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 - 영화를, 고상함 따위 1도 없이 세상을, 적당히 삐딱하게 바라보는
거의없다(백재욱) 지음 / 왼쪽주머니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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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때 영화 좀 안다는 애들이 용돈 모아 샀던 잡지들, 로드 쇼니 스크린 등의 잡지가 기억나게 하는 책이다. 물론 로드쇼나 스크린등에선 주로 돈이 되는 영화들과 최고의 인기스타만을 다룬다.

이 책의 저자는 유투버로 먼저 유명해진 경우다. 거의 없다란 이름은 ‘싸가지가 거의 없다“에서 따왔다고 한다. 거의 없다,나름 참 예의바른 말 아닌가. 없다라고 하기엔 좀 말하는 이가 너무 도덕적 예의 관념이 투철해서 조금 돌려 말한. 그런데 왜지? 싸가지 없다보다 더 강력하게 느껴진다.

거의 없다 님은 “리얼”로 유명해 졌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열심히 로드쇼와 스크린을 사 모았다. 좀 더 덕후인 아이들은 어디선가 외국잡지를 사서 오곤 했다. 영어나 일본어가 가득했던 잡지책들, 영어사전이나 일어사전을 들고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딘가를 헤메다가 결국은 사진들을 찢어 붙이고 장식하며 흐뭇해 했던 기억이 난다. 초딩때 그레고리 펙부터 시작해서 중학교땐 탐 크루즈와 리버 피닉스 그리고 고딩땐 양가위와 장만옥, 그리고 브래드 피트에 열광했던 우리들. 지랄맞고 요란하게도 좋아했던 그 시절이다. 그러면서 한국 영화를 구려 하며 나름 평도 했었다. 그 땐 주로 외국영화는 쏘 판타스틱 오 마이 갓, 원더풀!!!!!등등, 한국영화는 음 아직 미장센이 충분히 표현되지 않았다는 둥, 메소드 연기가 부족해 등..이 무슨 사대주의적 지랄발광같은 유치짬뽕 평인가. 그런데 이 책이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특히 <나는 전설이다>를 책으로 접한 내게, 윌 스미스의 영화는 충격 그 자체였다. 건질거라곤 그 잘생긴! 너무 잘생긴 강아지 정도? 내 맘을 어찌 알았는지 딱 알맞은 표현들로 잘근 잘근 씹는다. 다이하드에서 드디어 람보형이 아닌 평범한 동네 아저씨같은 브루스 윌리스가 시시껄렁한 농담을 내뱉으며 진짜 죽기살기로 가족들을 지켜낸다.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영웅이 되고 싶어한다. 영웅, 미국인들은 유독 영웅을 좋아한다. 그러니 비록 나이는 좀 들고 배는 쬐금 나왔어도, 망토도 없고 초능력도 없어도 농담조차 재미없어도 엔딩크레딧이 내려오면, 그의 매력에 초절임되는 브루스 윌리스형 영웅을 애타게 기다렸을 거다.

남편이 내게 의외라고 한 점 중에 하나가 공포영화를 좋아한다는 거다. 특히 B급 감성이 담긴 묘하게 병맛으로 웃긴, 내가 웃어서 더 기분 나쁜 그런 류를 좋아하는데, 최근에 ‘캐빈 인 더 우즈“를 보며 흐뭇하게 웃을 수 있었다. 남편은 도대체 이 미친 삐삐삐삐는 뭐냐며 반쯤에서 포기했지만. 이 책 저자의 해석이 진지해질수록 이 영화는 더 매력적인 B급을 뽐낸다.

그 외에 내 청소년기, 친구들과 오열하며 봤던 “죽은 시인의 사회”, 내 맘속의 여전사 시고니 위버의 “에어리언” 등 나도 아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나와서 더 좋았다. 나름의 해석과 시대상황 등도 담겨 있고, 영화 속 인물들의 매력 포인트와 왜 좋았는지 왜 별로였는지가 너무 솔직하게 적혀 있다. 그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최근에 케이블에서 보고 반했던 ‘시카리오’ 속 등장인물들의 내면과 어찌할 수 없는 개인의 무너짐에 대한 이야기들도 좋았다.

솔직히 나는 책을 좀 더 좋아한다. 온전히 내 머리 속에서 이들을 재구성하고 꿈꾸곤 한다. 특히 좋아하는 책들은 머리 속에 그 공간을 만들어 곱씹으며, 내가 좋아하는 등장인물들이 대사를 주고받는 상상을 하곤 하는데,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조심하라고. 혹시 분열이 일어날지 모른다고..헉 만약 분열이 일어난다면 자아분열이 아니라 아메바적 분열이 아닐까. 그리고 책이 원작인 영화들에 대한 실망감? 나라면 이 배우가 더 어울릴텐데 하는 아쉬움과 이 장면에선 이런 배경이 맞을텐데하는 아쉬움. 그러다가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 아 저 장면들과 갈등을 책으로 풀어내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까지.


지금도 내가 어릴 때처럼 개봉영화를 소개하고,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체 잊힌 영화들을 소개하는 프로가 있다. 예전만큼 인기가 덜 한 것 같은데, 그건 어쩌면 내가 예전만큼 챙겨보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엔 진짜 열심히 보고, 추천영화는 반드시 봐야 하며, 감독은 애매해도 주인공과 조연의 이름쯤은 줄줄이 나와야 가오? 가 살았던 시절이니.

그 시절을 추억하며 즐겁게 읽었다. 작가분의 글빨도 매력적인 B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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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12-21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얼’이라면.. 혹시 그 영화 제목을 말하는 건가요? ㅎㅎㅎ 김수현 팬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영화죠... ^^;;

mini74 2020-12-21 21:04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ㅎㅎ 조근조근 하나하나 가루가 되게 까이더라구요 ㅠ

psyche 2020-12-22 0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의 없다의 유튜브 <영화걸작선>재미있게 보는데 책도 나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