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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박찬욱 외 지음 / 그책 / 2009년 4월
평점 :
뱀파이어-어렷을 적 티비에 나온 뱀파이어 영화를 보고 난뒤 몇일동안 뒤척이며 잠못이룬 기억이 내겐 있다. 잠이라도 들라치면 뱀파이어가 양쪽 송곳니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이로 내 목덜미를 콱- 깨무는 끔찍한 꿈에 화들짝 놀라깨곤 했다. 그렇게 몇일을 밤새 뒤척였던 기억이 난다. 새까만 표지에 이번 박찬욱 감독 <박쥐>영화의 두 주연배우의 실감나는 얼굴이 책의 표지를 장식한다.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질 못한채 먼저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보지 않겠어. 라는 생각을 했다. 책의 내용과 이 두배우의 캐스팅은 정말 딱 어울린다. 절묘하다 싶을 정도로. 하지만 영화는 보고 싶지 않아졌다. 이런 내용의 영화라면- 하고 생각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의 내용을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갱>이라는 책에 기초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원작을. 이 소설의 원작을 <테레즈 라갱>이라고 하기엔 뭣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첨가했다고 한다. 나는 이 <박쥐> 책을 읽고 난 뒤에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갱>이 몹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보리라..
신부였지만 뱀파이어 신부가 된 상현- 그리고 몸이 성치 않은 그의 친구 강우와 그의 아내 태주. 태주는 자신의 삶이 지옥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살고 있었다. 성치 않은 남편과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짓누르는 시어머니. 그런 태주에게 상현이 나타난다. 그녀의 잠재된 욕망과 상현의 그녀에 대한 사랑은 맞물리게 되는데... 이런 두 사람은 결국 친구 강우를 죽이게 만들었고. 태주는 상현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쫒아 그를 자기 편으로 만든다.
인간의 피를 필요로 하는 존재- 뱀파이어. 하지만 상현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꼭 그래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피를 구했다. 그의 본질이 그랬으리라. 하지만 평생 하늘을 섬기며 산 노신부는 그런 상현을 질투하게 된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현의 눈부신 젊음과 욕망을 부러워했고. 자신도 뱀파이어가 되게 해달라고 구걸하게 된다. 평생 신부의 삶을 살아온 그의 이런 욕망앞에서 상현은 또다시 좌절의 심정을 맛보기도 한다.
책은 우울하고.. 질척하고.. 어둡고.. 피비릿내가 날것같기도 하다. 이런 기분을 영화에서까지 맛보고 싶지 않았다. 상현과. 태주. 태주를 사랑하면서도 완전한 뱀파이어가 되기를 거부했던 상현. 완전한 뱀파이어가 되기를 바랬던 태주의 욕망. 그리고 두 사람의 마지막- 책의 두께가 그리 있는것도 아닌데, 전개가 상당히 빠르고. 놀라웠던 소설이 아닌가 싶다. 박찬욱 감독에게 그냥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칸 영화제에서도 8분간 박수를 받았던 것처럼... 나는 오늘도 또 뱀파이어의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ㅜ.ㅜ
그는 사제복을 입은 뱀파이어다. 그에겐 인간은 지닐 수 없는 괴력이 있다. 그는 진정 붕대 감은 성자이다. 태주는 비로소 한명의 성자를 믿는 신자가 되어 있었다. 기적을 목격하고 예수를 믿게 된 성서 속의 인간들처럼.(p.91)
상현의 눈앞에 신부복을 입고 있는 이 사람, 평생 금욕과 절제를 강요해왔던 이 사람. 진정한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고 말해왔으나, 이제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한없이 초라해져 있는 이 사람. 상현은 노신부를 딱하게 바라보았다.(p.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