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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리커버 에디션) ㅣ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타임머신을 읽고 공상의 나래를 폈었다. 특히 중고등 시절 시험을 망치고 나면 멍하니 앉아 타임머신이 있다면 시험 전으로 돌아가 정말 열심히 공부할텐데하면서 쓰잘대기없는 다짐을 하곤 했다. 그래도그땐 순진했나보다 시험답안 외워서 과거로 간다는 생각은 못했다. 결혼을 하곤 미래로 가면 로또 번호를 외워와야겠단 생각을 했다. 아이를 키우며 울화가 치밀었던 20대의 마지막, 그렇게 여행이 가고 싶었다.
타임슬립류는 아슬아슬하거나 가슴 떨리긴 해도 대체적으로 즐거운 책읽기였다. 사랑을 되찾으려 무언가를 되돌리려 하는 이들, 거기서 일어나는 에프소드들. 타임머신처럼 너무 먼 미래로 가지 않는다면 그리 나쁠 것 없다며 어바웃타임을 보며 가슴 설렜다.
이 책은!!! 타임슬립계의 이단아?
1970년대 백인과 결혼한 흑인여자 다나가 1800년대 미국 남부로 타임슬립을 하다니! 이건 죽으라는 이야기인가
자신의 조상인 루퍼스와 얽혀 시작된 타임슬립은 언제나 루퍼스를 살리면서 시작된다. 매질과 팔려나가는 동료들, 자살. 인간다움에 대한 회의, 그리고 얼마나 사람이 그 상황에 쉽게 적응하고 굴종하는지, 얼마나 쉽게 폭력에 익숙해지는지도 보여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루퍼스가 앨리스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엘리스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다. 흑인 여자를 강간한다고 부끄러울 것은 없어도, 흑인 여자를 사랑한다면 부끄러울 수 있는 시대였다.” (p.236)
그 시대는 그게 옳았다. 노예와 노예의 아이들을 팔고 매질하고 강간하고, 그 시절의 법이었다. 이게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조선시대로 가게 된다면 얼마나 오래 생존할 수 있을까
조선시대의 여성은 미국 남부의 노예정도이지 않을까
일단 겨울은 아니길. 짚신 신고 얼음 깨서 물 긷고 하기엔 너무 늙었다. 헉. 바느질도 음식도 못 하는데. 아무래도 작두를 타거나 각설이로 살지 않을까. 슬프다. 그냥 난 미래에 가서 살짝 로또만 아는 걸로 ㅎㅎ)
존엄성이 무너지고 팔려가는 노예나 혹은 주인의 애완견같은 존재로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를 두려워 하며 사는 삶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나는 나의 것임을 누구의 것도 아님을 보여주며, 자식을 빼앗긴 절망 속에 목을 매단 앨리스의 선택이 이해되기도 한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 다시 돌아오게 되는 타임슬립. 정말 정신없이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아직 땀으로 미끄러운 손에 잡힌 칼 손잡이를 느낄 수 있었다. 노예는 노예일 뿐이다. 노예에게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루퍼스는 루퍼스였다. 그는 변덕스러웠고, 관대했다가 잔인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를 나의 조상으로, 나의 남동생으로, 나의 친구로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나의 주인으로, 나의 연인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노예제도를 받아들이도록 훈련시키기가 얼마나 수월한지 전에는 몰랐어”기억에 남는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