼 움직여 주는 것이 가끔은 참 이용 잘 해 먹는구나 싶었죠. 아파트 명의도 와이프 이름으로 등기시켜 주기도 하고 ㅎㅎㅎ.이날 까지 불만사항이라도 있으면 더 특별히 신경 쓰고 챙기려 했고 직업 특성상 야간 늦게 마치는 관계로 늦게 퇴근해서 밥도 제때 못 챙겨 먹으니 밤늦은 시간에라도 야식 거리, 먹거리도 챙기고 (아 숨차라..) 이렇게까지 하려는 의지를 보였는데, 어떻게 금덩어리 가지고 비교를 당하다니, 결국 속물처럼 금덩어리로 모두 퉁쳐버리면 되겠는가 싶었거든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이런저런 요구가 많을수록 서로가 불행해집니다. 그저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바람이 없다면 덜 불행할 것이거든요. 바람에 부흥하지 못할 때, 미움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부단한 이기적 존재거든요. 그러나 이 부단함을 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평화가 오는 법이거든요. 요구가 없으면 불만도 없기 때문이죠. 더 해달라고 더 원할 때 누군가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하고 노고에 행동화시켜야 충족이 될 것입니다. 노고가 즉 힘이 든다는 운동 법칙이 자 인생 열역학 법칙이거든요. 물리적 사실에만 적용될 것도 아니고 인생사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법칙이거든요. 그 노고에 대한 힘듬에 있어서 이를 치환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 되거든요. 이것을 대신해서 물질로 충족되는 것이 어쩌면 제일 보기 쉽고 편할지는 모르나, 이런 즉물성의 효과는 오래가지를 못하거든요.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에게 요구를 완전히 비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구도 70% 정도만 바라면 어떨까요. 이게 사랑 70% 법칙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결코 전부를 줄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생명까지도 준다 한들 100%는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서로가 서로의 객체일 뿐입니다. 관계의 주체는 없거든요. 그러니 요구를 하되, 70%만 바란다면 상대는 부담이 덜할 것입니다. 저는 금덩어리는 못 줍니다. 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전 금덩어리보다 더 큰 것을 주고 있거든요. 고작 금덩어리 가지고 날 비교하다니 자존심 상처받거든요. 나도 금덩어리 하나 주고 생까볼까 싶더군요. 푸헛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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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5 0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5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8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8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6-08-17 0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부, 친구, 부모자식, 누구든지 사이에서 하지 말아야 될 것이 `비교`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속상하시고 귀찮(?)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ㅎ 그나저나 저 위의 `금반 지하`는 의도된 오타 같아보입니다. 뭔가 sarcastic이기도 한 것이 뉘앙스가 묘하네요.ㅎ

yureka01 2016-08-17 10:18   좋아요 1 | URL
책 좋아하는 놈에게 금반지랑 비교하다니..울컥하더군요..ㅎㅎㅎㅎ
(오타지적 감사합니다.글이 길면,,일차적으로 맞춤법검사기 한번 돌리는데 간혹 걸리지지 않는 것도 있더라구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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