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남성의 육체도 학업조차도 우리를 구원해줄 수 없다면,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차라리 지금 당장 모든것을 파괴해버리는 것이 나았다. 가슴속에 릴라의 분노가 느껴졌다.
내 것이기도 하고 내 것이 아니기도 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통제력을 잃었고 그 상실감은 내게 오히려 기분 좋은 만족감을 주었다.
나는 그 힘이 확장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내가 평소에 불행을 조용히 감내하는 이유는 공격적인 반응을 나타낼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행동이 두려웠다. 그보다는 속으로 후회를 곱씹으면서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이 편했다. 하지만 릴라는 달랐다. 릴라는 식탁이 흔들려서 식기가 지저분한 접시 안으로 미끄러지고 컵이 엎어질 정도로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테파노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솔라라 부인의 옷에 와인이 쏟아지는 것을 막아내는틈을 타서 릴라는 드레스가 밟힐 때마다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빠른걸음으로 쪽문을 거쳐 홀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