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을 잡아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솔 벨로우 지음, 양현미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내자!! ' 라고 큰소리를 쳐봐도,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녹초가 된 몸으로 집으로 올때는 그 외침이 무색해지도록 사는 것이 참으로 힘들구나.. 라는 한숨뿐이다. 언제쯤, 우리는 '아, 이제사 살만하구나..' 라는 안도감을 외쳐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만족일지도 모르겠으나. 매일 매일을 치여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루의 일상이 힘들게 다가온다.
40대 중반의 책속의 윌헬름도 그러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직업을 잃고, 가족으로부터는 버림을 받는다. 두아이와 아내와는 만나지도 못한 채 생활비를 대줘야 했으며, 부유한 의사인 아버지로부터는 왜 그런 삶을 사냐며, 비난을 받는 남자. 윌헬름. 이 사내는 뉴욕의 한 호텔에 거주중이면서,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는 이야기이다.
가족 중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윌헬름 뿐이었다. 그는 배우의 길로 나서겠다는 야망을 가진것때문에 채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그러나 그의 꿈은 좌절대고, 직장일을 시작하지만, 그 직장일도, 회사의 배신으로 직업을 잃게 되는데, 호텔에서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며 지내고 있다. 그러던 중 호텔에서 만난 탬킨 박사의 권유로 자신의 전재산을 도박에 걸지만, 그 전재산을 들고 도망간 탬킨 박사는 사기꾼이었다.
이 책에서 나의 주의를 끈 인물은 주인공 윌헬름이 아닌 그의 아버지였다. 은퇴한 노의사인 애들러 박사는 자신의 아들인 윌헬름을 충분히 도와줄수 있는 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들의 현재 처한 상황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외면한다.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철저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 이 아버지에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 관념이 옳다고는 생각되지만, 자식의 어려움 앞에서, 외면하는 아버지의 모습. 좀 삭막하다고 해야 할까. 자식인 윌헬름과 아버지 애들러 박사 이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사회로부터 외면받는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인 윌헬름의 모습보다, 가족에게서 버림받는..(아내조차도 외면하는..) 그의 모습이 더욱더 비관적으로 보였음에,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굳이 소설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에, 더 그렇게 다가온다..
윌헬름은 성공한 사람들의 냉소주의를 보면 특히 가슴이 서늘해지곤 했다. 냉소주의는 모든 사람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빈정거림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 심지어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윌헬름은 그런 것들이 정말로 무서웠다. 하루 일과가 끝난 후 유달리 피곤이 느껴질때면, 그는 냉소주의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엔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고, 너무나 많은 거짓이 존재했다. (p.31)
결국 인생살이란, 즉 인생의 진짜 임무란, 윌헬름처럼 특이한 짐을 짊어지고 수치심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눈물 맛을 보는 것이다. 이 유일하고도 최고로 중요한 일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아마도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야말로 그가 사는 목적이며,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라는 존재의 본질을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p.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