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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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넘어선 불멸의 기록으로
뛰어난 언어학자 그레고리우스가 우연히 다리에서 포트루갈 여인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학생들의 존경을 받은 학식 높은 교수였던 그가 갑자기 리스본으로 떠났던 이유는 그를 홀린 그 여인과 프라두의 글 때문이었다.

그는 프라두의 글을 읽고 그에 대해 좀 더 알고자 기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떠난다. 철저히 계획된 생활로 몇십년을 살았던 사람이 그런 충동을 다스리지 않고 갑자기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은 매우 대담한 선택이었다. 여행을 가면서도 그렇게 충동적으로 움직여도 되는지 끝없이 자문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이끌림으로 리스본에 도착한다. 그 곳에서 그는 프라두의 생애를 알기 위해 그와 관계된 사람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코우팅뉴 노인, 바르톨로메우 신부, 아드리아나, 조르지, 주앙 에사 등등 프라두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함께한 사람들이 말하는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철두철미한 천재성, 유치한 것들을 싫어하는 성격, 신의 모순에 반항하는 대담함, 신의를 가장 중시했던 우직함, 아픈 아버지에 대한 책임감 및 죄책감에 시달렸던 나날, 자신에 대한 동생의 무조건적인 충성심에 대한 거부감, 강렬하게 사랑했던 여자, 하지만 그녀의 아픈 말 한마디로 그 손을 놓아버린 냉정함, 한평생 자신의 구원을 바랬던 남자....

프라두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짓누르는 주변의 기대감과 그런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자랐다.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많은 선생님들에게 도전을 하며 천재성으로 유명해졌지만 그 스스로도 평범함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 때 만난 조르지와 마리아나는 어릴적부터 무거웠던 그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들어주는 친구들이었다.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지만 이 둘에게만은 자신의 곁을 내줬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신의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사라져버리고 말았고 그 세월 속에서 그는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자신이 믿는 올바른 진리는 실천하고자 애썼다.

독재정치가 지속되면서 가장 당연한 자유라는 가치가 억압됐다. 프라두처럼 명민한 정신의 소유자라면 혐오했을 세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독재자의 묵인하에 권력을 계속 유지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해 비참함과 고통을 느꼈다. 세상에 떳떳하게 자신을 내보일 수 없다는 괴로움이 그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하지만 더 큰 비참함은 그가 독재자의 하수인을 살리면서 시작됐다. 하필 그가 의사여서, 그 남자가 그의 병원 앞에 쓰러져서 생긴 불행이었다. 그는 치명상을 입었었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죽어갈 터였다. 독재에 신음하는 자유를 조금이나마 쟁취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분을 자각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으로 그를 살렸고 이후에 그가 겪었던 수치는 그를 평생 따라다녔다.
남몰래 저항운동에 참가하기로 했던 것도 그것을 속죄하기 위함이었다. 의사로서 정당하게 행동했고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했을 테지만 그것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정확히 인지한 결과였다.

다만 저항운동에 참가하면서 그는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다. 이 때 만난 에스테파니아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프라두가 사랑에 빠진것은 절대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빛과 열정으로 자신을 새롭게 탈바꿈할 기회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이미 조르지의 연인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세상에서 단 하나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신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프라두는 애써 그녀를 밀어냈지만 조르지가 이 둘의 기류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이와 더불어 그녀가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그녀가 죽어야된다는 분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프라두는 조르지와 얘기를 나눈 후 평생 지속될 것 같았던 유대감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조르지는 대의를 위해서라도 그녀를 죽여야 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레고리우스가 조르지를 만났을 때 들었던 이야기는 달랐다. 프라두가 어떻게 생각했든 자신은 프라두가 생각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실이 뭐가 됐던 프라두는 그녀를 살리는 것을 선택한다. 그녀를 독재자뿐만이 아니라 한 때 생사를 같이 했던 이들에게서도 멀리 떨어뜨려 놓기 위해 그녀와 긴 여행을 한다.

아드리아나는 그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고 했다. 나중에 에스테파니아와의 이야기를 통해 프라두가 그 여행에서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조르지와의 결별 또한 그의 영혼이 빠져나갈 정도의 슬픔이었을 거라는 것을.

프라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떠나도 붙잡지 않았다.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며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여 존경을 받았다.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시한폭탄이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기까지 정의롭게 행동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켜가며 불의에 맞섰고 옳게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너무도 외로웠다. 그가 쓴 글에서 드러나는 깊은 사유와 고민들은 그의 뛰어난 지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는지를 말하기도 한다. 그가 맺고 있는 관계에서 그가 편하게 숨쉴 수 있었던 때는 마리아나의 부엌에서 쉬고 있을 때 밖에 없었다.

결코 길지 않은 인생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기에 그레고리우스와 마찬가지로 그를 떠나보내는게 쉽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 이토록 철저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게 어떤지 나도 느꼈기 때문이다.

프라두는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스스로 외로움을 감당하고 견뎠고, 흔히들 말하는 짧고도 불꽃같은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의 글을 통해 그는 시간을 뛰어넘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숨쉴 수 있게 됐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그레고리우스의 용기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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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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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인생철학을 얘기하다

달리기를 이제 시작하려는 사람들, 달리기에 관심이 있었지만 막연한 두려움에 머뭇거린 사람들을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 책이다.

두번째로 읽었는데 처음 읽었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저자의 인생에 대한 자세나 달리기에 대한 생각들에 좀 더 공감하면서 읽었다. 이렇게 타인의 삶에 더 공감할 수 있게 됐을 때 나이만 먹은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하루키처럼 장거리 러너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두번 달릴 뿐이지만 그래도 7년동안 꾸준히 달렸다는 점에서 나름 달리기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날씨도 좋고 달리기용 스마트워치도 사서 목표기록을 달성하고자 열심히 달리고 있다. 저자가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달리기에 대한 열정을 자극해서 그 동안 슬럼프였던 상태를 회복시켜줬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두가지였는데 전반적인 인생 및 철학을 달리기와 연관시킨것과 목표기록이 달성되지 않아 슬퍼하는 저자의 경험이었다. 이 두가지 모두 나 또한 달리는 내내 느끼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운동을 싫어하던 내가 왜 달리기를 선택했는지는 지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달릴 때 매번 나를 다스리는 인내심과 꾸준함이 내 성격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만큼 어쩌면 본능적으로 선택했다는 느낌도 있다. 숨이 턱끝까지 차고 다리근육은 비명을 지르고 온몸의 수분은 말라가는데 목표거리는 아직도 많이 남은 상태가 지속되다보면 정말 포기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걸 이기지 못해 포기한적은 별로 없었다. 시간이 많이 걸려도,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그 날 정한 목표거리는 꼭 뛰었었다. 이런 고집은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대하는지와 연결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인내하며 내 앞에 줄줄이 놓인 고난을 뛰어넘는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달리기와 내 인생철학의 공통점이다.

하루키 또한 작가로서의 삶을 얘기하며 달리기가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강조한다.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가로운 직업이 아니고 매일 일정량의 글을 집중력있게 쓰지 않으면 안되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달리기가 이렇다. 달리는 순간에 집중하여 목표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페이스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며 힘들어도 발을 내딛는 꾸준한 자세가 중요하다.

사실 이건 작가뿐만 아니라 인생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과정이다. 다만 달리기는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히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좀 더 극적인 활동이라는 것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목표기록을 달성하는 것 또한 나를 단련시킬 수 있는 중요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적정한 시간을 유지하면서 목표거리를 완수하는 것에 만족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참가한 10km 마라톤에서 부족한 훈련으로 기록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목표기록을 세우고 훈련하기로 했다. 비록 코로나 때문에 마라톤이 다 취소돼버렸지만 자체적인 훈련은 이어나가고 있다. 한번에 잘 뛰는 요령은 있을 수 없기에 꾸준히 체력을 길러가며 뛰고 있다.

요즘 들어 독서의 순기능을 많이 느끼고 있다. 내가 될 수 없거나 체험하기 힘든 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내 인생에 유의미한 깨달음을 얻는 것,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때 두려움을 줄여주는 것, 내 안의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 이 책이 그렇다. 읽으면 읽을수록 다시 달리고 싶어진다. 마음이 힘들어 아무것도 하기 싫었을 때, 내 안의 열정이 소진돼버렸을 때 이 책을 읽으면 다시 열정이 살아나는게 느껴진다. 내 자신이 나에게 강요해 어쩔 수 없이 나가는게 아니라 순수하게 다시 목표를 향해 질주했던 그 시간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간다.

그래서 요즘에는 하루키와, 이 세상 모든 러너들과 즐겁게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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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 안경원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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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다친 사람들의 일대기
단편으로 이루어졌지만 전체적으로 비슷한 것들을 말하고 있다. 다만 하나 하나의 단편이 다 강렬하다. 무엇보다 모든 주인공들의 생각과 말이 공감되고 내가 그 상황에 있어도 그렇게 행동했을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외부 환경의 압박, 삶에 대한 두려움, 정리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삶의 궤적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인간. 서로 다른 선택을 하지만 자기파멸적인 길로 들어서는 불완전한 존재들. 하지만 물러서지 않고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성숙함도 있는 그들.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평소 생각해왔던 것들을 다른 인물들을 통해 공감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마음이 힘들 때 두고두고 읽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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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라이징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슬라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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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의 어린시절이 어땠는지 왜 한니발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보여준다. 마지막에 한니발이 복수를 한 후 어떤 눈빛이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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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토머스 해리스 지음, 이창식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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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에 비해 너무 아쉬운 이야기
먼저 전작인 양들의 침묵에 비해 너무 아쉽다는 얘기부터 해야겠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주인공, 서사, 결말까지 온통 아쉽다.
일단 전개가 너무 암울하다. 스탈링을 공격하는 권력자에게 스탈링은 거의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전작에서는 그녀 주변의 조력자들이 그녀를 지원하고 스탈링도 빛나는 추리력과 순발력으로 사건을 풀어나갔다. 하지만 이 작품 속의 스탈링은 개인의 능력은 정점에 도달해 있을지언정 권 력자들의 부조리한 결정과 압력에 저항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당해버리는 약자가 되고 말았다.
그녀에게 큰 힘이 돼주었던 크로포드도 아내가 죽은 후 급격히 쇠약해지고 스탈링의 친구인 아델리아만이 곁에 남아 정신적으로 무너진 스탈링을 위로해준다. 하지만 스탈링에게 가장 절실했던건 폴 랜들러에게서 그녀를 보호해줄 권력이었다.
폴 랜들러의 야비함은 정말 화났다. 성공에만 눈이 멀어 다른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짓밟는 권력자의 모습이 생생했다. 특히 남성과 권력이 결합했을 때의 그 막강함을 소설이지만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남자인 자신이 여자인 스탈링의 능력에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탈링에게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오직 남성이라는 이유로 스탈링을 무시하고 그녀를 성적으로 유린한다는 상상을 하며 스탈링이 자신에게 굴복당하기를 원한다. 여성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약자를 억압하고 잔인하게 굴복시키는 것을 원하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이자 비겁한 쓰레기다. 그래서 한니발 렉터에게 잡혀 최후를 맞이한 것이 이 작품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다.
한니발 렉터 박사와 스탈링의 마지막은 정말 안타까웠다. 그 둘에게 심적으로 공감하여 안타까웠다는 것이 아니라 결말이 그런식으로 쓰여졌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안타까웠다. 스탈링은 여성 수사관으로서 성차별과 권력의 부당함을 온몸으로 겪지만 끝까지 당당하게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는 인물이다. 렉터 박사는 인육을 먹고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이코패스지만 스탈링의 어린 시절에 관심을 갖고 그녀와 묘한 유대감을 갖는다. 이 둘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갖는 유대감과 동점심, 친밀함 등으로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절대로 이 둘이 섞이지는 않았다. 전작에서 내가 느꼈었던 이 둘의 목적은 너무도 달랐고 서로에 대한 감정들도 수단적으로만 활용될 뿐이었다. 마치 빨강과 파랑이 서로의 강렬한 색감을 인정하면서도 섞여서 보라색이 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처럼.
그런데 결말 부분에서 스탈링의 색감이 완전히 무너졌다. 스탈링의 진취적이고 당당하며 부당한 것에 끝까지 맞서 싸우는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스탈링에게 기대됐던 것들, 여성 수사관으로서 고난과 역경을 딛고 결국엔 자신의 목적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약물과 렉터 박사의 심리치료로 인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렉터 박사의 곁에 남는 스탈링이 돼버렸다. 이와 동시에 렉터 박사의 캐릭터성도 무너졌다. 박사의 잔인함이 왜 스탈링에겐 적용되지 않는가? 그녀가 박사의 동생 미샤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동생의 순수함을 오직 스탈링만이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샤를 추억하는 방법으로 그녀를 죽이는 것과 그녀를 자신의 곁에 남도록 만드는것 중 박사는 후자를 택했다. 그녀에게 지루한 심리치료까지 동원하면서.
하지만 그의 본성은 잔인함이자 인간 자체에 대한 불신이 아닌가. 스탈링에게 정액을 뿌려 모욕을 줬다는 이유로 죽게 만들고 온갖 피튀기는 살해현장을 만들고도 죄책감 하나 느끼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이 신과 같이 인간에 대한 심판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이코패스다. 이런 인물이 동생의 순수한 영혼이 들어앉을 수 있는 자리로 스탈링을 선택했더라도 스탈링의 트라우마를 그가 직접 치료했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오히려 죽이고자 했다면 이해가 갔을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흔히들 말하는 클리셰가 이 작품과 꼭 맞아들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스탈링이 FBI를 떠나는게 아니라 계속 남으면서 사건을 수사하고 약자를 도우면서 멋진 활약을 계속하다 렉터 박사와 종국에는 최후의 대결을 벌이는 흔하디 흔한 클리셰. 다만 스탈링이 안타까운건 그녀가 거의 내쫓길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고 그녀의 능력과 지성이 발휘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정말 아쉽고 특히 결말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엄청나게 멋진 캐릭터들이 탄생했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억지로 클리셰를 비틀려다 실패해버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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