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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심장 ㅣ 스토리콜렉터 100
크리스 카터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들의 침묵을 워낙 좋아해서 마케팅 문구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왜 양들의 침묵을 언급하였는지 책을 읽다보니 이해되었고 한니발과는 또 다른 천재 사이코패스를 만들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스릴러 소설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인 선과 악의 구도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잔인한 고문과 살육을 몇 십년간 해오던 살인마가 끝내 검거되었다고 해서 선이 승리하였다는 단순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니발과 같이 천재이기는 하나 한니발이 범행대상을 자신의 욕구와 성향을 고려하여 신중히 골랐던 것과는 달리 이 소설의 살인마는 사이코패스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자신의 학문적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 사람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또한 문신을 싫어하고 피부를 벗긴다는 점에서 한니발과 유사한 면은 있지만 고문 형태가 더욱 다양하고 고문을 통해 순수한 즐거움과 흥분을 느꼈다는 것은 어쩌면 이 살인마는 한니발보다 더 악랄하고 잔인한 사이코패스라고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살인마와 대학시절 절친한 친구였으나 졸업 후 그의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살인이 드러나 친구와 대면하게 되는데 그 또한 살인마에 비견될 정도로 천재적인 수사관이지만 소설 내내 우위를 점하는 것은 주인공이 아니라 살인마이다.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범인이 이미 FBI 시설 내 구금되어 있고 그가 살해한 수많은 시체가 묻힌 곳을 찾기 위해 주인공과 심리적인 대결을 펼치지만 살인마가 오랫동안 정신수양을 통해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완벽한 마음의 성을 지어버렸기 때문에 주인공은 살인마에 계속 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다.
살인마의 독백을 통해 그가 평범한 사람들을 살해한 장면, 그 과정에서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실현될 때의 희열을 느끼는 장면이 전개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가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 살인자라면 어땠을 지 평범한 사람으로서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기까지 했다. 인간을 죽이고 싶다는 끊임없는 욕구와 충동, 결국 그것을 실현했을 때의 잔인한 범행수법, 일말의 죄책감마저 지워버린,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괴물의 탄생을 실시간으로 목도한 기분이어서 책을 읽고난 후에도 소설 속 살인마가 섬뜩했다.
살인자가 끝내 검거되었다고 해서 그 동안의 무고한 살인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깊이 체감되며 깊은 씁쓸함을 남긴다. 주인공은 살해된 시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살인부터 체포당했을 때의 대응방법까지 모두 계획한 살인마의 생각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 그가 대학시절 친하게 지낸 친구를 처음 죽인 이후 살인욕구에 눈을 뜨며 천재적인 지능으로 대량 살인을 자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살인마의 독백처럼 과연 사이코패스는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멈출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한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인 사이코패스로 자랄 수 밖에 없는, 그렇게 운명지어진 사람이 과연 생명을 소중히 품을 수 있는 씨앗을 내면에서 자라게 할 수 있는가? 작가는 이러한 의문에서 이 책을 집필한 것이 아닐까 하다. 사실 한니발 렉터는 이전까지 없었던 강한 캐릭터성을 기반으로 매력적인 천재 사이코패스로 그려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살인자는 한니발 렉터와 같은 천재로 묘사되는 반면 멈출 수 없는 살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계속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그야말로 악 중의 악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람에 대한 이타심,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 친구와의 우정, 연인에 대한 사랑 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살해 욕구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논할 수 있을까. 그런 인간을 교화시킨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라 여겨진다. 과연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사냥 당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어떨지도 궁금해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 선을 넘나들 수 있음에 흥분하며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게 될까. 본성 자체가 동족을 살해하도록 설계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이해될 수도 없음을 여실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