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
임레 케르테스 지음, 유진일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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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책 삽화에서 언뜻 본, 노란 별을 단 사람들.
노랗고 예뻐 보이는 그 별을 단 사람들의 표정이 우울해서 왜 일까 했던 적이 있다.
특별하고 아름답다고 느꼈던 그 별이, 앞에 한 글자를 더 달고 차별이 되면서 폭력이 시작됨을 몰랐던 그때다.
 

작가의 자전적이야기다.
그는 유대계 헝가리인으로, 실제로 암울한 시기를 겪었다. 그 후 신문기자 등을 하며 소설도 썼지만 그렇게 성공하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2002년 노벨상을 받으며, 이제 경제적으로 좀 나아지지 않을까 안도했다고 한다. 헝가리에서도 노벨상 수상 이후 주목을 받은 것이다. 그가 소설을 쓰던 그 시기, 이미 유대인들의 경험담은 인기 없는 소재일뿐이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겐 생과 사였고, 살아서도 잊지 못해 온갖 트라우마를 달고 삶을 이어가지만, 흐르는 시간앞에 그런 모든 일들은 식상해져 버리고 인기 없는 소재가 돼버린다. 그러고보면 시간은 직선으로 달려가는데, 각자의 시간 앞에서 각자가 받은 상처들로 그 직선을 이탈해 돌아서 돌아서 가는 이도 있고, 혹은 더 깎아지른 절벽으로 나아가는 이들도 있다. 시간은 직선으로 나아가지만, 그 시간을 사는 사람들은 거미줄처럼 서로 엉켜 그 자리에 머물기도 한다. 시간을 따라가지만, 엉킨 시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 일들이 있다. 어쩌면 유대인들이 겪었던 아픔이 그런 일들이 아닐까.
 

우리는 공범이다, 그들에게 지옥을 선사한.
죽으러 가는 유대인들에게 귀중품을 내놓고 가라는 헝가리인들, 아우슈비츠와 강제 노역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이에게 차표를 내라는 기관사와 그들을 외면하는 노부인, 잊으라는 이웃의 노부부, 기사를 써보자는 기자. 그들 모두 공범이다.
죽음으로 끌려감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과 다르지 않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 혹은 이득을 얻으려 외면한, 알 수 있었지만 알려 하지 않은 모두가 공범이다.
14살 소년의 악몽은 고름처럼 끝도없이 흘러나온다. 까맣게 들어찬 이와 옴처럼 소년의 몸 구석구석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짜내고 소독하고 꿰맸다.
그리고 돌아 온 곳엔, 돌아 온 장소도 곪아가고 있다.
모두가 공범이기에, 다 같이 잊고 덮어버리기를 원한다. 소년의 시간은 이미 엉켜버릴 대로 엉켜버렸지만, 그들에겐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소년에게 잊으라고 잊어버리라고 한다. 그러는 편이 그들에게도 편하다. 아무 어려움도 고통도 없었던 이들이, 소년의 손을 잡고 같이 잊어보자고 한다.
소년은 단호히 거부한다. 그 지독한 삶에서도 잠시의 행복 비슷한 것들은 있었다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한다. 엉킨 실타래를 끊어버린다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며 나아가하는 것이 삶이라고 운명이라고 말한다.
 

“만일 운명이 존재한다면 자유란 불가능하다. 만일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없다. 이 말은 나 자신이 곧 운명이란 뜻이다.”
“아우슈비츠의 굴뚝에서조차도 고통들 사이로 잠시 쉬는 시간에 행복과 비슷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삶이란 없고 언제나 예전의 삶을 이어갈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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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kang1001 2022-04-09 16: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2-04-09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ini74 님, 이달의 당선작 진심 축하드립니다...
기분 좋게 벚꽃 구경도 하셨나 보네요...^^
일요일도 환상적으로 보내시길...^^

책읽는나무 2022-07-01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이 무슨 운명인가요?
오늘 저에게 북플님이 보내 주신 이웃님들 글 중 미니님의 이 글이 또 한 번 읽어 보라고 날아 왔어요. 반가워서 주섬주섬 댓글 남깁니다^^

mini74 2022-07-04 08:17   좋아요 1 | URL
저도 반가워요 나무님. 거기도 너무너무 덥죠 ㅎㅎ 더운날씨 건강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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