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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진리를 훔치다 - 철학자들의 예술가
김동국 지음 / 파라북스 / 2022년 1월
평점 :
화가 라파엘로의 유명한 그림 ‘아테네 학당’을 보면 정중간에 서 있는 두 사람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중 한사람은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다른 한사람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땅을 가리키는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고, 하늘을 가리키는 사람은 그의 스승 플라톤입니다. 플라톤은 진리로 생각하는 이데아가 현실과 분리되어 저 세상에 있다고 주장한 반면,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달리 이데아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에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라파엘로는 재치있게 두 사람을 그렇게 그렸던 것입니다.
시뮬라크르는 복사본, 가짜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이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플라톤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이 세상과 분리되어 저 세상에 존재합니다. 그에 따르면 이 세상은 이데아의 그림자, 즉 이데아를 모방한 복제본입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하찮은 것일 뿐이 었습니다.
진리의 세계인 이데아를 모방한 것이 현실이고 이 현실을 다시 한번 모방한 것이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술작품이란 이데아를 모방한 가짜를 다시 모방한 것으로서 진리가 가지는 특성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이후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이라는 저서에서 시뮬라크르를 이론으서 전개 하게 됩니다. 그런데 장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시뮬라크르는 플라톤이 말한 시뮬라크르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플라톤이 말한 시뮬라크르는 이데아라는 원본의 존재를 전제합니다.
하지만 장보드리야르는 원본없는 시뮬라크르를 말합니다.
그는 현대 사회의 많은 시뮬라크르들은 그 원본이 없이도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원본과 복사본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결국 복제물들이 점차 원본을 대체하게 되는 사회가 바로 현대 사회라고 말합니다. 다시말하면 현대사회는 원본없는 시뮬라크르들의 놀이터인 것입니다.
예술에서 시뮬라크르이론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가가 뒤샹과 앤디워홀입니다.
“뒤샹은 공장에서 생산된 변기에 가상의 인물의 서명을 남김으로써 공산품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때 작가는 작품을 창조하지 않고, 생산된 상품을 예술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 변화는 현대예술의 개념을 새롭게 창조하는 변화이자, 도이에 전통적인 예술을 소멸시키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작가는 작품의 창조자가 아니라 다만 존재하는 사물에 새로운 기의를 부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중략.......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예술과 예술아닌 것을 구분 지었던 전통적인 경계가 붕괴 되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기존 관념에 따르면 예술이란 신과 유사하게 창조하는 행위를 하는 활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뒤샹에 의해 예술을 이제 창조하는 행위가 아니라 생산하는 행위와 구별할 수 없는 활동이 되었습니다. 물론 뒤샹은 예술을 생산활동으로 바꾸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을 창조하기는 했습니다.
팝아트의 대가 앤디워홀은 시뮬라크르이론을 실천하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그 어떤 예술가 보다도 미학을 극단적으로 몰아 붙였습니다. 즉, “예술작품이 더 이상 미적 특성을 가지지 않는 교환대상으로서의 상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폭로하고, 이를 극단까지 밀고 나갑니다.”
그는 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크스크린 이란 인쇄기법을 이용해서 똑같은 그림을 대량으로 찍어내기도 하고, 유명한 캠벨스프 통조림을 대량으로 찍어 전시하기도 합니다. 이제 화가는 창조자에서 격하되어 완전히 생산자가 됩니다. 이로써 장보드리 야르가 말한 예술의 종언이 도래 하는 듯합니다.
파라북스에서 출간된 “예술, 진리를 훔치다”는 미학자인 저자가 8가지 주제로 8명의 철학자에 8명의 예술가를 대응시켜 철학과 예술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합니다.
이책을 읽는 즐거움은 두배입니다.
먼저 유명한 화가에 대해 아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혼잣서는 이해하기 힘든 현대철학을 이해 하는 즐거움입니다. 10여년 전에 ‘시뮬라시옹’이라는 책을 사놓았지만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이해하게 되니 즐겁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평가를 읽는 재미는 덤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모든 것이 시뮬라크르일 뿐 실재가 부재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삶이란 어떤 의미가 있냐고요. 아마 보드리야르는 그러한 질문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아직도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환상에 불과 할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이 시뮬라크르의 조작이라고 말함으써 상상적 가능성을 봉쇄해버리는 것, 그것은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불가능성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