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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이곳저곳에서 많이 들어본 제목의 책으로 상당히 독특하고 기억에 남았던 제목이었는데, 어떤 내용의 책일까 상당히 궁금해오던 차에 이제서야 손에 들고 읽어보기 시작한 이 책을.. 이제서야 다 읽었다.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의 재미는 아니었지만, 뭐랄까 독특한 매력이 있는 책이라고 해야 되겠다. 책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구치소에서 한 방에서 수감되어 있는 두 죄수의 대화로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미성년자와 관계를 가진것으로 인해, 8년의 형을 선고 받은 몰리나는 남자의 몸을 가진 동성애자이다. 그리고 발렌틴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한 명의 이 남자는...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검거된 정치범으로 형조차 선거받지 않은 채 수감생활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각기 다른 방에서 수감되어 있다가, 한 방으로 옮겨진 이 두사람은 우울하고 외로운 수감생활동안 서로를 이해하면서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긴긴 밤 또는 지겨운 한낮동안 이들은 영화이야기를 하거나 서로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여기서 영화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동성애자인 몰리나였고, 들어주는 쪽은 발렌틴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 두사람의 영화이야기로 끝나는 것은 역시 아니었다. 어느날 발렌틴은 교도소의 음식을 먹고, 창자가 끊어지고 정신이 혼미해질 고통을 받게 되는데, 몰리나는 그런 발렌틴을 잠을 설쳐가며 돌바주게 되는데, 여기에 숨겨져 있는 의도가 있었다.
구치소 소장과 몰리나의 대화였는데, 몰리나의 발렌틴에 대한 그동안의 끊임없는 애정과 우정이 이 소장과의 대화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역시나 세상은 그런거라고, 누구나 한 사람은 배반하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적대적으로 바라보게 되나, 점점 읽어내려가면서, 그와는 다른 몰리나와 발렌틴이라는 인물을 보게 된다. 몰리나도 그 피해자였음을... 이 두사람은 거의 막바지에 들어 교도소 안에서 사랑을 하게 되는데, 같은 성을 가진 두 남자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두 사람의 극단적인 처지가 마음을 끌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정치범으로서의 발렌틴과 미성년자를 범한 죄로 교도소에 수감된 후 소장에게. 그리고 사회에게 버림받은 몰리나. 이 두사람의 끝은 똑같은 끝으로 닿아 있었다. 자유를 결국 얻어낼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우정과 사랑과 그리고 억압에 관한 내용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을것 같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향해 갈수록 진실은 밝혀지고 매력은 더해지는 책이었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게는.... 그래, 남자에게 가장 근사한 점은 멋지게 생기고 힘이 센 거야. 힘이 세다고 과시하지 않지만, 자신 있게 나아가는 그런 태도지. 나의 웨이터처럼 걸음도 또박또박 걷고, 겁에 질려 말하지도 않고, 자기가 뭘 원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야. 물론 전혀 겁내지 않고 말이야. (p.89)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야. 알겠지? 여기에 있는 것은 우리가 무인도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 아마도 여러 해 동안 둘이서 외롭게 지내야만 하는 무인도 말이야. 감방 바깥에는 우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이 있어. 하지만 이 안에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어. 여기에는 누가 누구를 억압할 수 없어. 단지 있는 것이라고는 지쳐 있는, 아니 뒤틀려 버린 내 마음을 괴롭히는... 어느 한 사람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날 잘 대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야. (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