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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전을 읽어야 할 시간 - 흔들릴 때 나를 지키는 고전의 힘
최인호 지음 / 바이북스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동치는 세상 속, 나라는 닻을 내리는 법 – 최인호, <이제, 고전을 읽어야 할 시간>
지난 20년 동안 매년 300권이 넘는 책을 활자 삼켜내듯 읽고 음미해 왔습니다. 수많은 베스트셀러와 트렌드 서적들이 서점의 매대를 화려하게 휩쓸고 지나가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삶의 지반이 흔들리고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결국 제가 그리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종착지는 언제나 '고전'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서재에 조심스럽게, 그러나 가장 강력하게 권하고 싶은 책은 바로 최인호 저자의 <이제, 고전을 읽어야 할 시간>입니다.
이 책의 부제인 ‘흔들릴 때 나를 지키는 고전의 힘’은 비바람 치는 세상 속에서 뿌리 뽑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현대인들에게 건네는 가장 묵직하고도 따뜻한 위로이자 해법입니다. 저자는 동양 고전의 엑기스를 길어 올려, 현대인의 척박한 마음에 부드럽게 스며들도록 안내합니다.
1부. 나를 바로 세우기
책은 가장 먼저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들여 내면의 중심을 잡는 작업부터 시작합니다.
'part 1. 나를 먼저 제대로 알기'에서는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우리에게 존재의 본질적인 존엄성을 일깨워 줍니다. 저자는 『중용』의 첫 구절에 담긴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을 빌려 선언하듯 말합니다.
"너는 하늘의 성품을 지닌 사람이야."
우리가 세상에 던져진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얼마나 존귀하고 완전한 본성을 품고 태어난 존재인지 깨닫는 것. 그것이 고전이 안내하는 자기 인식의 위대한 첫걸음입니다. 더불어 주희의 ‘인지 애지리 심지덕야(仁者 愛之理 心之德也)’를 인용하며, 공자가 강조한 '인(仁)'이라는 것은 고루한 도덕 규범이 아니라 '사랑의 이치이며, 마음의 덕'임을 짚어냅니다. 나 자신을 하늘의 성품을 지닌 존재로 온전히 사랑하고 긍정하는 마음의 덕을 갖출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나'를 대면하게 됩니다.
'part 2. 나 사용 법'에서는 이렇게 발견한 나를 세상 속에서 어떻게 굴려가야 할지에 대한 실천적 지침을 다룹니다. 우리는 흔히 중용을 기계적인 중간치기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고전이 말하는 '중(中)'은 '하늘과 땅 사이 가운데에 있는 나'로서 굳건히 주체적인 중심을 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용(庸)'은 그 중심을 바탕으로 '떳떳하게 나를 사용하는 법'을 뜻합니다. 일상 속에서 변함없이 나의 도리를 다하는 태도입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동양 고전의 지혜를 설명하며 서양 철학을 절묘하게 아래와 같이 블렌딩하여 풍미를 더합니다.
"스피노자의 말이 중용을 또렷하게 밝혀준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코나투스(Conatus)'라고 불렀다."
자기 자신을 보존하고 완성해 나가려는 생명력의 본질인 코나투스는, 결국 떳떳하게 나를 지키고 세상에 나를 온전히 사용하는 '용'의 서양식 표현일 것입니다. 동서양의 통찰이 만나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깊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2부. 세상과 소통하기 : 지적인 관계 맺기의 기술
단단하게 나를 세웠다면, 이제 문을 열고 세상과 타인을 마주할 차례입니다.
'part 3. 세상과 소통하기 - 사람관계의 일'은 현대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관계와 부(富)에 대한 날카롭고도 통쾌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여기서 가장 가슴을 울리는 개념은 '이재발신(以財發身)'입니다. 돈과 스펙이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듯한 세상이지만, 저자는 분명한 삶의 우선순위를 긋습니다. "당신이라는 자산이 단단히 바로 서 있을 때만, 당신의 모든 재산도 비로소 가치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텅 비어있다면 백만 금도 모래성에 불과함을 경고하는 서늘한 가르침입니다.
나아가 이리저리 치이고 상처받기 쉬운 관계 속에서 우리를 지키는 단 하나의 무기로 '서(恕)'를 제안합니다.
이는 타인을 무조건적으로 품어주며 나를 갉아먹는 맹목적인 희생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가장 지적인 용서'로서의 서(恕)입니다.
공자에게 제자 자공이 평생토록 실천할 한 단어를 묻자 대답했던 명문장,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즉,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마라"는 이 지침은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의 매듭을 단숨에 베어내는 명쾌한 지혜입니다.
서(恕)는 상대와 같은 마음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전제가 먼저 내 중심이 바로 서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충(忠)이라는 단어와 연결한 '충서(忠恕), 나에게 진실할 때 남이 보인다' 라는 지혜를 살포시 우리의 주머니에 넣어줍니다.
20년간 수천 권의 책 향기를 맡아온 제게 <이제, 고전을 읽어야 할 시간>은, 잘 묵혀두어 짙고 깊은 풍미를 내는 최고급 빈티지 와인과도 같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박제된 옛 성인들의 한자어 풀이가 아닙니다. 요동치는 일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발밑을 단단하게 다져주는 가장 현대적이고 실전적인 생존 매뉴얼입니다.
이유 모를 공허함에 시달리고 있다면, 혹은 타인과의 껄끄러운 관계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려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면 이제 잠시 멈춰 서서 이 책을 펼쳐 보시길 권합니다.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묵직한 고전의 언어들이, 흔들리는 당신의 어깨를 단단하게 끌어안아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