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경기도 포천 이서방

   

한국전쟁 때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걸리고

피난 나온 여자가 있었더래요

 

남편은 어디서인가 헤어졌는데 생사조차 알 수 없고

두 아이를 먹이는 일만이 그녀에겐 큰일이었죠

아이 둘을 가진 여자에게 줄 일자리는 없었을 테니까요

 

외갓집에 이서방이라는 머슴이 있었는데  

칭찬 한마디면 힘이 버쩍버쩍 나서

일부러 더 무거운 장작짐을 지고 나서는 그런 사람이었더래요

 

그래서 칭찬해주면 일 잘하는 사람에게,

너 이서방이니?’라고 동네 사람들은 말하곤 했더래요

 

장가를 한번 들여주었지만 그 색시가 밤에 도망가버린 이래로

이서방은 홀아비로 지내고 있었더래요

   

외할아버지는 이서방과 그 여자를 살게 해주었대요

 

이서방은 품일을 해서 그녀와 그녀가 데려온 두 아이를 극진히 보살폈고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그녀는 이서방의 아이를 둘 낳았더래요

   

어느날 그녀의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찾아왔고

그녀의 남편과 그녀와 이서방과 네 명의 아이들은

하룻밤을 한집에서 지냈죠

 

다음날 아침 그녀는

이제는 다 자란 남편의 두 아이를 데리고

젖먹이인 이서방의 아이를 업고

남편을 따라 돌아갔대요

 

이서방의 곁에 이서방의 큰 아들을 남겨두고

이후 이서방은 그 아이와 함께 살았고

그 아이는 효자라서 이서방은 그래도 행복했고

지금은 고향 포천에 이서방은 묻히고

이서방의 아들은 아버지처럼 농삿일을 하면서

여전히 거기서 살고 있다는군요

 

철원 어딘가에서 자랐을 자기 동생은

한번도 찾지 않았다더군요

[출처]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 양애경|작성자 여연

 

시집에서 시인의 글이 가슴에 와닿는다.

 

 

 

 

 

 

 

 

시인의 말

   

   공주에 있는 학교에 가다가 계룡산 자락 도로에서 너구리를 보았습니다. 갈색 몸을 고통스럽게 웅크리고 갓길까지 간신히 움직여 거기서 멎어버린 어린 너구리입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순간, 저는 운전대를 잡은 채로 흑, 하고 흐느끼다가 정신을 붙들어 다시 앞만 보며 달립니다. 고운 것만, 좋은 것만 보며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청벽다리 위에서, 교통사고로 떨어져 나간 사람의 한쪽 다리를 가까이에서 정통으로 보고 말았습니다.

   

   제 시의 말들이 직설적이 되어버린 것은 이 세상이 두렵고 고통스럽고 위험에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제 시가 단순하고 평범해 보인다면 그것은 제가 느끼는 아름다움과 행복이 단순하고 평범한 것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는 말을 꾸밀 수도 없고 좋은 생각을 지어낼 수도 없습니다. 제게 찾아오는 이 시들은 진짜배기니까요. 저는 그저 이 시들을 받아 적는 사람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보다 전에 살았던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삶을 살았겠지요. 힘들고 두려워도 절망보다는 희망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증오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하며 살았겠지요. 그래요. 우린 지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강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강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다리 위의 그 사람도 치료를 받아서 강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다리 위의 그 사람도 치료를 받아서 다시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쌩떽쥐페리가 어린왕자에서 썼듯이, 그런 생각을 하는 날이면 하늘 위의 별들이 일제히 웃는 소리를 냅니다.

   

  201112

  양애경

 

3권의 시집 주문들어갑니다. 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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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1-30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야기가 있는 시가 좋아요. 시 구절을 해석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

yureka01 2015-12-01 10:13   좋아요 1 | URL
이 시인분의 시들이 외계어는 아니더군요...
그런데 시의 내용이 하나 같이 먹먹해져 오더라구요,.,

yureka01 2015-12-01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3권 주문 넣음...아 그런데 절판은 아닌데 책이 빨리 오지 않을듯한 느낌.발간한지 오래된 책은,,,출판사에 재고 파악하고 받아서 발송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게 보통이더군요.특히 시집은 ㄷㄷㄷㄷㄷ중고도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