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삼악산에 위치한 삼악동을 사람들은 삼벌레고개라 부른다. 이 삼악동은 흡사 한 나라와 같다고 말할수 있겠다. 아랫동네 사람들은 집도 번듯하고 식모를 부리며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고 힘든 시절을 상징하는 '보릿고개'의 단어를 기피하듯이 누군가 그들의 동네 이름을 '삼벌레고개'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하였다. 그와 반대로 윗동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아랫동네에 식모로 가 일하기도 하고, 몸이나 정신이 어딘가 성치 못한 사람들이거나, 백수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 중턱에 사는 사람들은 양쪽다를 어우르며 섞여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이 삼악동, 삼벌레고개에는 그렇게 가난한 사람, 잘사는 사람, 그 중간들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책의 초점은 이 세공간 중 중턱에 위치한 우물집에 맞춰져 있다. 우물집의 주인인 순분네는 이날 자신의 우물집 빈방에 세들어올 가족(앞으로 순분네는 이 가족을 새댁네라고 부른다)에게서 받은 돈을 촵촵 세고 있는 중이다. 새댁네 둘째 딸 원과 순분네 둘째 아들 은철은 이날 부터 7살 동갑내기 친구로 어울리게 된다. 비밀을 좋아하는 원은 은철에게 우리는 스파이가 되어야 한다며 동네 사람들의 이름을 밝히자고 속삭인다. 두 아이들은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알아내면서 우물옆에서 벽돌을 갈아 독약을 준비해 그들중 미워하는 사람의 이름을 저주한다.

 

아이들의 스파이 놀이와 어른들의 세계에서 어울리는 그들의 동심은 책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누군가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일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그 작은 아이들도 알아가면서 책의 밝고 환했던 이야기는 조금씩 먹구름이 깔리게 된다. 은철은 사고로 절름발이가 되고, 새댁의 남편은 간첩으로 수갑을 차고 잡혀들어가 모진 고문을 받고 끝내야 시체로 돌아오게 된다.

 

늦은 밤, 이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고,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며 이 책의 내용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을때, 마음에 떠올랐던 장면이 있었다. 원이 순분네가 해주는 볶음밥을 먹으며 우는 장면이었다. 새댁의 남편이 시체로 돌아오고 난 후 새댁은 정신을 놓아버렸다. 원은 항상 함께하는 인형인 희를 빼고는 그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는다. 안쓰러웠던 순분네는 새댁이 자주해주었던 계란볶음밥을 원과 은철에게 해주는 장면. 맛있냐는 순분네의 물음에 원은 맛있다며, 하지만 우리 엄마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어야 한다고 울부짖는다. 그 장면이 어찌나 마음이 아팠던지. 그 작은 아이 원이 내뱉던 말과 함께 내 가슴을 쾅쾅 두드려 댔다.

 

눌은 놈, 덜 된 놈, 찔깃한 놈, 보들한 놈. 원이 엄마가 해준 계란이 후라이판에 달라붙은 정도에 따라 말한(새댁네가 말한) 이 단어가 흡사 어른들에게 내뱉은 호통의 말 같아서 너는 이런놈들이다. 라고 지명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순분네도 결국엔 이 아이들을 져버렸지 않은가? 나는 그 사이에 어느놈인걸까? 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어보게 되었다. 결국 아이들의 마음은 토우처럼 가슴에 흙덩이가 되어버렸고, 평생 그 아픔을 가지고 살게 될 것이다. 토우의 집은 사람이 살았던 곳이었으나 결국엔 흙덩이로 만든 토우의 집이 되어 버렸다.

 

 

 

 두 아이는 각자의 서러움에 복받쳐 울었다. 애초부터 계란볶음밥 같은 건 문제도 아니었다. 어린 스파이들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것들 때문에 울었다. 일 년도 안 된 지난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울었다. 이 모든 일이 어린 그들에게 지나치게 억울하고 가혹해서 울었다. 순분은 두 아이를 안고 눈물을 훔치면서 원이 던진 수수께끼 같은 말을 생각했다.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고, 그렇게 다 있다고 했지. 눌은 놈 덜 된 놈 찔깃한 놈 보들한 놈. 순분은 그게 마치 사내들에 대한 형용 같다고 생각했다.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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