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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3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정보라 옮김 / 민음사 / 2007년 8월
평점 :
그가 어떤 생각으로 삶을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지면으로 본 그의 인생을 바라보는 나의 느낌은.. 상당히 불운해보였고, 갑갑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1형제의 맏이로 태어나 아버지를 도와 가난한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야 했으며, 결혼후에도 15살 아들이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체포되어(가족중 누군가가 죄를 지어도 가족들도 해를 입었다.)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내지는 작가. 그리고 이후 결핵에 걸린 아들을 간호하다, 자신도 결핵에 걸려 죽음에 이르게 되는.. 심지어 그가 쓴 책들은 정치적 성격이 강해, 그의 생존에는 알려지지 못했다가, 그가 죽고 난 이후 알려지게 된다. 불운한 삶을 살았던 작가의 숨결을 이 책을 통해 느낀다.
책에서는 흡사 조지 오웰이 쓴 듯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는데,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조지 오웰작가의 <동물 농장>이란 책이 거듭 생각났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된, 점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이 생각했던 처음의 의도와는 반대로 점점 파멸로 나아간점.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구덩이도. 처음에는 모든 무산계급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주의 집을 짓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그 구덩이는 나스탸의 마지막 무덤이 되고 만다.
한명의 주인공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상황에서 그에 등장하는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은 특별한 구조를 갖고 있긴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집중할 수가 없는 번잡한 느낌도 마지 않아 들었다. 보셰프라고 하는 한 노동자는 어느날 회사로부터 통지서 한장을 받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보셰프가 일하던 중 사색에 빠졌다는 이유로 해고되는데, 그것이 이유라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직장을 전전해야 하는건지.. 훗.
보셰프는 직장을 잃고 헤메던 중 집단 거주 공간을 위해 구덩이를 파게 되는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다른 몇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끊임없이 일만하고 정직한 말 그대로 정직한 노동자인 치클린. 지식이 낮고 소심하며 비열한 조합위원장인 파시킨. 그리고 다리가 한쪽이 없는 불구의 몸을 가진 자체프. 유일하게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나약하고 삶에 대해 아무런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은 프루솁스키. 그리고 엄마를 잃고 그들 사이에서 자라는 나스탸. 이들은 그들이 바라는 것을 위해 구덩이를 판다.
그러나 점차로 그들은 그들의 원래 목적과는 달리, 부농인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죽이고 폭력을 행하는 일에 몰두하게 되면서, 끝내는 나스탸를 죽음으로 이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열정했던 그 구덩이는 나스탸의 무덤이 되고 만. 비극으로 마무리 되는데, 보셰프 조차도 애초에 그들을 비난했던 것을 잊어버리고 그들사이에 묻혀버린다. 마지막에 가서는 참으로 허무하게 끝나는 소설이었다. 그들이 바라던 이상향을 버리고, 구덩이를 버리고, 전체의 일부로 되어버린 인간들.. 약간 집중하기 힘든면은 있었으나 지루함 없이 재밌게 잘 읽은 책이었다.
밤이면 여러 가지 꿈이 노동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어떤 것은 소망이 충족되는 것을 나타내고, 어떤 것은 진흙 무덤 속에 있는 자신의 관에 대한 예감을 불러온다. 그러나 낮 시간에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허리를 구부리고 살아간다. 참을성 있는 육체로 대지를 파서 파괴할 수 없는 건축물의 영구적인 뿌리가 신선하고 깊은 구덩이에 놓일수 있도록. (p.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