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라디오
이토 세이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영림카디널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자연재해나 사건 사고로 인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갔다. 그들에게는 가족들이 있을 테고, 따뜻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을 테였다. 그런데 그 수많은 넋들은 다 하늘나라로 가버렸을까? 아니면 아직도 가슴에 남은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아서, 혹은 가족들 곁을 떠나지 못해 세상을 떠돌고 다니고 있을까. 이 비밀은 언제쯤 풀릴 수 있을까? '상상 라디오'라는 제목의 이 책은 죽은 원혼들을 달래 줄 한 남자의 상상에서만 들을 수 있는(죽은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후쿠시마 동 일본 대지진 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초점은 맞추어져 있다. 그중 대지진 쓰나미로 목숨을 잃은 한 아내와 아들의 남편인 아크 씨로부터 진행되는 상상 라디오의 이야기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 그날, 베란다에서 쓰나미에 휩쓸려, 삼나무 한 그루에 걸려 이리저리 끌려가다 목숨을 잃었고, 그의 넋은 삼나무 높은 곳에 걸려 있다. 아내와 아들의 행방은 모른 채 상상 라디오를 통해 그들이 듣기를 바라지만, 아내와 아들은 그 라디오를 듣지 못하고, 그들의 소식을 듣지 못한다. 하지만 죽은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라디오이기 때문에 그는 또한 자신의 가족이 살아 있으리라는 한 가닥 희망을 간직 한 채 상상 라디오를 진행한다.

 

죽음에 닿은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또 그들의 살아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상상 라디오를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서로 나누게 된다. 그를 통해 진정으로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만들어주는 소설이다. DJ 아크 씨로부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아내와 아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으며, 또한 자신의 가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라고 애달프게 읊는 구절에서는 눈물이 왈칵 흘러내렸다. 일본 대지진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은 우리들에게도 또한 맞닿아 있는 이야기라서 그리 먼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죽은 사람에게 마음의 미련을 두지 말고 당당히 살아가야 한다고. 산 사람들은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사람들의 넋은 산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마음 아파할까 봐 그들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 또한 가슴이 아팠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견디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나의 귀에도 가끔씩 '상상 라디오가' 들려준다면..라는 마음도 들었던..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

 

 

 

말이지요,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을 제일로 생각해야만 해요. 세상을 떠난 사람을 애도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은 잘 알지만, 그건 진짜 가족이나 지역 사람들이 매일 하고 있다는 것을 체육관에서도 임시 주택에서도 얼마든지 보아왔지 않습니까. 그 분들은 상자로 위패를 만들어서라도 애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의 영역이라고 할까요. 그런 곳에 우리 같은 무관한 사람이 흙발로 들어가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아무것도 잃지 않은 우리는 뭔가 얘기를 하기보다 그저 지금 살아 있는 사라을 묵묵히 돕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p.74)

 

죽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바로 잊고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해. 정말 그래. 언제까지고 연연하고 있으면 살아남은 사람의 시간도 빼앗겨 버려. 그런데 정말로 그것만이 옳은 일일까. 시간을 들여 죽은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슬퍼하고 애도하고, 동시에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죽은 사람과 함께. (p.146)

 

두 사람이 나 때문에 어떤 식으로 슬퍼하고 있는지. 이제 와서 알아봐야 소용없지만, 나한테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걸 알고 싶습니다. 그걸 알고 분개하고 싶습니다. 이를 갈고 싶습니다. 저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할 때, 아내는 아들에게 어떤 얘기를 할지, 아들은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할지. 혹시 이렇게 된 나를 미워한다면 그 증오의 말을 격렬한 불꽃을 받듯이 듣고 싶습니다. 아직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면 부디 두 사람 마음이 바람 없는 날의 호수처럼 잔잔해지기를, 저는 이곳에서 기도하고 싶습니다.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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