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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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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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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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렇게 길지 않은 글이지만 글 자체가 하나의 문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었는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책은 주인공의 일생과 고통스러웠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주인공의 사랑이 부차적으로 전개됐는데 영화는 남자와의 사랑에 더 집중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도 책도 모두 만족한다.
사랑 자체가 정상, 비정상으로 나눌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하지만 둘의 사랑이 그렇게 정상적이진 않다. 다만 주인공의 의식과 생각은 매우 성숙해서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정상이라는 기준을 맞춘다.
나에게 성숙함이라는 기준은 어떤 일을 벌였을 때 자신의 의도를 인정하고 결과까지 책임질 줄 아는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주인공은 열여섯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다. 외부에서 남자와의 사랑을 어떻게 보는지, 자신의 이미지가 어떤지 등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적어도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는 솔직하다. 외부의 시선이나 가족 공동체 내에서의 압박은 그녀의 본모습을 숨기게 하지만 그녀는 이런 자신의 상황과 감정의 괴리감을 알고 있다.
주인공은 남자를 사랑했을까? 그녀가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공간에서 뒤늦게 흘리는 눈물은 그녀가 남자를 사랑했다는 증거다. 이별의 순간 북받쳐오르는 감정마저 억눌러야 했지만 쇼팽의 음악 속에서 확신할 수 없었던 감정을 사랑이라 정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그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순간에서만 그녀를 짓누르는 우울감과 혼란을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독재자처럼 행동하는 큰오빠와 이를 방관하는 엄마, 고통받는 작은오빠. 조각난 거울이 일그러뜨린 모양으로 서로를 비추는 것처럼 그렇게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불행과 외로움이 그녀의 영혼을 좀먹어갈 때 나타난 탈출구를 그녀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억압돼 있던 감정들이 중국인 남자와 사랑을 나누면서 배출될 수 있었고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시간과 공간은 그 때가 유일했다. 그래서 그 남자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인 남자는 개인, 가정, 사회로서 분명한 역할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첫눈에 반한 백인 소녀에게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결국 그녀와는 절대로 사랑을 이룰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가문에 종속된 삶 속에서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평생 옆에 두고 싶은 사람과 마음껏 사랑하지 못하는 아픔이 체념이 되고 어느 순간 잊힐듯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랑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다.
사랑은 무엇일까. 내 나름대로 답을 내려본다면 사랑은 절박한 서로를 찾아 위로하는 짧고도 긴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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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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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넘어 평화에 이르기까지
1권에 이어 필립의 첫사랑 이야기는 눈을 뜨고 못봐줄정도 였지만 재밌기도 했다. 다만 그리피스와 밀드레드의 정신나간 일탈을 다 받아주며 둘이 여행가라고 돈까지 줬을 때는 진심으로 불쌍했다. 밀드레드의 사랑을 원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했던 것 같다.
필립에게는 크게 세개의 면이 있다. 이것들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필립의 선택을 이루어나간다. 하나는 필립이 말한 것처럼 위대한 사랑,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해 생겨난 가족 및 정에 대한 그리움, 또 하나는 불구를 컴플렉스로 받아들여 만들어진 타인에 대한 불신, 냉정함, 자기비하이며, 마지막으로 불구로 살아오며 받은 아픔을 통해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환자에게 정성과 따뜻함을 보이는 것이다.
필립은 분명 감정기복과 자기비하가 심하며 본인의 잘못을 남에게 돌리는 사람이다. 이것은 특히 본인의 감정이 격해지거나 고통을 받았을 때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밀드레드가 밀러에게 속아 빈털터리가 되고 다시 필립에게 돌아와 노라와 헤어져야 했을 때 정말 찌질했다. 노라가 상처를 받는 것이 두려워서 노라와 대면하는 것을 피하지만, 노라가 필립을 계속 만나기를 원하자 돌연 자신의 비겁함이 노라에 대한 미움으로 변질돼 버린것이다. 정확히는 ‘노라가 밉살스러웠다‘는 표현이었는데 정말 비겁하고 찌질했다. 노라를 사랑하지 않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기분으로 노라를 만났다고 해도 감정을 교류했던 경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타인과 만나 그 사람의 생각이 자신의 것과 잘 맞는지 확인하고 내 세계에 그 사람을 초대함으로써 둘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어떻게 큰 일이 아니란 말인가. 특히 필립은 애정결핍이 있었는데 그것을 얼마간 채워준 사람이 노라였다. 이런 사람을 자신과 헤어져주지 않는다고 미워한다니 참 비겁했다.
또한 본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돈을 다 날려버리고서는 백부의 유산만이 살길이라 백부가 죽기만을 바라는 것 또한 한심했다. 왜 이렇게 됐는지 끝없이 불평하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운이 좋지 않았다고 실망하지만 주식의 위험을 모르고 다른 사람의 말만 믿고 투자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던가. 돈을 다 날린것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돈 때문에 백부의 죽음을 바라는 것은 정말 비인간적이다. 본인도 자연스럽게 살인을 상상하는 자신에게 놀라지만 본인의 선택으로 벌어진 결과는 본인이 책임지는것이 당연하다. 백부가 죽지 않기 때문에 본인의 인생이 힘들어진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 그가 의사가 되기 위해 실습을 하고 여러 환자들을 만나며 환자를 최선을 다해 진료하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필립의 모난 성격에도 불구하고 필립은 환자들을 정성껏 대하고 계급사회였음에도 계급을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허물없이 대했다. 자신보다 약자라고 하여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똑같은 생명이자 사람으로 대했다. 그의 인생 전반부에서 그의 시니컬한 생각과 타인에 대한 불신을 생각해본다면 그가 환자를 이렇게 대하는 것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그가 불구에 대한 컴플렉스를 타인의 고통을 치료하는 동기로 훌륭하게 승화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해진 것이 아닌 것처럼 그도 다리가 그렇게 되길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다. 그저 태어나고보니 불구로 태어났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본인들의 인생을 위해서 노력을 안하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가난과 고통을 직접 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 알게 됐기 때문에 그가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층 더 넓어지고 약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불구에 대한 타인의 차가운 조롱을 받아들일줄 알게 됐지만 그것은 체념과 다르다. 삶의 고통과 행복을 상대적인 것이 아닌 그 자체의 경험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크론쇼의 삶과 죽음, 그의 말들을 통해서 인생이란 행복도 고통도 모두 가지각색의 색으로 직조하는 과정이란 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분명 그의 모난 생각에서 벗어나 인생에 대한 통찰력을 얻은 것이다.
마지막에 어머니의 편지를 찢어버리기는 하지만 그에게 어머니 및 가족의 부재는 분명 큰 영향을 미쳤다. 난 그것이 억압되다 폭발했던 것이 밀드레드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밀드레드의 온갖 나쁜짓을 다 받아주면서도 밀드레드가 고통받는 것을 보면 못견뎌한다. 밀드레드의 성숙하지 못한 모습에 본인을 무의식적으로 어머니로 생각하며 사랑을 주고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에게 여자였지만 동시에 미성숙한 아이이기도 하여 무의식적으로 본인이 돌봐주어야할 존재로 여기지 않았나싶다.
필립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애설니 가족을 통해 채워질 수 있었다. 애설니 가족의 따뜻함에 그가 느끼는 감정들은 정말 웃음짓게 했다. 돈을 다 날려 며칠간 밖에서 떠돌다 결국 애설니 가족에게 신세를 지었을 때, 애설니 가족과 홉을 따러 시골로 내려갔을 때 필립은 정말 행복했었다. 특히 시골밤의 모닥불 앞에서 가족이 빙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는 장면은 정말 따뜻했다. 또한 아마도 그가 결혼하게 될 샐리는 정말 좋은 여자이면서 필립의 우유부단함과 어리석음을 현명하게 조정할 아내가 될 것이다. 키스를 하고서도 그 다음날에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며 필립의 혼을 쏙 빼놓았다.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데에 있어서는 분명 필립보다 샐리가 고단수다. 다만 필립은 마지막까지도 그것이 사랑인지 헷갈려했는데 첫사랑이 워낙 안좋게 끝나 그것이 사랑인지 구분 못한 것이다. 밀드레드에 대한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기보다 갖을 수 없는 사람을 갖고 싶은 욕망이었고, 샐리와 같이 가정을 이루며 평안히 살고 싶어하는 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필립은 인생에서 행복과 고통이 그저 경험일 뿐이므로 인생 자체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인생이 하나의 양탄자를 나만의 경험으로 짜는 과정이고 그 경험들의 고유한 색깔도, 의미도 있다고 본다. 어떤 색깔로 어떤 경험들을 담을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기에 그런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 내 인생의 양탄자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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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왕의 생애
쑤퉁 지음, 김택규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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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무상
주인공 단백은 섭국이라는 국가의 왕이지만 잔인하고 포악하며 이기적이다. 왕일 때 나라를 진심으로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왕으로서의 결정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무거워야 하는 것인지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왕의 자질을 타고나지 않았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왕의 자질을 타고난것처럼 보이는 그의 이복형제 단문을 두려워하고 죽이고 싶어했다.
하지만 단문이 왕이 되어서 나라가 부강해지고 태평성대를 이루었는가?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팽국의 속국이 되고 만다. 단문이 단백을 폐위시키고 왕이 되며 단백에게 내렸던 벌은 죽음이 아니라 그를 궁 밖으로 쫓아내 서민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을 섭국의 진정한 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무능한 단백이 낮은 자리에서 자신의 훌륭한 통치를 우러러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궁 안에서 고귀하게 길러진 탓에 서민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백은 어릴적 보았던,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줄타기를 하러 머나먼 여정을 떠나면서 세상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고 결국 곡예단을 직접 꾸리기에 이른다. 그의 곁을 충실히 지키는 연랑을 잃고도 승려가 되어 줄타기를 계속한다. 파란 하늘로 몇번이고 높이 뛰어오르며 세상의 모든것이 덧없음을 온 마음으로 되새긴다. 결국 진정으로 살아남는 자가 된다.
높은 자리에 앉아만 있었던 어린 왕. 그의 포악함과 무능함이 섭국의 재난을 초래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섭국의 재난은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탐욕이 서로 겹치며 벌어진 불행이었다. 황보부인의 욕심, 맹부인의 탐욕, 단백 자신의 무능함, 여인들의 시기와 질투, 단문의 오만함 등등이 역사의 흐름 아래 섭국을 몰락으로 이끌었다.
단백은 줄을 타며 하늘에 좀 더 가까워지고자 했고 하늘을 높이,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새들을 동경했다. 왕으로 있었을 때의 불안감, 공포, 무력감, 불신 등을 모두 다 떨쳐버리고 자신의 발로 온전하게 하늘을 걸었을 때, 그 밧줄 위에서 오히려 더 자신을 왕이라고 생각했다.
무소불위의 권력도 날아가는 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버리는 것, 내 발이 나아가는 곳을 직접 정하는 것과 같이 자유를 향한 갈망 외에는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진다. 그야말로 인생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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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시장 1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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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간 군상이 만들어낸 허영의 시장
레베카와 아멜리아가 기숙학교에서 세상으로 나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둘은 기본적으로 성격이 매우 다른데 레베카는 신분이 낮은 고아로서 사람들을 조종하고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자신의 이득에 따라 움직인다. 그에 반해 아멜리아는 부잣집 딸로 태어나 주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어느 누구에게든 사랑이 넘치며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한다.
가난하게 자란 레베카는 신분상승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한다. 풍요롭게 자란 아멜리아는 사람들의 보호에 둘러싸여 순수하게만 자란다. 만약 작가가 둘의 성격을 바꿨다면 레베카는 가난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캔디형 캐릭터가 됐을 것이고, 아멜리아는 본인의 환경을 이용하여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이용하는 캐릭터가 됐을 것이다.
아멜리아는 너무 순진하고 사랑만을 갈구해서 문제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좋은 남자가 아님에도 그가 조금만 눈길이나 관심을 주면 영웅이니 관대한 남자니 온갖 찬사를 늘어놓는데 참 안타깝다. 자신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도빈이 아니라 틈만 나면 그녀를 버리고 자신의 유흥을 찾으러 나가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해도, 그녀가 레베카의 성격을 조금만 닮았더라면 온종일 자기를 괴롭히는 불안감이나 우울함은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레베카는 도빈의 말처럼 요부다. 타인에게 관심받는걸 즐기고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는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이득에 따라 사람을 이용한다. 머릿속에 신분상승밖에 없는 인물이며 순진한 아멜리아를 이용하고 그녀의 불행을 즐기는 모습은 교활하고 인간적이지 않다. 그녀는 로던을 사랑해서라기보다 본인이 손쉽게 다룰 수 있고 어느정도의 신분 상승도 가능하기 때문에 결혼했을 것이다.
이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나간 조지와 로던을 대하는 아멜리아와 레베카의 모습에서도 아주 잘 알 수 있다. 아멜리아는 진심으로 조지가 살아오길 기도한다. 레베카는 그가 돌아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 본인의 재산을 가늠해보고 전쟁을 한몫 챙기기용으로 이용하기에 바쁘다. 사랑을 대하는 두 여자의 모습이 너무 달라 재밌다.
이러한 인물들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허영의 시장은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심에 의해 만들어졌고 지금까지도 닫히는 일이 없었다. 읽다보며 든 생각은 돈, 즉 자본이 생기는 순간부터 이 시장도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너무 결정론적인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탐욕이 돈과 결합하는 순간, 허영의 시장은 계속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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