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앞에 인간성이 결여된 한 인간이 서 있었다. 겉모습은 부서질 듯 보이고, 그의 눈빛은 한 연햑한 인간을 향하고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낙오자이며, 작은 아이를 억압하는 것으로 힘을 과시하려는 인간. 연민을 느끼게 하는 광경이었다. 나에게 자신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라고 강요하는 철면피 같으니라고!-127쪽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삶에 가능한 한 만족하려고 노력했지만, 항상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범인의 통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인터폰을 통해 들리는 그의 목소리가 내 신경을 긁었다. 마치 사람들이 나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는 가운데 유리 상자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146쪽
범인이 끔찍한 범죄라는 우회로를 거쳐 그의 작은 세계, 행복한 세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있는 그런 세계를 창조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그것을 이룰 수 없었기에 누군가에게 그 세계를 강요하고 그 목적에 맞게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151쪽
이 사회는 볼프강 프리클로필과 같은 범인을 필요로 한다. 그 사회 안에 존재하는 악에 형상을 부여하고 그 악을 자신으로부터 분리해내기 위해서, 사회는 지하감방과 같은 배경을 필요로 한다. 폭력이 그 파렴치하고 악랄한 얼굴을 무수한 방이나 앞마당에서 드러내는 광경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범죄의 수많은 익명의 피해자들, 아무리 도움을 요청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나와 같은 엽기적 사건의 피해자를 교묘하게 이용한다-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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