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가 雅歌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아가 - 책을 읽기 전에 이 '아가'의 의미를 어린 아이라는 뜻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에 도대체 어린 아이 라는 의미의 아가와 몸 성치 못한 당편이의 이야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 검색해 보았다 아가-
아가(雅歌) : 남녀 간의 아름다운 연애를 찬양한 노래.
책 제목 밑에 살며시 쓰여진 부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이다.
남녀간의 아름다운 연애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당편이의 고난한 인생과 그녀의 역경과 사랑이 이 두문장과 어울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읽어 내려가면서 그 사랑은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는 공동체인들의 당편이에 대한 사랑인 것이었다.
처음 녹동어른이 자신의 집 앞에 버려진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정상적이지 못한 당편이를 자신의 식솔로 받아들인 이후 당편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입에오르게 되는 사건이 되었고 그녀의 행동은 놀림이 되고, 장난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놀림과 장난거리조차도 보이기엔 나쁜 일이 아닌 재미난 일로 희화화되고. 당편이는 어느새 한 마을의 일원이 되어 간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성한 몸 하나만 가진 것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공동체 사람들에게 있어 그녀는 돌봐야 할 하나의 사람. 인간으로 되새겨 진다. 물론 그 공동체 중에는 당편이에게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그런 사람은 어디나 있기 마련인 것처럼-
하지만 당편이는 잘 살고. 잘 이겨내고. 사랑이라는 것도 그녀의 식대로라면 잘 이루게 된다. 결론적으로는 외로운 시설로 가버리게 되지만, 당편이 그녀의 삶은 그랬다. 이런 당편이의 삶이 있어서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이 시립고 아린 것이리라..
지겹지도. 가볍지도. 않은 책을 손에 놓고 난 뒤에는 한참 멍하니.
있게 만들어 버리는 이문열 작가의 좋은 책이었다.
그렇지만 사람의 의식과 기억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간사한 것인가. 자신에게 불리하면 의식은 마비되고 기억은 지워진다. 오래잖아 그날 우리가 뭔가 몹쓸 짓을 도왔다는 느낌은 사라지고 눈물 가득하던 당편이의 검고 깊은 눈도 잊었다. 다만 우리도 그녀를 재료 삼아 한 토막 웃음의 전설을 보태는 데 기여했다는 엉뚱한 자부만 남아, 오히려 한동안은 그 일을 되뇌며 우리끼리 킬킬댔다. (p.207)
어떤 아프리카 인들에게는 남에게 기억되는 시간이 곧 살아 있는 시간이라고 한다. 이는 인지를 기억으로 갈음하며 존재를 존재답게 만들어주는 소속 혹은 관계를 소박하게 표현한 듯한데 우리들의 당편이에게도 그랬던 것이 아니었는지.(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