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타라우트, 56년생 빨간 원숭이띠시다.
삶을 기록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녀의 글은 거미줄처럼 섬세하고 가늘다. 그런 거미줄은 겉보기보다 아주 질기다. 그녀의 글도 그러하다. 가늘고 섬세하다. 떨리듯 끊어질 듯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임을, 굵은 물방울도 , 햇살에 반사된 큼직한 무지개도 애처로운 날개짓의 그 무언가도 모두 단단히 질기게 매달려 있다. 그녀의 섬세하고 가녀린 글에도 무겁고 따뜻한 삶의 소중함들이 아름다운 문체로 조롱조롱 떨어질듯 말듯 매달려 있다.

다시 꺼내 읽은
<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불완전한 사랑.
완전한 사랑은 있을까
가난해서 너무나 가난해서, 가난이 만든 학대 속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양 손에 가득 들고, 울음을 삼키는 법만 아는 루시 바턴의 이야기다.
부모의 사랑도 불완전하다. 베트남에서 두 남자를 죽인 그래서 삶 자체가 고행인 가난한 남자와 그런 남자를 사랑하는 가난한 여자가 부모가 되어 세 아이를 낳았다. 루시는 묻는다. 나를 사랑했냐고.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엄마 또한 상처 많은 어린 시절을 거쳐 엄마가 되었고 자식들을 위해 나름의 힘들고 불완전한 사랑을 했음을 알지 않을까.
루시는 자신의 이야기, 자신이 해야 할 이야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았다.
(엄마에게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엄마는 바보같기는 이란 말로 대답을 회피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입 밖에 낼 줄 모르는 이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 건 절대 아니다. )



그리고 < 올리브 키터리지>
독특한 여성 캐릭터다 . 퉁명스럽고 고집도 세다. 큰 덩치에 사과 할 줄 모르는 여인.

성장소설하면 누구나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년과 소녀를 떠올리겠지
그러나 예순의 나이에도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의 성장소설이 여기 있다. 반평생을 같이 한 배우자를 보내고 홀로 세상에 서면서, 세상의 전부처럼 사랑한 자식의 입에서 당신때문에 힘들었다는 가슴을 후벼파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다시 성장한다. 노년의 두려움과 죽음과 생에 대한 질척함은 또 다른 성장이다.
두렵고 힘든 새로운 노년의 삶, 사춘기와는 다른 성장통이다.
외롭고 그립고 사랑이 필요한 칠순의 노인들을 보며, 삶은 언제든 상실 속에 다시 성장하고 피어나고 하나보다.



왜 이렇게 울컥하지
벌써 내 삶은 노년으로 발동을 걸며, 이제 노안이 온 처럼 삶을 보는 눈조차 뿌옇게 되겠지.
흘러간 노래와 반복되는 드라마를 보며, 익숙한 과거를 떠올리게 될까. 아니면 심장에 무리가 온 듯 누구가를 사랑하게 될까
다 지쳐서 인생을 마무리할 때쯤 어처구니없이 서로를 진짜 알게 될까

돼지가면 속 여드름이 곪어가는 소년의 울음과 거식증으로 비쩍 마른 등뼈의 니나
떠나버린 아들과 수십년 키운 아들을 엄마보다 더 잘 안다는 듯 단정짓는 잘난척척 박사 며느리 , 그리고 그런 아들의 이혼과 착하지만 맹해보이는 앤과의 재혼, 아들이 내뱉는 엄마에게 받은 상처들.
올리브는 쉬운 사람은 아니다
무서운 선생님이고, 남편에게도 그리 쉬운 아내는 아니었다. ( 실제론 누구보다 따뜻하다. 그녀의 유머도 좋다)어릴 적의 충격은 그녀를 그렇게 괴팍하게 만든걸까. 아들의 상처를 알기나 한걸까


인생은 여행바구니같은 것.
알면서도 속고, 아니면서 희망하고. 그러다 제 꾀에 넘어가 믿어버린다 진짜인듯. 내 여행바구니를 보며 그 속에서 내가 숨기고 살아가려 몰래 넣어 놓은 가짜약들을 본다. 그리고 아직은 진실을 알고 싶진 않다. 여행바구니를 버릴 때가 아직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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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1-13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 너무 좋아하는데 이 글 너무 좋습니다, 무서운 선생님이고 무서운 아내였지만 그래도 도망가자는 동료 교사의 말에 그러자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일흔 넘어 시작된 로맨스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죠. 너무 좋아요, 올리브. 글 잘 읽었습니다!

mini74 2020-11-13 10:26   좋아요 0 | URL
저도 올리브란 인물 정말 매력적이고 좋아요 *^^* 다시 올리브 가 오늘 배송된답니다*^^* 씬나요 ㅎㅎ

레삭매냐 2020-11-13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히 스트라우트 유니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 자신이 쓴 다른 작품에 등장
하는 캐릭들도 등장하고...

젭알, 올리브 트릴로지로 마무리해
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mini74 2020-11-13 11:07   좋아요 1 | URL
래샥매냐님 다시 올리브 서평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오늘 책이 온답니다. 오랜만에 설레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