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9
김승옥 지음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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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이 글을 읽으면서 무진에 가서 책 속에서 묘사된 그 자욱한 안개를 꼭 한번 보노싶노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학창시절이 지나 다시 한번 더 읽게 된 지금도 아직 무진엘 가보지 못한 채였다. 더 어이없었던 것은 <무진기행> 이라는 글이 단편이었는지 장편소설이었던지도 가뭇해졌다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았을때, 이 글이 이만큼이나 두꺼운 장편 소설이었던가.. 라는 의구심을 가졌으니. 학창시절 배웠던 <무진기행>의 단편소설이 기억의 언저리에 살포시 날아갈라 말라 할 찰나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김승옥 작가의 단편소설 총 10편이 수록된 이 책은 작가만의 생경한 글쓰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알찬 책이었다. 비단 오랜만에 만난 <무진기행>의 느낌뿐만 아니라, 나머지 단편들도 특별한 분위기와 사회적 소외 계층들의 이야기. 코믹한 이야기 들이 실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딘가 <무진기행>의 분위기와 사뭇 닮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단편이 <염소는 힘이 세다> 라는 제목의 글로, 어린 소년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이 제목의 울림이 계속 귓가에 남는 것이었다. 염소는 힘이 세다.. 염소는 힘이 세다.. 라고.. 누나가 한 남자에 의해 성폭행 당한 것을 목격하고, 그 남자를 멸시의 눈으로 바라보는 동생. 그런데 어느 날 그 남자와 다시 만나고, 그 남자에 의해 직장을 얻게 된 누나를 보면서 남자에게 주었던 멸시의 시선을 누나에게 보여주게 되는데.. 씁쓸하면서 뭔가 묘한 여운을 남겨주는 글이었다.

10편의 단편들이 밝지는 않다. 무진의 안개처럼, 앞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습기가 가득 찬 그런 우울함이 자욱하게 깔린 느낌들의 단편들로, 김승옥 작가의 글 느낌 모두가 이런 분위기를 내는 걸까. 라는 궁금증도 일었다. 그리고 무진..  다시 한번 더 그곳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또다시 해본다. 이번 주말에는 무진으로 떠나볼까.. 라는..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이불 속에서 이 책을 읽으면 딱 좋을. 그런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다시 만날 무진을 기약하면서..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p.10)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다.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넉이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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