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라고 하길래, 흔히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인간은 애시당초부터 무소유가 불가능하고, 무소유가 없다.
태어나자 마자 자기 몸을 가졌는데 어떻게 완전한 무소유가 되겠는가?
글자 그대로 해석한 무소유라고 한다치면 결국 자기 육신의 죽음 이후가 곧 완전한 무소유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법정이 설파한 무소유는,
자기 육신을 비롯한 기타 이외의 여러가지에서 소유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 마음의 자유를 의미했던 것이다.
개념이 좀 어렵긴 하겠지만, 결국 법정의 무소유는 집착, 즉 더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의 마음을 내려 놓고 소유하려는 이 집착으로 부터 해방되어 물질로 부터 진정한 자유의 평화를 의미했던 것이다.
오늘도 경쟁적으로 더 가지고자 하는 그 마음....
아등바둥 하며 악착같이 소유하려고 애를 쓰려는 그 고달픔의 고역적인 삶에서 한켠으로 비켜 나서 평화와 자유를 얻으라는 의미이다.
그래야만이 내 먹을 거 입을 거 적게라도 만족하면 나의 남은 것들을 나눌 수가 있는 것이고 나눠지니 극악한 갈등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 살면서 완전히 전혀 가지지 않고 하루도 살 수가 없다.
남보다 비교해서 내가 더 가져서 그게 진정한 행복은 결국 길게 가지지가 않는다. 마셔도 마셔도 끝끝내 체울수 없는 욕망의 늪에 점점 침몰되고 그것에 구속되어 온 인생 전부를 차압당하는 구속일 뿐이며
이내 허망해지고 다시 더 가지려하여 비교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이 허심이 부질없음을 갈파한 것이리라.
그래서 버리지 못하면 얽매여야하니 자유가 없는 것이다.
새들은 자기 살던 둥지를 떠날 때가 되면 미련없이 버리고 날아가듯이....
새는 자기 소유라는 권리를 포기한다. 그래서 등기부등본이 없는 이유이다.
새가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이유이다.
날개를 가졌다는 것만으로 하늘을 날 수가 없을 것이다.
소유에 날개가 접혀 있는 새라면, 날기의 자유를 포기할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