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 간다. 도서관을 찾는다. 수천 권의 책이 꽂혀 있다. 수백만 권의 책이 쌓여 있다. 그 많은 책들 속에 담겨져 있는 비밀을 몽땅 알아내고, 그 많은 책들이 제공해 줄 지식을 빠짐없이 소유하고 싶은 파우스트적 지적 욕망의 충동을 막기란 어렵다. 큰 책방이나 큰 도서관에 들어가면 그 모든 책을 읽겠다는 의욕이 부풀어오르고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 새삼 솟아오른다. 그러나 이 같은 책에 대한 애착, 지식에 대한 의욕이 별안간 오히려 책이 주는 억압감, 지식에 대한 피로감으로 변할 수도 있다-25쪽
어린 시절 책읽기를 좋아하게 된 것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홀로 빠져들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글줄을 쫓는 두눈의 흐름에 자연스런 리듬이 생기고 숨소리가 고요해지면서 어느덧 생각은 다음 페이지로 내딛는다. 가만히 책장을 넘기는 순간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가 펼쳐진다. 나도 없고 책도 없다. 다만 한 줄 한 줄마다 나와 책 사이에 이루어지는 어떤 내밀한 묘합의 순간만이 이어진다. 결코 빼앗기기 싫은 나만의 충일한 시간-50쪽
독서를 놓고 책은 모름지기 이렇게 읽어야 좋다느니 그렇게 읽으면 해롭다느니, 이런저런 말도 참 많다. 다양한 독서론 혹은 독서법들이 제 나름의 일리를 갖추고 있을 게다. 각자의 취향과 습벽에 맞게 그 일리를 취하면 그만이다. 다만 독서가 행동이라는 점은 분명히 해둘 일이다. 두 발로 땅을 박차며 숨가쁘게 뛰지도 않으면서 달리기에 관해 이런저런 말을 하고 요모조모 궁리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2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