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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구할 것인가?
토머스 캐스카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책의 첫장을 넘기자, 책의 표지에서 볼수 있는 그림 한장과 함께 갑자기 전차 문제가 등장한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전차가 질주하고 있는 중. 아무런 제지도 없이 전차가 직선 선로로 간다면, 그 곳에서 일하고 있는 5명의 인부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선로의 제어장치를 당겨 선로를 바꾼다면, 옆 선로에서 일하는 단 한명의 인부만 희생될 것이다.
자.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단박에 튀어나온 결정은 이것이었다. 다섯명의 목숨보다는 선로를 바꿔 한명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을 선택해야지! 라고 말이다. 누구나 다 처음은 그런 결정을 하지 않을까? 다섯명의 목숨보다 한명의 희생이 더 적은수이니까. 그렇잖은가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이 문제가 나를 귀찮게 만들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드는 문제였다. 집안일을 하면서 하루종일 떠나지 않은 이 질문이었는데..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과연 정말 맞는 일일까? 올바른 결정일까? 라고 말이다. 내가 전차의 방향을 이동시켜서 그 인부의 죽음을 결정할 권한이 나에게 주어진다는 것이 맞는가? 그 소중한 한명의 생명을 내가 좌지우지 할 수 있는가 말이다. 이런 생각으로 처음의 내 결정은 서서히 작아져갔던 것 같다.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질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결정을 한 책 속 주인공은 대프니 존스라고 하는 27살 여성이었다. 그녀는 손잡이를 당겨 5명의 목숨을 살렸지만, 1명의 목숨을 그 희생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그녀는 살인죄로 기소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은 사회적, 문화적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이슈가 되고, 문제가 되면서 과연 그녀가 한 행동이 정당한 것인가? 라는 문제로 서로의 의견을 내놓는다. 그렇게 대립되는 상반된 의견들이 오고가고, 책은 거기에서 끝난다.
사실, 그 단 하나의 전차문제를 가지고, 그녀의 죄가 무죄다, 유죄다. 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이쪽편을 들으면 맞는것 같고, 또 저쪽편의 말을 들으면 그도 맞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론을 들고 나와 이야기하지만 그 반대편은 또 그에 맞는 이론을 들고 반박한다. 칸트와 니체,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들을 포함해 머리 아픈 법정 소송이 진행된다. 나는 아직까지 어느 것이 옳은 것이고, 맞는 일이었는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
자- 당신이라면 누구를 구할 것인가? 어서 대답해 보라.
약자는 강자에게 지배당하고 싶지 않지만 맞붙어서 이길 도리가 없으니, 원한에 사로잡혀 강자에겐 '악'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자신에겐 '선'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요. 말하자면 선과 악은 패배자가 정의했다는 거예요. 우리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서, 누가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뺨도 돌려 대는 것을 선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니체는 우리가 다른 뺨을 돌려 대는 이유는 상대의 뺨을 올려붙일 만큼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강자에게 '악'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복수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고 여긴다고 말하죠. (p.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