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p. 97

친구여, 꽃잎의 뒷면도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줄기가 꺾이 는 순간 갑자기 그 꽃잎의 그늘진 면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그 때 색의 유희가 일어나며 천국으로의 여행이, 점점 더 정신적인 것으로 넘어가며 죽음에 가까워지네. 그것은 화관花冠에서보다 그 죽어가는 꽃잎의 그늘진 면에서 더 향기롭게, 더 놀랍게 이루어진다.. 다른 꽃들의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잃어버린 색들이 기이하게 금속과 광물의 빚을 띠고, 고산 지대의 암석이나 이끼 또는 바닷말에서나 볼 수 있는 청회색과 잿빛을 띤 녹색, 청동색으로 변하며 꿈을 꾼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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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무상
주인공 단백은 섭국이라는 국가의 왕이지만 잔인하고 포악하며 이기적이다. 왕일 때 나라를 진심으로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왕으로서의 결정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무거워야 하는 것인지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왕의 자질을 타고나지 않았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왕의 자질을 타고난것처럼 보이는 그의 이복형제 단문을 두려워하고 죽이고 싶어했다.
하지만 단문이 왕이 되어서 나라가 부강해지고 태평성대를 이루었는가?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팽국의 속국이 되고 만다. 단문이 단백을 폐위시키고 왕이 되며 단백에게 내렸던 벌은 죽음이 아니라 그를 궁 밖으로 쫓아내 서민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을 섭국의 진정한 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무능한 단백이 낮은 자리에서 자신의 훌륭한 통치를 우러러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궁 안에서 고귀하게 길러진 탓에 서민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백은 어릴적 보았던,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줄타기를 하러 머나먼 여정을 떠나면서 세상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고 결국 곡예단을 직접 꾸리기에 이른다. 그의 곁을 충실히 지키는 연랑을 잃고도 승려가 되어 줄타기를 계속한다. 파란 하늘로 몇번이고 높이 뛰어오르며 세상의 모든것이 덧없음을 온 마음으로 되새긴다. 결국 진정으로 살아남는 자가 된다.
높은 자리에 앉아만 있었던 어린 왕. 그의 포악함과 무능함이 섭국의 재난을 초래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섭국의 재난은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탐욕이 서로 겹치며 벌어진 불행이었다. 황보부인의 욕심, 맹부인의 탐욕, 단백 자신의 무능함, 여인들의 시기와 질투, 단문의 오만함 등등이 역사의 흐름 아래 섭국을 몰락으로 이끌었다.
단백은 줄을 타며 하늘에 좀 더 가까워지고자 했고 하늘을 높이,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새들을 동경했다. 왕으로 있었을 때의 불안감, 공포, 무력감, 불신 등을 모두 다 떨쳐버리고 자신의 발로 온전하게 하늘을 걸었을 때, 그 밧줄 위에서 오히려 더 자신을 왕이라고 생각했다.
무소불위의 권력도 날아가는 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버리는 것, 내 발이 나아가는 곳을 직접 정하는 것과 같이 자유를 향한 갈망 외에는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진다. 그야말로 인생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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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넘어 평화에 이르기까지
1권에 이어 필립의 첫사랑 이야기는 눈을 뜨고 못봐줄정도 였지만 재밌기도 했다. 다만 그리피스와 밀드레드의 정신나간 일탈을 다 받아주며 둘이 여행가라고 돈까지 줬을 때는 진심으로 불쌍했다. 밀드레드의 사랑을 원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했던 것 같다.
필립에게는 크게 세개의 면이 있다. 이것들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필립의 선택을 이루어나간다. 하나는 필립이 말한 것처럼 위대한 사랑,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해 생겨난 가족 및 정에 대한 그리움, 또 하나는 불구를 컴플렉스로 받아들여 만들어진 타인에 대한 불신, 냉정함, 자기비하이며, 마지막으로 불구로 살아오며 받은 아픔을 통해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환자에게 정성과 따뜻함을 보이는 것이다.
필립은 분명 감정기복과 자기비하가 심하며 본인의 잘못을 남에게 돌리는 사람이다. 이것은 특히 본인의 감정이 격해지거나 고통을 받았을 때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밀드레드가 밀러에게 속아 빈털터리가 되고 다시 필립에게 돌아와 노라와 헤어져야 했을 때 정말 찌질했다. 노라가 상처를 받는 것이 두려워서 노라와 대면하는 것을 피하지만, 노라가 필립을 계속 만나기를 원하자 돌연 자신의 비겁함이 노라에 대한 미움으로 변질돼 버린것이다. 정확히는 ‘노라가 밉살스러웠다‘는 표현이었는데 정말 비겁하고 찌질했다. 노라를 사랑하지 않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기분으로 노라를 만났다고 해도 감정을 교류했던 경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타인과 만나 그 사람의 생각이 자신의 것과 잘 맞는지 확인하고 내 세계에 그 사람을 초대함으로써 둘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어떻게 큰 일이 아니란 말인가. 특히 필립은 애정결핍이 있었는데 그것을 얼마간 채워준 사람이 노라였다. 이런 사람을 자신과 헤어져주지 않는다고 미워한다니 참 비겁했다.
또한 본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돈을 다 날려버리고서는 백부의 유산만이 살길이라 백부가 죽기만을 바라는 것 또한 한심했다. 왜 이렇게 됐는지 끝없이 불평하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운이 좋지 않았다고 실망하지만 주식의 위험을 모르고 다른 사람의 말만 믿고 투자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던가. 돈을 다 날린것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돈 때문에 백부의 죽음을 바라는 것은 정말 비인간적이다. 본인도 자연스럽게 살인을 상상하는 자신에게 놀라지만 본인의 선택으로 벌어진 결과는 본인이 책임지는것이 당연하다. 백부가 죽지 않기 때문에 본인의 인생이 힘들어진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 그가 의사가 되기 위해 실습을 하고 여러 환자들을 만나며 환자를 최선을 다해 진료하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필립의 모난 성격에도 불구하고 필립은 환자들을 정성껏 대하고 계급사회였음에도 계급을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허물없이 대했다. 자신보다 약자라고 하여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똑같은 생명이자 사람으로 대했다. 그의 인생 전반부에서 그의 시니컬한 생각과 타인에 대한 불신을 생각해본다면 그가 환자를 이렇게 대하는 것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그가 불구에 대한 컴플렉스를 타인의 고통을 치료하는 동기로 훌륭하게 승화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해진 것이 아닌 것처럼 그도 다리가 그렇게 되길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다. 그저 태어나고보니 불구로 태어났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본인들의 인생을 위해서 노력을 안하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가난과 고통을 직접 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 알게 됐기 때문에 그가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층 더 넓어지고 약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불구에 대한 타인의 차가운 조롱을 받아들일줄 알게 됐지만 그것은 체념과 다르다. 삶의 고통과 행복을 상대적인 것이 아닌 그 자체의 경험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크론쇼의 삶과 죽음, 그의 말들을 통해서 인생이란 행복도 고통도 모두 가지각색의 색으로 직조하는 과정이란 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분명 그의 모난 생각에서 벗어나 인생에 대한 통찰력을 얻은 것이다.
마지막에 어머니의 편지를 찢어버리기는 하지만 그에게 어머니 및 가족의 부재는 분명 큰 영향을 미쳤다. 난 그것이 억압되다 폭발했던 것이 밀드레드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밀드레드의 온갖 나쁜짓을 다 받아주면서도 밀드레드가 고통받는 것을 보면 못견뎌한다. 밀드레드의 성숙하지 못한 모습에 본인을 무의식적으로 어머니로 생각하며 사랑을 주고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에게 여자였지만 동시에 미성숙한 아이이기도 하여 무의식적으로 본인이 돌봐주어야할 존재로 여기지 않았나싶다.
필립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애설니 가족을 통해 채워질 수 있었다. 애설니 가족의 따뜻함에 그가 느끼는 감정들은 정말 웃음짓게 했다. 돈을 다 날려 며칠간 밖에서 떠돌다 결국 애설니 가족에게 신세를 지었을 때, 애설니 가족과 홉을 따러 시골로 내려갔을 때 필립은 정말 행복했었다. 특히 시골밤의 모닥불 앞에서 가족이 빙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는 장면은 정말 따뜻했다. 또한 아마도 그가 결혼하게 될 샐리는 정말 좋은 여자이면서 필립의 우유부단함과 어리석음을 현명하게 조정할 아내가 될 것이다. 키스를 하고서도 그 다음날에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며 필립의 혼을 쏙 빼놓았다.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데에 있어서는 분명 필립보다 샐리가 고단수다. 다만 필립은 마지막까지도 그것이 사랑인지 헷갈려했는데 첫사랑이 워낙 안좋게 끝나 그것이 사랑인지 구분 못한 것이다. 밀드레드에 대한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기보다 갖을 수 없는 사람을 갖고 싶은 욕망이었고, 샐리와 같이 가정을 이루며 평안히 살고 싶어하는 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필립은 인생에서 행복과 고통이 그저 경험일 뿐이므로 인생 자체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인생이 하나의 양탄자를 나만의 경험으로 짜는 과정이고 그 경험들의 고유한 색깔도, 의미도 있다고 본다. 어떤 색깔로 어떤 경험들을 담을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기에 그런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 내 인생의 양탄자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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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2 p. 366~367

그 삶도 나름의 무늬를짜고 있다고, 어떤 행위는 쓸모가 없는 만큼 꼭 해야 할 필요가없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뿐이다. 살아가면서 겪는온갖 일들과 행위와 느낌과 생각들로써 그는 하나의 무늬를, 다시 말해, 정연하거나 정교한, 복잡하거나 아름다운 무늬를 짤수 있다. 선택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또한 현상과 달빛을 함께 얽어 짤 수 있는 환상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그렇게여겨지면 그런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배경으로 하여, 삶의 거대한 날실에 (알지 못할 샘에서 흘러나와 알지 못할 바다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은), 사람은 다양한 실가닥을 선택하여 무늬를 짬으로써자기만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 뚜렷하고,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운 무늬가 하나 있다. 태어나, 성장하여 결혼하고, 자식을 생산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하다 죽는다는 무늬가 그것이다. 하지만 복잡하고 훌륭한 다른 무늬들도있다. 행복이 없는 무늬,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무늬가 그것이다. 그것들에서도 한결 착잡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삶들은 —— 헤이워드의 삶도 그중 하나이지만 —— 우연이라는 눈먼 무관심에 의해 디자인이 완성되기도 전에 끊겨버린다.
그래서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위안이 편하다. 크론쇼와 같은삶은 이해하기 어려운 무늬다. 그러한 삶도 그 나름대로 정당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관점이 바뀌고 옛 기준은 바뀌어야 한다.
필립은 행복을 얻고 싶은 욕망을 버림으로써 그의 마지막 미망(迷妄)을 떨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이라는 척도로 삶을 잰다면 이제까지 그의 삶은 끔찍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척도로도 잴 수 있음을 알고 나니 절로 기운이 솟는 듯했다. 고통도 문제가 아니듯 행복도 문제가 아니었다. 살면서 만나는 행복이나 고통은 모두 삶의 다른 세부적인 사건들과 함께 디자인을정교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한순간 그는 삶의 우연사들을 넘어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들은 전처럼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슨 일이든이제는 삶의 무늬를 더 정교화하는 데 보탬이 되는 동기가 될뿐이다. 종말이 다가오면 그는 무늬의 완성을 기뻐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품이리라. 그 예술품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자기뿐이라 한들, 자신의 죽음과 함께 그것이 사라져버린다 한들 그 아름다움이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립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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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굴레에서 1 p. 164

「때론 두렵네. 혼자 있을 때는, 그는 필립에게 눈길을 주며말했다. 「자네는 그걸 벌이라고 하겠나? 아닐세. 난 두려움을꺼리지 않네. 어리석지 않나. 언제나 죽음을 보며 살아야 한다.
는 저 기독교의 말 말일세.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죽는다는걸 잊는 것일세. 죽는다는 건 중요하지 않네. 현명한 인간이라면 죽음의 공포 따위에는 전혀 영향받지 않아. 그야 나도 죽을때에는 살려고 몸부림치겠지. 그리고 미칠 듯이 무섭겠지. 또 나를 그런 식으로 몰아온 내 인생을 뼈저리게 후회하지 않곤 못배기겠지. 하지만 말일세, 난 그 후회를 인정하지 않네. 내금 비록 허약하고, 늙고, 병들어 가난하게 죽어가고 있지만 난
여전히 내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고 있네.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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