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인간
아베 고보 지음, 송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절판


마음의 방향 감각이 마비되는 것은 상자인간의 지병이다. 그때마다 지축이 움직이고, 뱃멀미 같은 구역질에 호되게 고생한다. 단지 어찌된 일인지, 낙오자라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 상자를 꺼림칙하게 느낀 적조차 한 번도 없다. 상자는 내게 있어 고생 끝에 이르른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오히려 별세계로 나가는 출구와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어디로 나가는 것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어딘가 별세계로 가는 출구....라고는 했지만, 조그만 엿보기용 창으로 밖을 살피며 그저 구역질을 견디고 있을 뿐이라면, 막다른 골목과도 별반 다를 게 없다. 허풍을 떠는 것은 관두자. -32쪽

나는 나의 추함을 잘 안다. 낯 두껍게 타인 앞에서 알몸을 드러낼 정도로 뻔뻔스럽지는 않다. 하긴 추한 것은 결코 나만이 아니다. 인간은 99퍼센트가 덜떨어진 존재다. 인류는 털을 잃었기 때문에 의복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알몸의 추함을 자각해서 의복으로 감추려 했기 때문에 털이 퇴화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어떻게든 타인의 시선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눈의 부정확함과 착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11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