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초에는 단행본 형식의 두꺼운 책을 염두 했었다.
원고를 250페이지나 건넸다. 원고 250페이지를 추리고 추리다 보니 결과는 128쪽으로 반 토막이 난 심한 다이어트가 되어 버렸다.
출판사 편집인이 "사진이 우선이
되어야지 글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각 챕터마다 이어지는 큰 줄거리의 맥락이 스토리로 "기 승 전
결"처럼 이어져야 한다는 권유가 있었다.
하기야 내가 원고를 줄 때 사실은 중구난방이었고 이것저것
뒤섞여 있었다. 단편 단편 끊기는 등의 주제별로 연관성없는 난잡한 구성되어 있었던 까닭이었다.
더군다나 요즘 시대에 다수가 이렇게 두꺼운 책을
보는가?
모두 유레카의 책 읽는 것처럼 보는 시대가 아님을 직시하여
주신다. 나야 워낙 책 읽는 데는
이골이 난 나의 주관성이 책의 분량이 많았다는 문제로 이어졌다.
""스마트 시대다. 영화 한편 보듯이 한 시간 반 정도로
마지막 장 덮을 수 있으면 된다."
그렇지만 너무 적어서 좀 뭔가 허전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돈 주고 사보는 책이 어떻게
적으면 좀 손해 보는 느낌 나지 않을까요?
"아니다. 시집 봐 봐라. 대부분 텍스트가 언어로 농축되어
있어서 분량이 문제가 아니라 담긴 내용의 압축성이잖는가?"
자네는 사진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텍스트처럼 읽혀야
한다면 너무 많은 분량이 오히려 사진의 집중도를 떨어 트릴 수 있다.
사진이 주가 되어야지 글이 우선이 되면 책의 사진이라는
모티브 성격에 맞지 않는다. 포토가
우선인 에세이라야 되거든.
편집자가 시키는 대로 하자. 사진 시집 같은 에세이 스타일... 이런 거 처음이잖아.
해보자.라고 하셨다.
"그럼 책이 너무 얇을 텐데?"라는 염려를
불식시킨다.
보통 사진이 들어간 책은 글보다 사진을 서너 번 더 보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설처럼 스토리를 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진 한 장마다의 맛을 이야기하고 그래서 그 이야기가 첫 장부터 끝장까지
이어져야 하는 기승전결.
역시 나도 사진 에세이집에 사진을 자주 보는 편이었으니까
한번 보고 사진을 다 읽기가 어려운 까닭이었다.
2. 대학 다닐 때였던 걸로 기억난다.
지금은 작고 하신 고 박완서 소설가의 에세이집을 한 권
읽은 적이 있었다.
아마 제목이 문학은 목을 매도 좋은 나무라는 책이었다.
그러니까 문학에 목을 맨다는 것은 목을 맬 만큼 자신의 전부를 문학에 투사시키는 비장감과 희열감을 동시에 내포한 제목이 아니었던가 싶었다. 그
책으로 문학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치밀었지만 난 글쟁이는 못되니 그러고 말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읽었던 책의 제목이 사진을 하고부터
내내 맴돌았다. 목을 맨다는 것. 목매달기가 자살이나 교수형처럼 처절한 모습이겠지만 목매달만큼의 집념 즉 목숨까지도 내놓고 해도 좋은 나무 같은
그런 느낌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겠나 싶었다.
그래서 프롤로그를 잡았다. 문학에 목을 매달지는 못했지만
대신에 카메라를 목에 걸었다는 것으로 대신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와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카메라를 목에 매단다는
뜻. 목매달 문학만큼은 못되지만 카메라를 목에 달고 가슴에서 나오는 진심의 시선으로 세상을 사람을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사진이라면 어떨까라는
비약이 스친다.
그럼 대체 작가는 문학에
목을 매다는 것의 이유가 분명하다. 그것도 수천 권의 저서로 나타나는 수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카메라를 목에
달고 대체 사진을 무엇을 하려고 하자는 것인가라는 책의 마지막의 결론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으로 무엇을 보고 어떤
것으로 하여금 우리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사는 걸까라는 질문.(물론 생업적 차원에서 사진이야 당연히 돈 벌자고 하겠지만 전 돈벌이용 사진가는
아니라서)
삶의 울림. 떨림. 떨려야
울리고 울려야 멜로디가 되는 것은 아닐까 했다. 사진은 그 떨림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돈도 아닌데 단순 취미의
사진은 이미지의 재생산적 단순 반복적 활동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떨림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럼 떨어야 울리고 울어야
소리가 나는 카메라는 기타의 현이었던 것이다.
무엇이든 울리도록. 떨리면
소리가 나고 소리는 아름답게 메아리칠 수 있다면, 이게 내가 추구하고 싶은
사진의 이유는이라고 말 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마지막 원고를
추스르며 책이란 스토리의 엮음이라는
차원에서 결론으로 마지막에 포지션 하면서 책의 전체 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3. 당초에는 제목도 표지도 내가 구상한 것대로는
아니었다. "사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을 넣었는데 사진이 들어간 책 제목은 가급적 넣지 말자고 했다. 사진 보면 다 사진 에세이인 걸 아는데 굳이 사진 이란
단어가 들어감으로써 강조하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제목으로 은유하면 어떨까?라는 편집자의 조언이었다. 표지도 좀 더 강렬한 임팩트가 있어야겠고 사진이란 단어
보다는 사진을 은유하는 다른 제목이 필요했다. 그리고 좀 강렬한 시선을 잡는 이미지. 처음에는 너무 평이하고 눈에 띄지도 않았고
표지도 책 얼굴인데 너무 심심했다.
간결한 것은 좋지만 심심하면 주목도는 낮아진다. 강렬한 사진으로 제목과 어울릴만한 사진을 찾는 고민이었다.
심플하면서도 강렬함. 그리고 제목에 걸맞은 이미지 찾기.
편집을 다 해놓고 마지막으로 제목과
표지 사진이 제일 골치였다. 당초대로 구상으로 가면 너무 밋밋하니 주목도가 낮아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봐도 초급자가 보더라도 시선을
사로잡는 표지를 구상하자고 했지만 마땅하지 않았다.
그런데 원고를 수십 번이나 다시 읽고 나서 그중에 딱
떠오르는 것 하나가 빛을 물고 있는 새. 사진의 제목도 소리 없는 빛이 결국 사진이고 빛을 물고
있는 사진으로 노래를 하는 것처럼의 구상이 나왔다. 임팩트로 나온다.
시간이 급할수록 밥이 다 되었지만 뜸 들이는 과정이 없으면
밥이 맛없다. 따라서 책도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4. 책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나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웬만한 지명도 있는 전문 작가조차도 요즘은 책 내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극소수다. 이름만
대면 그 바닥에 누군지 금방 알만한 사람의 책조차도 책으로 밥 벌이가 안된다.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그런데 난 이런 몇 가지 조건에 하나도 맞는 게 없다.
책을 많이 알릴 수단도 없고 그렇다고 책을 많이 사달라고 뻔뻔한 얼굴로 요구하기가 내 성질상 전혀 맞지도 않고 그렇다고 강권하는 영업맨도
아니다. 그렇다면 책이 아주 모범적이고 우수해서 누구나 봐도 " 와 이건 사봐야 할 필독서"라는 식의 특별한 것도 아닌, 그저 사진이란 모티브가
되어 쓰게 된 블로그 글일 따름이었기에 영 자신도 없을뿐 더러 이게 무슨 대단한 역작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아는 인맥을 동원하여
이곳저곳을 수시며 책 사 달라 하는 것도 못하겠다.
그러나 한편으로 책으로 내 살아가는 팔자가 조금이라도
고쳐질 수는 없을까라는 절박감은 다분히 많았다. 하지만 편집자는 비우라 하신다. 책으로 팔자 고치는 거 아무나 못한다고 찌른다. 책 낸다고 무슨
억만금 벌 수 있는 유명 작가도 아닌데 책에서 욕심은 걷으라고 충고한다. 많이 팔리고 알아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것도 없다. 이 책도 또
하나의 자신의 분신이며 이 책의 이름을 가진 제 팔자가 있는 법이라고 한다. 일말의 욕심을 낸다면 무리수를 둘 것이고 무리하다 보면 뭔가 삶이
삐걱댈 수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 새삼스럽게 나왔다. 맞다. 내 팔자에 인연의 끈이 책으로 인해서 닿을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을
것이다. 다 내려놓자는 무장해제의 심정이 오히려 책을 대하는데 있어서 편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비용 들여서 낸 거라도 본전 생각하지 말고
하나도 남김없이 나누자라고 마음먹게 되었다. 오히려 이게 편하다. 내려놔야지. 그래서 이웃들에게 주소를 묻고 배송을 정리하면서 비움의 각오를
다졌다.
5. 회사 사무실에는 전혀 알리지 않았다. 옆에
여직원들이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지만, 나머지 직원들과 여러 군데 거래처 사장들에게는 절대 함구했다. 여직원들에게 책 주면서 까지 알라지 말아
달라고 신신 당부와 부탁을 했다. 절대 일부러 알리지 말라고 했다. 일 년 가도 책 한 권 사볼 수 없는 노가다판 사람들에게 자칫 거래처 직원의
갑질 영업이란 소리 딱 듣기 싫었다. 앞으로도 제발 몰랐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위와 권력이나 자본의 힘으로 대기업 갑질의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봤던 교훈을 내가 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다못해 자녀 아이 결혼식 때 갑의 임원이 온 동네방네 청첩장 뿌리고 부조금 장사짓도 꼴 베기
싫었고 아이 돌 잔치라면서 한동안 연락 한번 없다가 전화로
초대장 남발하는 짓거리도 난 뻔뻔하고 싶은 것인지 모를 일이다. 자본은 사람을 뻔뻔하게 하고 후안무치처럼 만든다. 돈을 벌어야 생존하고 생존해야
살아가는 절박감이야 다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에 합당한 지위와 권력이 적재에 사용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진심이라면 언젠가 통할 것이고 설사 진심이 통하지 않는다
해도 별 달리 손쓸 방도는 없다. 알아 준들, 알아주지 않는들, 역시 난 계속 사진을 찍을 것이며 글을 써야 한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그러 해야 하다.
6. 이번에 책을 내면서 편집 출판하여 주신 시인에게
은덕을 받았다. 신경 써주신 덕분에 결과물이 잘되든 못되든 만들어져 버렸다. 마침 시인의 카메라를 보니 오래된 낡은 하이엔드 카메라였다. 출판
비용을 대폭 삭감 시켜 주신
것 대신에 카메라를 선물해 드리고자 했다. 책 만들어 주신 고마움에 비례하는, 이미 점찍어둔 카메라는 있다. 물론 나의 카메라 선택이야 늘
아날로그적이고 이야기가 있는 선택이지 카메라의 성능과는 비교가 안된다. (나중에 어떤 이야기로 카메라를 선택하게 된 것인지는 별도로 포스팅
하도록 하겠다.)
이제 십수 년간의 사진 생활을 쉼표 하나 찍었다. 앞으로
나는 어떤 사진의 시선으로 세상을 삶을 관조해야 할 것인가. 지속 되어야 하고 몇 해 동안 카메라 장난감처럼 사진 하고 싶지는 않다는 다짐의
초심. 얄팍한 수단의 사진이 아니라 진심을 다한 사진의 언어로 노래하는 것.
앞으로도 여전히 되새긴다.
내가 사랑하는 사진에서 언젠가 "사진이 나를
사랑해줄 때까지 사진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왜? 진정 좋아하는
것이니까.
PS : 이웃분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주소도 취합하고. 봉투에 일일이 적어야 하고 풀발라
봉인도 해야 됩니다.
작업이 상당하더라고요.
어젯밤 내내 작업 다 하고 아는 지인분이 우체국에 근무해서
다량 발송으로 우편배달할 겁니다.
PS 2. 교보문고와 알라딘에 책 정보
올라갔더군요.
Ps 3 : 책 나오니 그간 앓던 이 빠진 기분입니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실수가
있었습니다. 과욕이 앞서고 십수 년간의 사진을 얇은 책 한 권으로 압축 시킨다는 게 말같이 쉽지가 않더군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비례적으로
크다는 평범한 사실을 각성하지를 못했죠. 당초의 계획대로 안된 것도 많았지만 처음이었고 처음이니 이런저런 실수야 다 하고 사는 거니까요. 꼴랑
책 한 권에 인생을 걸까라는 기대감만 컸던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혹시나 다음 기회가 온다면 이것보다는 더 잘하면 되는
거니까요. 다소 미흡하더라도 너그러워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