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그 말의 가벼운 울림. 세리자와를 만나면서 시즈에는 처음으로 자유를 어떻게 만끽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목도리를 목에 둘둘 감고 장갑을 끼면서 오늘 아침의 세리자와를 생각한다. 푸시시한 머리, 아름다운 손, 그리고 다정하고 평온한 목소리. 가령 좋아하는 남자의 등에 기대에 얼굴을 묻는 것, 고작 그뿐인 동작조차 지금은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세리자와를 만나기 전의 시즈에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27쪽
늘 그렇다. 한번 깡통을 열고 나면 끝내는 쓰쿠이의 망령이 온 사방에 들러붙는다. 망령은 기억이 되어 가호의 일상을 파먹고, 한시도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가호는 마치 쓰쿠이가 뒤에서 꼭 껴안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곁에 있어주었으면 싶을 때는 있어주지 않았으면서, 하고 생각하며 가호는 원망스러운 듯이 장롱 위에 있는 깡통을 올려다보았다-96쪽
언젠가 이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 있어도 이 풍경을 추억으로 삼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기억은 장난감 블록과 비슷하다. 언뜻 보면 색깔도 알록달록 서로 다르고 모양도 다르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편리하게 기획되어 있는 것이다. 가호처럼 기억의 블록을 무수히 쌓아 올려 그 안에 틀어박히고 싶지는 않았다.-104쪽
시간은 저렇게 무정하게 흘러가면서, 어떤 곳에서는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척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아주 흐름을 멈춘 척한다. 그래서 모두들 혼란스러워하는 것이라고 시즈에는 생각한다. 물론 약한 사람만이 겪는 그런 혼란 때문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고 화가 나지만, 그 사실과 사진에서 눈길을 돌린 자신이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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