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박영자 지음 / 한길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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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의 맛이 기억나지 않았다. 언젠가 그때, 친구들과 카페에서 두서너 번 마셔보았던 홍차의 맛이 내 기억 속의 전부였다. 마지막 맛이 씁쓸했던 내 기억 속의 홍차. 영국의 노동자들이 홍차를 꿀꺽꿀꺽 마셨다는 부분에서는 나도 따라 희미해진 기억 속의 홍차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영국과 홍차 사이에서 찾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긴 이 책은 비단 영국의 홍차뿐만이 아니라 영국의 역사와 그 나라에 깃든 문학, 미술, 영화, 드라마, 그리고 커피,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야기가 홍차와 함께 담겨 있다. 홍차의 맛을 음미하듯 이 책을 천천히 음미해 보았다.

홍차는 영국인들에게 정말 특별했다. 귀족들에게 차는 어떻게 보면 사치였고, 자신들의 고귀함을 나타내는 것이었지만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홍차는 힘든 하루로부터 잠시 해방감을 느끼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귀족들이 격조 있게 차린 다기에 홍차를 마신 그 장면보다 노동자들이 하루의 일을 마치고 감자와 함께 커피 또는 차를 마시는 그 시간을 반짝이는 마음으로 자꾸 상상하게 되었다. 어떤 노동자들에게는 그것이 한 끼의 저녁이 되기도 하였다. 차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데도 홍차의 나라가 된 섬나라 영국. 날씨와 영국 사람들의 성격, 그리고 차 먹는 시간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중간중간 등장해주는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명화는 나를 또 행복하게 만들었다.

총 3부로 나누어진 이 책은 1부에서는 홍차의 아우라에 대한 감성 편, 2부에서는 중국에 차 재배 비법을 빼오기 위해 스파이를 보내기까지 했다는 것에 이은 욕망 편 3부에서는 홍차 중독자가 된 영국 사람들의 미식 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1년 6개월 간의 영국 여행을 통해서 홍차와 영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저자의 글쓰기가 상당히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차갑고 습기가 많은 나라 영국. 영국 속에 홍차가 있지 않았다면, 이 나라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역사 곳곳에 스며있는, 홍차의 이야기가 너무도 많았다.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을 때,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마실 거리를 찾을 때, 어쩌면 나도 홍차 한 잔이 그리워 질지도 모르겠다. ​영국인들이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홍차 한 잔. 그 따뜻함이 이 깊은 밤 그립다

 

19세기 내내 영국의 식단에서 빵은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가난한 가족의 경우에는 차 또한 그러했다. 이들의 하루 식단은 차 몇 온스와 설탕, 치즈 몇 조각 그리고 가끔 앚 약간의 고기를 먹는 정도였고 나머지는 모두 빵이었다. 영양분이 거의 없는 메마른 빵 조각이라 할지라도 설탕이 든 차를 마시며 먹을 수 있다면 괜찮은 식사가 되었다. 비록 소박하지만 뜨거운 홍차가 있었기에 이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고 마음의 피로를 씻을 수 있었다. (p.47)

우리는 커피가 우리를 서두르게 만들고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빼앗아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반면, 차는 우리를 느긋하게 만들고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제공합니다. 차는 음료가 아니라 삶이 주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경험하고 즐기게 만드는, 즉 의식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물질인 것입니다. (p.141)

 

영국인들은 정말 익사할 정도로 차를 많이 마셔왔다. 또 이들은 스스로를 '차 중독자'라고 말하는 데 머뭇거리지 않는다. 1990년대 초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한 사람이 1년 동안 400잔의 홍차를 마셨고, 러시아인이 275잔을, 독일인이 36잔을 마신 데 비해 영국인은 2,000잔을 마셨다고 한다. 최근 BBC는 영국인이 하루에 마시는 차의 총량이 대략 1억 2만잔이라고 보도했다. 영국인들은 하루의 티타임이 잦으면 잦을수록 행복을 느낀다. 전 세계적으로 커피가 사람들의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지만 영국인들에게 차, 특히 홍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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