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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시간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
지그프리트 렌츠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평점 :
"그들은 벌로 내게 글짓기를 시켰다." 라는 문구로 책은 시작된다. 주인공 지기 예프젠은 책의 제목인 독일어 시간에 '의무의 기쁨'이라는 주제로 작문을 하라는 고르프윤 박사의 말에 빈공책을 제출하였다. 그것은 할 이야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적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라는 이유로, 빈공책을 제출하게 되는데, 그 벌로 그 '의무의 기쁨 ' 이라는 제목의 작문을 완성하도록 하는 벌을 주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는 시간된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지기 예프젠의 독일어 시간이 어느장소에서 일어난 일인지 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간수님이라거나, 독방을 쓴다거나, 벌을 받는 동안에는 면회를 받지 못하게 한다는 둥의 문장들은 분명히 학교는 아닌것 같고, 교도소 같기도 한데, 어떤 연유로 지기 예프젠이 교도소에 간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를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기의 독방에서의 작문은 시작된다. 과거로 거슬러가 지기는 자신의 의무에 연유한 기억들을 회상해내기 시작하는데..
검열이 철저해지던 시기. 파출소장인 지기의 아버지는 그의 친구인 화가 막스가 그리는 그림을 직업상 검열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아들 지기에게도 그가 그림을 그린다거나 어떤 의심나는 상황을 본다면, 자신에게 바로 말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워준다. 그러나 화가는 그런 검열에도 굽히지 않고,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종이에 그림이 담겨져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 어떠한 검열을 하더라도,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그 그림은 검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친구 지기의 아버지에게 말한다.
자유에의 의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자유가 누군가에 의해 꺽일때, 우리의 의무는 망각되고 만다. 어쩔 수 없이 사회의 의무를 온전히 실행해 나간 지기의 아버지와. 거기에 맞서는 친구 화가 막스. 그리고 그 중간에서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것인지, 고민하고 의심스러웠던 주인공 지기. 그리고 그의 독방에서의 작문과 과거의 기억들.
빨리 2권이 읽어야 겠다. 온전히 마음을 빼앗겨서가 아니라. 책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모호하고. 불온한 책인것 같아 마음이 쓰였고,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가 나서 지기와. 화가 막스. 그리고 지기의 아버지의 의무를 빨리 끝내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짓기 벌- 그동안 혼자 격리되고 친구들의 방문이 금지 되었다- 을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벌을 준 자들은, 내가 기억이나 상상으로부터 아무것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을 반성케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이러한 격리를 지시한 이유는 차라리 다른 데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순순히 의무의 기쁨을 찾고 있던 나는 갑자기 너무도 할 이야기가 많은 나머지 서두도 꺼내지 못한 채 무진 애를 썼던 것이다. 코르프윤이 우리로 하여금 찾아내어 묘사하고 음미하도록 요구한 주제가 자유로운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의무의 기쁨에 관한 것이었던 까닭에. (p.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