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는 따져보지는 않았으나, 하여간 흑백 사진을 가끔 찍게 되었다. 왜 그런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면 딱히 꼬집어서 "이거다"라고 자신 있게 설득할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흑백사진을 자주 찍게 되는 원인을 지금에서야 생각하게 되다니, 아무튼 난 무던히도 늦다. 늘 한 템포씩 느리고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과 같은 헐렁한 태도는 항상 와이프에게 나에 대한 평가였다. 팽팽하게 긴장하고 조여진 삶은 여하튼 내 스타일이 아니다. 어디 한구석이 뻥 뚫린 모양으로 공동화되어 있는 듯한 헐렁함은 내가 살아가는 쓸모없는 방식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사진도 마찬가지로 치밀한 것은 별로 없다. 이것저것 자로 잰듯한 확실한 조건을 따지며 찍고 싶지는 않았다. 이는 성격과 사진 찍는 태도 또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겠나. 빨리 알아차린다 한들, 뭐가 좋고 나쁘고가 없으니 늦으면 늦는 거고 빠르면 빠른 것일 뿐이니 게의치는 않는다. 느긋하게 가면 무슨 큰 사단이라도 나는 것도 아니니까. 악착같이 성공하고 돈 벌어서 부자 되겠다고 바락바락 조이며 산 사람들의 끝은 역시나 타고난 금수저하고는 쨈도 안되던데 한 평생을 자신을 자학하듯 노력이란 채찍질은 차라리 인생의 굴레처럼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 살기는 싫었을 뿐. 뭐 코 막고 5분만 있어 봐라. 골로 가는 허무한 인생이고, 목 조르고 5분만 있어도 뇌사상태의 치매가 되는 허망한 생명들이다. 5분 짜리 생명을 가지고 50년이나 버둥 거려도 허망한 거야 마찬가지겠다.


이야기가 옆 가지로 셌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가시광선의 자연색을 찾지 않고 흑백을 찍는 이유는 뭘까. 색을 빼고 나니 또 지루하지만 새로운 색이 보인다. 흑백에는 흑과 백. 두 가지만 있는 줄 알았는데, 흑에서 백까지 무한대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걸 늦게 깨닫는다. 흡사 먹의 농담으로 형태를 입체감으로 만드는 것이 동양화라면 흑백사진은 동양화를 닮은 건가 싶었다. 빛으로 농담의 조절, 즉 흑백 사진은 빛의 스펙트럼을 먹의 농담이며 자연색이  흑백으로 치환되어 농담으로 표현되는 양식이었다. 어쩌면 색을 빼고 나니 심저를 더 끔찍하게 울린다고나 할까, 혹은 사진으로 떠올릴 주제가 더 강화되는 느낌도 들었다. 자연색이 때로는 거추장스러울 때도 있었다. 역시, 사진의 처음 시작이 흑백이었으니, 사진을 보는 것에서도 사진의 본질적인 추구를 따지게 된다. 처음 사진을 찍으면서 색이 화려한 것들을 찾고 색의 감각을 쫓았다면 사진을 찍을수록 이제는 색을 빼는 것을 찾게 된 원인이 흑백을 찾게 되고 찍게 되는 이유이다. 색을 걷어 냄으로써 일련의 흑백에서 만들어지는 사진의 관념은 치밀해지고 농밀해져 가는 걸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흑백사진은 색을 제거 함으로써 추출하려는 관념적 성향은 강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흑과 백이라는 무수한 계조 속에서 단순하게 보이는 선이 뚜렷한 사진이 자칫 심심하지만 결코 심심함의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저자인 사진작가가 지난 연말에 사진 개인 전시회에서 걸었던 작품을 사진집으로 출간한 흑백 사진 책이다. 이른바 전시회 사진 화보이다.. 그런데 대부분 작가들이 전시회에 사진 화보나 혹은 전시 작품을 팜플렛으로 출판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진 책을 정식으로 퍼블리싱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왜 정식 출간 절차를 거치지 않는 건지 나도 너무나도 잘 안다. 안 팔리는 거라서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책을 낸다 해도 사진 책은 소비가 되지 않으니 내봤자 출판사 돈 벌어다 주는 일만 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이 책 또한 거의 판매가 안되는 사진집일 터. 그러니 사진집을 찍어내도 출판 등록을 하지 않고 전시 관람자들에게 배포되는 걸로 종결되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아쉬운 사진 책들이 있을까 싶다. 전시회는 거리와 공간의 제약 때문에 자주 가지도 못한다면 책은 거리와 공간을 넘어설 수 있으니 전시된 작품의 사진은 대부분 묻혀버리기 마련이다. 다만 타이틀만 남을 뿐이다. 어디에서 무슨 전시회를 했다는 기록으로만 남을 뿐이지 그 전시회에서 어떤 사진이 걸렸는지는 숨겨진다. 퍼블리싱이 되지 못한 사진들이 얼마나 많을까. 또는 그런 사진을 다 볼 수는 없을까. 각기 작가 저마다의 주장과 소감과 전시회의 주제는 어떤 것인지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책은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는 사진을 세상에 주유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사실 전시회가 다 돈이란 비용이다. 그렇다고 사진을 누가 보기는커녕 구입할 만큼 재정적인 문제는 늘 멀리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각기 저마다 자기의 직업이 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사진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사진으로 밥 먹고사는 사람은 그래서 참 대단하다. 숨겨 놓은 재산이 많은 부자라면 모를까, 떵떵거리는 사람 몇이나 된다고 사진에 취향을 가지고 매진하는 사람도 상당히 드물다. 우리나라의 사진 시장은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상업적인 사진이야 극소수의 사진 전업 자영업자들이나 하는 거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사진을 먼저 알아보고 찾아내고 그럼으로써 내가 사진 찍는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사진 생활이 좀 더 고도화될 수 있다면 너무 좋으련만 현실은 사진 출간은 점점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물론,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진은 계속 찍을 것이고 시간을 기록할 것이고 자신의 삶에 내 사진의 내재적 의미를 치밀하게 새겨나갈 일만 남았다.

사진을 왜 찍냐는 말은 사진이 왜 좋은지를 묻는 또다른 질문이다. 사진 찍고 싶다는 사람에게 사진을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맘대로 찍으세요 라면 그만이다. 이렇게 저렇게 찍어라고 말하기가 싫었으며 누가 찍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으니까. 누가 찍든 말든 찍겠다고 나선다 해서 굳이 뭐라 해주고 싶은 말도 없다. 찍음 찍고 말면 마는 것일 뿐이다. 사진은 홀로 찍으러 다니니 외로운 작업이자 고독한 작업이기도 하다. 외로움과 고독이 사진의 사유에 대한 큰 힘이다. 부산을 떨며 요란스러워할 필요도 없다. 설사 여럿이 단체로 사진을 찍으러 간다 한들, 결국 사진은 시선의 위치는 혼자서 보는 시선이 전부이다. 서 있는 곳의 위치는 결코 공유될 수 없는 공간의 위치이며 시선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스타일도 다르니 비슷한 사진이라도 의도는 똑같을 수도 없다. 사진은 시간의 고유성이자 공간의 고유성과 맞물려 있다. 그러니 고독할 수밖에 없고 철저히 외로워져야 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이 책의 작가는 홀로 산사 100군데를 찾았다고 하는데 추측건대 대부분은 혼자였을 것이고 그 100군데의 장소와 시간에 따른 사진의 철저한 사유가 스님의 동안거하는 묵상으로 사진을 담아내는 흑백의 동양화처럼 짙음과 옅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어두움은 짙음으로, 밝음은 옅음으로 바꿔서 봐도 무방하다. 밝음과 어두움. 진함과 옅음. 이러한 흑백 사진에서 작가의 사상은 치열한 자신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화학적 반응을 하고 그러므로서 나오는 사유의 덩어리가 사진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진 이전에 깔려있는 근저의 밑바당에서 토해내는 주장에 사진은 덧대져 있도록 시선을 가져가는 이유도 될 것이다. 이는 흑백 사진이 심취하는 심리의 경향을 강조의 느낌이 되는 부분이다.


색은 곧 욕망으로 표현된다. 화려한 아름다움은 욕망의 화려함이다. 단순하고 소박함보다는 거창하고 현란함으로 욕망이 은유된다. 그러나 작가는 색을 빼고 단순한 선과 빛의 흑백으로만 사진을 표현했다. 사진의 공간도 다름 아닌 산사이다. 흑백의 질감으로 현시적 모습으로 다가오는 모습에서 욕망을 걷어 냈다. 속세를 떠나 무채색의 흑백은 그의 사상적 은유이다. 욕망을 비움으로써 비로소 보이는 그 존재의 본질을 더듬으려 한다. 욕망에 사로잡힌 오늘날 현대의 자본주의에 실체를 색을 걷어 냄으로써 본질을 보려 든다. 욕망을 비우면 결국 공허이다. 공과 허는 둘 다 비움이다. 비워 냄으로 보이는 그 욕망의 걷음이 주는 본질. 매일 휩싸여 있는 탐욕과 갈구의 결핍에서 끝없이 차오르는 갈구함과 갈증은 존재적인 고통의 전형이다. 비우지 못해 결핍당한 존재의 본질적 고통은 존재의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욕망에 사로잡혀서 찾아 내려 버둥 거리는 불행한 일들이 욕망을 걷어 냄으로 찾는 길. 그래서 수행자가 치열하게 머무는 산사의 모습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고작 20컷의 흑백 사진들로 구성되었는데 책을 받아 들고 한 페이지 넘기는데 십분 이상으로 사진을 봤다. 단순 담백의 흑과 백의 어둠과 밝음은 우리의 인생이 욕망과 비움 이 사이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는 가엾은 중생의 구도자가 되는 기분이 든다.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회한이 비워지는 삶을 그리고 평안함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길. 과연 무엇으로 가능이나 할 것인지 사진은 묵묵한 침묵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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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9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09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1-10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 옛날을 추억할 때 흑백사진이 더 따뜻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유레카님께서 색을 욕망이라 말씀하신 부분을 떠올려보면 당시의 소소한 감정들이 색으로 남는다면, 큰 줄기는 명암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yureka01 2019-01-10 10:14   좋아요 1 | URL
옛날 흑백사진에는 추억이라고하는 다시는 재생되지 않는 시간이 담겼으니까요..
그래서 흑백사진에서 그리움이 발견되기도 하죠..

강옥 2019-01-10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 사진이 와락 마음에 드네요.
나도 저런 사진 함 찍어보고 싶다.... 는 생각이 들만큼
먹의 농담처럼 흑백사진에는 칼라보다 더 다양한 색이 숨어있겠죠.
색깔은 욕망의 다른 이름. 현대인은 칼라에 열광할 수 밖에 없구요.

yureka01 2019-01-10 10:44   좋아요 0 | URL
사진에 대해 별로 따져 본적이 없는 분들이 이 책을 보면
너무나도 따분하고 지루하고 심심한 사진일거라 확신합니다..ㅎㅎㅎㅎㅎ
그러나 사진 깊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사진에 데해 오래 오래 이어가는 분들이
이 책에 나오는 사진을 보면 심저의 싸이렌이 미약하게 울리거든요..
저도 표지 사진에 혹했거든요.흐...

2019-01-10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0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