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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바덴에서의 여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3
레오니드 치프킨 지음, 이장욱 옮김 / 민음사 / 2006년 4월
평점 :
내 서가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전집 18권이 다소곳히 존재해 있는데도, 나는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질 못하고 아껴 아껴 눈요기로만 하고 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읽어보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책들 중의 각권들인데, 그 책을 읽기에 앞서, 먼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을 잠깐 들여다 보게 된 책이 이 책.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저 두꺼운 책들을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 치프킨은 열렬한 도스토예프스키 애찬인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도스토예프스키가 머문 바덴바덴에서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이 소설을 썼는데,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반면에 치프킨의 삶을 함께 드여다 볼 수 있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냥 읽어보지는 못한 그가 쓴 책 제목의 몇권 정도와 명성만 알 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삶과 성격이 괜시리 괴테와 비교가 되어졌다. 이 두 작가는 아주 많은 책들과 그에 걸맞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괴테와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다.
도스토예프스키. 그의 두번째 아내 안나가 부르는 그의 이름 폐가는 바덴바덴에서 머무는 그 시간동안, 노름에 푹 빠져 있었다. 푹 빠져 있다는 것보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병적으로 말이다. 그런 그에게서 안나는 어떻게 함께 살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내의 옷조차 가져가서 팔고, 노름을 했던 도스토예프스키. 그러면서도 그는 아내에게 속죄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폐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이 이 바덴바덴이었다. 도박은 점점 더 빛을 불려갔고, 죽음은 다가오고 있었다. 이후 알려진 그의 이름에 비하면, 상상해 볼수도 없는 삶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아내 안나가 어느 날, 허구헌날 도박장에 가 있던 폐가처럼 도박장에 가서 도박을 한 날이었다. 그것을 목격한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아내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기보다는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노름꾼 아내' 라는 책의 제목이 생각났다고.. 아내 안나는 헌신적이었으며, 폐가를 너무도 많이 사랑한 것처럼 보였다. 자신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처럼 넓은 이해심을 가지고 있는 여자. 안나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불운했던 마지막과 바덴바덴에서의 시간들. 그리고 그 뒤를 쫒아가는 치프킨의 삶의 단편들이 이 책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자. 이제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을 눈요기에서만 끝내지 않고, 손을 뻗어 한 권씩 탐독해 보아야 겠다. 그의 전 생애를 들여다 보고 싶다.
이제 바덴바덴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일상은 불면의 밤에 다름 아니었다. 깊이 잠들었을 때조차 시간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를 느끼고, 또 밤이 한량없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폐자는 우선 자신의 약혼반지를. 다음으로 그가 결혼식 때 선물한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금귀고리와 브로치를 저당잡혔다. 그가 이것들들 가지고 나가자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는 울다가 급기야는 통곡까지 했다. (p.162)
추락의 속도가 점점 더 그를 사로잡았다. 만일 정상을 향해 올라갈 때 어떤 한계를 넘어설 수 없었던 거라면, 그래서 지금 이렇게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라면 차라리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떤 한계 같은 것. 어떤 경계라 할 만한 것. 넘어서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그런 것들이, 정말 있기는 했던 걸까. (p.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