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전철은 참 아름답다. 환하고 따뜻해 보인다. 플랫폼을 올려다보다가, 나는 황홀감에 젖는다. 분수에서 울리는 낮은 물소리, 역내 방송과 발차를 알리는 부드러운 벨 소리, 바람 소리,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나는 안심하고서, 그대로 잠들어버릴 것처럼 노곤해진다. 주머니에 두 손을 쑤셔 넣자, 껌 종이가 손가락에 닿았다. 12시 45분에 떠나는 마지막 전철을 보내고, 사람들의 흐름이 끊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일어섰다. 폐 안에 듬뿍 밤을 들이쉰 나는 기운이 넘친다. 산책을 하면 늘 그렇다.-53쪽
때로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에 대해, 그동안에 생기는 일과 생기지 않는 일에 대해, 갈 장소와 가지 않을 장소에 대해 그리고 지금 있는 장소에 대해. 대개는 낮에 인생을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날씨가 좋은 낮. 싸늘한 부엌에서. 전철 안에서. 교실에서. 아빠를 따라간 탓에 혼자서만 심심한 책방에서. 그런 때, 내게 인생은 비스코에 그려진 오동통한 남자애의 발그레한 얼글처럼 미지의 세계이며 친근한 것이었다. 내 인생. 아빠 것도 엄마 것도 언니들 것도 아닌, 나만의 인생.-1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