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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삶이 불쾌한가 ㅣ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박은미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1년 12월
평점 :
“삽처럼 생긴 커다란 발로 끊임 없이 땅을 파는 것은 두더지가 평생해야 할 일이다. 두더지의 주변에는 영원한 어둠뿐이다. 두더지의 눈이 덜 발달한 것은 단지 빛을 피하기 위해서인데.......즐거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고난으로 꽉 찬 일생을 통해서 두더지는 무엇을 얻을까?........삶의 고난과 근심은 삶에서 얻는 과실이나 이득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가혹하다.”
“불운한 작은 개미들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주의 깊게 숙고해 보면.....대부분의 벌레들의 삶은 자신들의 알에서 태어날 미래의 자손들을 위한 양식과 주거 공간을 준비하느라 줄기차게 노력하는 근면의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자손들이 번데기에서 나오면서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어 똑같은 일을 시작한다.....이런 노력으로 개미들이 무엇을 얻는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허기와 성적 열정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 달리 보여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끝없는 욕구와 진력사이에서 때때로 이루어지는......약간의 덧없는 만족........”
염세주의자로서 가장 위대한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대표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한 말입니다.
위 말을 읽어 보면 왜 그가 염세주의자로 불리우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삶은 고통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기쁨이 있다면, 고통에 비하여 그건 터무니 없이 작다고 합니다. 단지 우리는 살아남으려는 의지와 종족보존의 의지를 지칭하는 ‘생의 의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환상, 즉 헛된 기대를 품고 고통을 견듸면서 살아갈 뿐이라고 했습니다. 개인의 행복과 종의 행복은 근본적으로 상충하는데, 종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생에의 의지’는 환상을 보여줌으로써 개인을 속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본질을 고통으로 인식하는 쇼펜하우어야 말로 삶을 명랑하게 살아가도록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는 삶의 본질을 밝힘으로써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슬픔과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헛된 기대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사랑이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 때, 종족보존을 위한 환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을 뿐 사랑의 본래계획에는 행복이란 것이 절대로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위안이 된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염세적인 사람이 가장 쾌할 할 수도 있음을 드러냅니다.
염세주의자의 역설을 증명하듯 쇼펜하우어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최소한 우울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즐겁게 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헤겔 그리고 괴테와 동시대를 살았습니다.
괴테는 사교계의 유명인사 였던 그의 어머니 친구로서 괴테를 본적이 있는데, 괴테는 쇼펜하우어를 이렇게 평했다 합니다. “내가 보기에 쇼펜하우어는 묘한 구석이 있으면서 나름대로 흥미로운 젊은이 인 것 같았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을 사기꾼이라고 종종 비난 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대표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출간된 이후 쇼펜하우어는 베를린대학에서 철학교수 자리를 얻습니다. 이때 그 대학에는 서양철학에서 이성중심의 최고봉에 올랐던 관념론의 대가 헤겔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헤겔의 강의는 수강생들이 넘쳐났지만, 쇼펜하우어의 강의는 수강이 없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폐강을 하게 됩니다. 그는 헤겔을 이렇게 평가 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철학의 근본을 이루는 개념들은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공상이며, 전도되어 있는 세계이고, 철학적 익살인데....그내용은 공허하기 짝이 없고, 돌대가리들에 의해서 지금까지 축적된 단어들을 이치에 맞지 않게 뒤죽박죽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고 그리고 표현은 ....더 없이 충동적이고, 횡설수설 엉터리여서 떠버리 광인을 떠올리게 한다.”
쇼펜하우어가 헤겔을 질투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해 보니 왠지 귀엽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은 크게 빛을 보지 못하였지만 헤겔이후 철학사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가 서양 철학에서 전환점을 마련 한 것은 정신과 이성에 대한 신뢰가 확고 했던 시대에 홀로 자연적 본능이 더 우세하다는 주장을 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니체에 의해 더욱더 강화되고 완성됩니다. 그리고 결국 니체에 의해 이성이라는 재료로 쌓아올린 근대의 가치체계는 무너지고 아방가르드 정신을 표방하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됩니다.
쇼펜하우어 철학의 원천은 플라톤, 칸트, 인도의 우파니샤드입니다. 특히 칸트의 철학은 그의 철학의 이론 구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칸트가 말한 물자체와 현상계는난 쇼펜하우어에게는 의지와 표상으로 대응됩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은 키르케고르, 바그너,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베케트, 아인슈타인, 토마스만, 카프카, 헤르만 헷세등으로 이들은 쇼펜하우어를 숭배하는 마음을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중에서 쇼펜하우어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은 니체일 것입니다.
쇼펜하우어 철학의 핵심인 ‘생에의 의지’ 는 니체철학에서 ‘힘에의 의지’로 나타나게 됩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기획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쇼펜하우어의 삶과 영향, 그의 철학의 핵심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책은 교양서로서 또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기전 입문서로서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