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에서 1 p. 140

그는 노라의 집을 천천히 걸어나왔다. 따지고 보면 그녀의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는 한번도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었어쨌든 낙담스러운 일이었다. 화가 치밀기까지 했다. 하지만 마
음이 아팠다기보다는 자존심이 더 상했다. 자신도 그 점을 알고있었다. 얼마 뒤 필립은 자신이 결국 신들의 멋진 노리개 감이었음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허허롭게 웃었다.
물론 자신의 어리석음을 웃을 줄 아는 능력을 타고났다는 것도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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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1 p. 23

「그렇다면 자네는 왜 읽나?」」
「얼마간은 재미로 읽죠. 버릇이 그렇게 된 데다 읽지 않으면마치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처럼 안정이 안 되거든요. 그리고얼마간은 제 자신을 알고 싶어 읽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제 눈으로만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가끔은 제게 의미가 있는 어떤 구절, 아니면 어떤 어구인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걸 만나게 되고, 그러면 그것은 제 일부가 되지요. 전 제게 도움이 되는 것만 책에서 얻어내요. 같은 걸 열 번을 읽는다 해도더 이상은 얻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독자란 마치 아직 열리지 않은 꽃봉오리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읽거나행한다고 해도 대부분은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해요. 다만 어떤것들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들은 꽃잎처럼열리지요. 하나씩 하나씩 말예요.. 그러다 마침내 우리는 활짝 핀 꽃을 보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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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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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삶은 비슷하다.
주인공 필립의 성장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백부 집에 맡겨졌지만, 다리를 절기 때문에 처음 들어간 학교에서 적응이 힘들었다. 남들과 다른 신체적 결함때문에 아이들의 짓궂은 조롱과 놀림을 감내해야 했다. 게다가 엄격하게 생활해야만 하는 학교생활은 그를 압박과 우울감 속에 던져놓기에 충분했다. 친구라도 있으면 나은데 마음 맞는 친구를 사귀기에 그의 자존심 강한 성격과 비꼬기 좋아하는 모난 마음이 방해했다. 사랑과 칭찬, 인정에 목말라하지만 그것이 충족되기 힘든 환경에서 아이들의 멸시까지 받아야했다.
그 곳에 있었을 경우 그는 좋은 대학을 다니고 그 당시 신사계급이었던 사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유가 필요했다. 졸업과 장학금을 목전에 두고 독일행을 선택한 것은 그 동안 억압돼있던 자유를 향한 갈망을 구체화시킨것에 다름없었다.
독일 생활은 1편에서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 등을 배웠으나 마음 편히 휴양을 즐기는 시기였다. 그가 독일에서 돌아왔을 때 본격적으로 진로를 정해야했는데 그는 회계사가 되기로 한다. 문제는 이 회계 업무가 그와 전혀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사무실에 있는 것을 괴로워했으며 특히 계산에도 소질이 없었다. 잘 하지도 못하는 것을 하며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자 했고 그래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렇다면 예술의 고향인 프랑스에 가야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프랑스에서 그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전혀 좁혀지지 못했다. 그림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단순히 잘 그리는 것보다 사람들의 영혼을 울릴 수 있는 천재성이 필요했으나 그에게는 그런것이 없었다. 예전보다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긴 했으나 그런만큼 사람들의 말에 휩쓸렸다. 결국 그는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른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여 다시 직업을 선택하기로 한다.
이 때까지 필립은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꼈지만 그 과정에서 분명 성장도 했다. 본인의 뜻보다는 독실한 집안 분위기에 따라 종교수업을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고통을 종교적으로 승화시키기보다 실제적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깨달으며 신에 대한 믿음을 버렸다. 또한 그림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다른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일줄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어딘가 안타깝고 답답하다. 왜 그럴까?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이상적인 상황 속에 본인을 주입시키는 자기합리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학교를 벗어나 독일에서 지내기를 결정했을 때는 학교에 워낙 적응을 못했고 딱히 먹고사는 문제에 몰두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계사에서 화가로 진로를 변경했을 때 그림에 대한 열정보다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데 그림에 대한 칭찬을 듣자 본인에게 재능이 있다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인생을 꿈에 맡겨버린다. 화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의사로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개인적인 시간을 다른 직업보다 많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열심히 해야하는데 시험에 두 번 떨어지고 수업도 빠지며 학업을 게을리한다. 사랑에 빠져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금전적인 여유도 없는 와중에 열심히 철학책 읽으며 인생계획을 세운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결국 그 여자는 필립을 실컷 이용하다 다른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게 되는데.
필립의 결정에 대해 공감이 가는 면이 있으나 너무 답답하기도 하다. 그는 현실적으로 삶을 바라볼 줄 알면서도 진로를 결정하거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날카로운 이성은 내팽개치고 감정에 자신을 내맡긴다.
한 번 결정한 것은 밀고 나가야한다는 백부에도, 진로를 찾아 여러가지를 경험하고자 하는 필립에게도 공감한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특히 중요한 현실적인 문제라면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현실을 외면하고 살 자신이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도 못할 때에는 앞으로의 인생계획보다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부디 2권에서는 필립이 한결 편안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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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굴레에서 1. p. 201

하지만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머리에는 끊임없이 주입되어 온 진실없는 이상들만 가득 차 있어 현실에 접촉할 때마다 멍들고 상처 받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어떤 공모의 희생자처럼 보인다. 선택해서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제나 이상적인 책들, 그리고 망각의 장밋빛 아지랑이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는 나이든 사람들의 대화, 이 두 가지가 공모하여 젊은이들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삶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기가 읽은 모든것, 자기가 들은 모든 것이 거짓말투성이라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여야 한다. 그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은 인생의 십자가에 그들을 때려박는 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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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1 p. 194

그가 신앙을 버린 것은 딴 이유보다 그에게 종교적인 기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앙이 밖에서 강요되어 왔을 뿐이었다. 그것은 환경과 범례의 문제였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범례를 통해 그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신앙을 간단히 벗어던져 버렸다. 마치 몸에 맞지 않게 된 외투처럼, 비록 깨닫지는 못했지만 신앙이 오랫동안 그를 지탱해 왔던지라, 그것을 버리고 나자, 처음에는 삶이 낯설고 외롭게 보였다. 지팡이에 의지해 오던 사람이 갑자기 지팡이 없이 걷게된 기분이었다. 낮은 더 춥고, 밤은 더 외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벅찬 감격이 그를 버티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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