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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강렬한 빨강이라는 제목이 잊혀지지 않았던 <내 이름은 빨강 1.2> 그 이후로 참으로 오랫만에 만나는 오르한 파묵 작가의 소설이다. 이 작가의 이름을 지그시 불러보면, 오르한 에서는 그 어떤 부드러움을. 파묵 에서는 강함을 느낄수 있어 그의 이름을 입안에서 불러볼때는 어떠한 특별한 느낌이 전달해져 온다. 그리고 그 울림은 책에서까지 이어진다. 노벨문학상 이후로 처음 펴내는 장편소설로 이 책은 나오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온 책이라, 읽기 전 기대가 만만치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1권 읽기를 여기서 마쳤다.
사랑이야기. 왠지 오르한 파묵의 작가와 사랑이야기는 잘 매치가 안될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나의 단순한 오해에 불과했다. 한 남자의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이야기를 어쩜 이리도 애절하게 끌어낼수 있는지.. 아주 몰입하면서 읽은 책이 되어버렸다. <내 이름은 빨강 1.2>권이 좀 더 잡다한 느낌이 있어 집중이 흐려지는 책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사랑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애절하게 몰입되는 작품이라고 할까나...
케말은 미모의 시벨이라는 약혼자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옷가게에서 퓌순이라는 열두살이나 어린 아주 먼 사촌동생을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게 된 건. 특별한 소재에 있었다.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는 너무도 흔한 이야기이지만, 이 제목의 '순수 박물관' 이라는 단어에 있다. 케말은 퓌순과 관련된 모든 것을 모아 박물관을 만든 것이다.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퓌순에 대한 케말 그 만의 순수 박물관이라고 할까..
케말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대학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퓌순의 수학공부를 도와주게 되면서, 이 두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곧 약혼을 하게 되는 시벨이 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케말은 약혼식을 하게 되고, 그날 먼 친척인 퓌순도 참가하게 되지만, 이 날을 마지막으로 퓌순은 케말과의 약속장소는 물론이고, 자취를 감춘다. 약 44일동안의 퓌순과의 만남.. 케말은 그녀의 사랑에. 또 사라짐에 상처를 입게 되고, 결국엔 시벨과 파혼을 하게 되고, 오직 퓌순이 남겨놓은 물건들을 보면서 위로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339일동안 오직 퓌순을 생각하며, 둘만의 공간속에 있으면서, 그녀를 기다리던 어느날 퓌순으로부터 자신의 집에서 부모님과 저녁을 함께 하자는 편지를 받게 되고, 케말은 청혼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해서 그녀에게 간다. 그러나 청천벽력.. 퓌순은 이미 다섯달 전에 결혼을 한 것인데.. 케말의 고독한 사랑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2권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 순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이란 이런 것이라고, 몇개 소개한다. 퓌순의 한쪽 귀걸이. 수학시간에 그녀에게 준 자. 취순의 빗. 지우개. 볼펜. 그녀가 만진 카페에서의 수저. 메뉴판과 컵. 등등..
사실 그 누구도, 경험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는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열정적인 순간에, 삶의 그 황금의 순간을 '지금'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그리고 자주) 생각하거나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혼 한구석에서는 앞으로 이 순간보다 더 아름답고 더 행복한 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도 믿는다. 왜냐하면 특히 젊은 시절에는 그 누구도 상황이 나빠질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을 뿐더러, 만약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하다면, 미래도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낙관적이기 때문이다. (p.125)
인생에서 진짜 문제는 '행복' 이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하다. 물론 대부분은 이 사이에 있다. 그 당시 나는 아주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싶지 않았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어쩌면 인식하지 못한 것이 행복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나의 행복을,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주 깊은 곳에서 다가오고 있는 불행이, 그리고 퓌순을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했다. (p.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