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 땐 시리즈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지음, 김정훈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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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즐겁다-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

 

 

딸기 좀 먹어봐너는 팥빙수에 반쪽으로 잘라진 깨끗한 딸기를 가리켰다딸기 씨가 그렇게 좋다더라그 옆의 바나나를 먹으며 말했다봄 맞아 처음 먹는 딸기는 의외로 흰색이다몰랐던 것처럼빨간 딸기의 속살은 희디 희다팥빙수의 딸기는 떡에 기대서 우유에 적셔져도 흰색을 잃지 않는다그러니까 우유도 하얗고 딸기도 하얀 것이지하지만 '진짜 딸기맛 우유'는 '분홍색'일까왜 그런지 모르겠으나딸기우유는 분홍색이 맞는 것 같다.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꾸만 희석되는 욕망에 대해 묻는다겉과 속을 섞어 무엇인지 모르게 하고 싶은내가 외면해버리리는 내 진짜 욕망에 대해 말이다내 욕망의 색은 '진짜 딸기맛 우유'처럼 분홍색이 아니던가마치 '진짜딸기의 속이라고 착각하게 하는 것처럼그러나 단단하게 지니고 있어야 할 딸기의 속은 흰색일 것이다외부와 상관없이 지속해야 할 내 감정은 어디뇨이렇게 큰 글씨로..박 하게 물어온다.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 유쾌한 조합이지만 어쩐지 약간 숨기고 싶은 제목이기도 하다그러나 나는 결코 무력해서 읽는 것은 아니라오.

 

목차는 진단하기-이해하기-적용하기로 나뉜다몇 십년 전에 풀었던 '스스로 하는 학습지'의 목차가 떠올랐다. '분수'에 약한 것을 진단하고, '분수'를 이해하고, '분수'를 적용했던 어느 초등학교 수업시간을 떠올리면 잘 따라갈 수 있다혹시 그것에 트라우마가 있다면 목차는 가볍게 무시하고 와도 좋다책은 읽는 사람 마음이니까.

 

'욕망' 이라고 하면 굉장히 무섭고, 피해야 할 말 같지만이야기 되는(공연음악 등등거의 모든 것의 주제다본디 삶의 주제로 자리 잡아야 했지만 '욕망'은 길을 잃어버리고 '거짓 욕망에 밀리느라 '이야기 되는 것'에서야 주연을 꾀찼다가까이에 있는 '욕망'과 ''의 일치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불일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네이버 웹툰에 <미쳐날뛰는 생활툰>이라는 작품이 있다. '자매'가 나오는데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만화를 그린다며 연습하고 ‥ 연습하는 것이 일과이고 언니는 회사에 다닌다회사인이라면 십에 팔구가 그렇듯 출근하기 싫다. 그녀는 어느 날 베개를 기타 삼아 노래를 뽑는다가사의 주된 내용은 '회사를 때려 치고 음악을 하고 싶다' 동생은 귀를 막으며 그럼 '때려치라!'고 한다하지만 이어지는 가사, '돈을 벌어야 하느니~/음악해서 돈벌면 되잖아/예술해서 돈 벌어먹긴 더럽게 힘드나니~/' (...)


생활이 곤궁하고, 앞날도 알 수 없는 동생보다 때로 언니가 더 안쓰러워 보이지는 않은지.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 종종 왜 그토록 안쓰러워 보이는 것인지를 이해하고 싶다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곳은 오히려 우리 욕망이다.' 33 저자는 콕 짚는다. 언니의 노래가 베게가 아니라 진짜 기타만 되었더라도. 나는 언니의 노래를 그냥 지나갈 수 있었을 거다.

 

언니가 음악을 하지 않는 일은음악의 시작은 매우 험난하고그 빛을 보기는 무척 어렵다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에 부담갖기 때문일까그러나 부담이라니? '기타 연주자는 기타를 치는 사람이 된다.'는 말을 기억하자. 베게만 친다면 어떤 재능이 있어도 기타를 칠 수 없다. 처음 손에 굳은살이 박히는 순서를 지나지 않으면 소리를 낼 수조차 없다가장 친근한 악기 중 하나지만 TV나 라디오에서 들리는 소리를 내가 내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어떨까. '혹시 더 대단한 것들을 좇으려는 갈망은 우리를 세상에 대한 혐오 속에 빠뜨리고그렇게 하여 좋은 것들 하나하나가 주변의 평범함과 시시함 속에 둘러싸인다.50' 이 대목에서, 멈췄던 것은 아닐까. 저자는 욕망을 포기하는 것도 모자라 포기를 주변의 이유로 돌리는 비겁함을 꼬집는다이게 꽤 아프다왜냐하면 회사를 다니는 언니가실은 나의 모습이 아니었냐는 물음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너는 종종 기타를 친다기타의 목적은 앨범을 내거나 연주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네 노래에 맞는 반주를 언제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지. 직접 낼 수 있는 소리는 좋은 음악을 '듣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비록 서툴고연주 할 수 있는 음악이 한정되더라도 말이다기타를 사서 치는 둥 마는 둥 한지 벌써 오년이 되었다오년 동안 얼만큼 늘었냐고 물어본다면쑥쓰럽게 머리를 긁적이겠지만 그때그때 나오는 좋은 노래를 부르면서 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는 걸 안다누군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 아니고, '앵콜요청금지' 나 'duet'을 노래하는 아주 행복한 삼분을 위해서 말이다누구나 예술에 대한 욕망이 있다그것은 예술자체를 업으로 지내자는 원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충분히 이뤄갈 수 있다예술을 사치라고 거부하는 생각은, 예술 하고 싶은 욕망을 스스로 뜯어냈던 자신에 대한 미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가위로 종이를 오리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주 단순한 욕망.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말하는 것처럼이렇게.


작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의 균형을 더 잘 느끼기 위해 시도하는 글쓰기음악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리의 조화로 귀를 교육하기 위해 해보는 악기 연주무용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을 다르게 볼 수 있기 위해 추는 춤. 167

 

욕망의 왈츠에 맞게 춤을 추자. 자연스러운 스텝은 나에게 어울린다. 나의 발과, 나의 몸짓, 무엇보다 나의 기분과. 나의 삶을 가꿀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그곳에는 나를 위한 물이있고, 물은 나를 이해하는 속도로 흐른다.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그런 사람이 된 후에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귀기울이자. 


마치 돌을 버리고 난 후에는 다시 그것을 잡을 수 없듯이그럼에도 돌을 던지는 것은 그에게 달려 있는 일이었다그 원리가 자신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이렇듯 정의롭지 못한 사람과 무절제한 사람 양자에게 공히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으며 그런 까닭에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하지만 일단 그런 사람이 된 후에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이상 없다윤리학 3. 1114a 14~22 / 147


그렇다면 당신이 무력한 이유, 조금은 알 수 있을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을 조금씩 매일매일 '하'자. 욕망을 멀찍이서 보거나 다른이에게 '좋다더라'권해주지 말고. 나는 한쪽으로 몰아 준 딸기를 너에게 준다바나나를 먹으며 딸기를 주었던 너에게가장 주고 싶은 것은 가장 받고 싶은 것이기도 한다는 것을 오후 늦게 알아버린 나는우유가 마른 동그란 숟가락 위에 제일 큼직한 걸로 얹혀 준다기타를 치고, 책을 읽고, 내일을 생각한다. 조금씩,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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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3-26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이게 땐 시리즈군요. 책 디자인이 하도 후져서 욕했었는데...ㅎㅎㅎㅎㅎㅎ.
전 비참할 땐 스피노자 읽었습니다. 책이 의외로 좋더라고요.
재미있길래 덥석 에티카 읽는데 이야, 스피노자 쉬운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ㅎㅎㅎㅎ

봄밤 2014-03-2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피노자를 읽으려고 했는데 이 책이 먼저 보여서 읽었습니다ㅎㅁㅎ 맞아요 그런저런 내용이 아닐까 했는데 좋은 안내서 같아요. 디자인ㅋㅋ 책에 기분이 있다면 뭔가 초연한것 같은 표정을 그린듯 해요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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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미나는 잠에 몰려 하루를 적어별것도 아닌 일 몇 개와 도저히 적지 않을 수 없는 일 몇 개를 불성실하게 써통째로 옮겨 놓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바닥에 배를 깔고 턱을 괴는 것은 필수야일기를 적는 몇 가지 원칙. 1. 간신히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만2. 가장 중요한 내용은 덜어내고진심이 촌스럽게 잘려. 사방에 흩어져몇 개는 그 날의 꿈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아. 버린 마음들은, 현실에서 질식하는 진심은 살아남으려고 몸을 틀.


아야미나는 잠에서 일어나면 꿈을 적어꿈이 오래지 않아, 없었던 일처럼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다는 허무.를 허무려고잠이 덜 깬 상태에서 띄엄띄엄 적어가정성스럽게 한 페이지를 다 채우는 날도 있는데정신이 들어서 읽으면 해독할 수 없는 오타로 가득해어떤 날은 "엄청난 꿈이었어"라는 말만 적혀 있어서, 그날은 일어나서 '엄청난 꿈'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는 것이 나의 일이야. 


아야미,

종이학을 접을 때정사각형의 종이를 반으로 접는 '순서'를 건너지 않고 날개를 펼 수 없듯이당신은 원하지 않아도 두 개로 나눠진 세계에 '차례'로 도착하는 왕복을 반복해야 해꿈에서 깬 당신은 꿈을 받아 적고오늘의 끝에선 당신은 오늘을 받아 적는-각각 한 차원에서 가능한 한 가지 일들을 맞아그러나 


'꿈에서 막 깬 당신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늘을 받아 적었다.' 어떨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 없는 순환이 시작되겠지더 이상 두 세계를 왕복하지 않는다면 꿈과 오늘을 나눌 수도나누려는 이유도 존재하지 않겠지종이접기를 시작한 적이 없는데, 손끝은 날개를 펼치려는 장면에 닿아 있어.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는 만들지 않은 종이학이 부유해그곳에는 꿈도 오늘도 모두 '행방불명'해서 '무엇을잃어버렸다는 느낌도 없고, 그래서 그것을 '찾으려는'것도  무의미해띠를 잘라내 하나의 완전한 고리를 다시 만들기 전까지그러나 그 띠의 둘레를 걸으며잘못된 곳을 찾는 것은 어떤 시간 속에도 불가능하지아야미, 당신이 무심코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를 잘라내기 전까지 말이야당신이 머무는 모든 곳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아야미.


그러나 당신이 아니더라도, 두 개의 세계를 오가지 않고 오로지 한 곳에서만 살기로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아는 당신은. 그들과 이야기 할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미리 말해주는 사람처럼 아야미. 친절하게 당신의 꿈 속에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구나. 몇 개의 직업과 몇 개의 얼굴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이 당신의 진짜일지 궁금하지 않아. 중요한게 아닐테니까. 그러나 나는 충실하고 성실하게 오늘과 오늘을 매일 건너서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를 엿보고도, 진심을 온전하게 한 곳에 적을 수가 없구나. 다만 당신의 세계를 나에게 빗대 그곳은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지. 그렇다면 아야미. 당신은 나의 세계, 모든 곳이 잘못되었다면, 네가 건너고 있는 두 세계는 온전한가. 묻겠지. 대답은 매일 '촌스럽게' 뜯긴 자국들이 붙잡아 놓았던 책의 구절로 대신할게. 한밤의 일기보도, 뱃사람들을 위한 바다의 일기예보. 내가 결코 들을 적 없던, 시작되는 말 사이의 무수하게 찍힌 온점들로.


한낮의. 기온. 섭씨. 삼십. 구도. 바람. 없음. 그늘. 없음. 여니에게. 전화해. 주세요. 삼십. 구도. 바람. 없음. 그늘. 없음. 한낮의. 도시. 신기루. 현상이. 나타날. 예정. 바람. 없음. 구름. 없음. 하늘. 의. 색깔. 없음. 여니에게‥여니에게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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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솔로몬 노섭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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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감지 할 수 없는 것에 무감각해진다. 비근하게 숨을 쉬는 일에 온 힘 들이지 않는 것이 그렇고, 신용카드 정보 누출 같은 일에 화를 오래 내지 않은 것이 그렇다.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대상에게 감정을 오래 투사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무감각해지는 것은 벌어진 상황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상관 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 같다. 그래서 자연에게 엄청난 은혜를 받고 있어도 별로 고마운 줄 모르고, 신용카드 3사로부터 -모든 개인정보가 털린- '막대한 침해'를 겪었음에도 그다지 분노하지 않는다.   

노예 플랫은 12년 동안 맞았던 채찍의 횟수를 다 기억할 수 없다. 12년 동안 맞았던 채찍으로 '주인'의 본성을 표현할 수도 없다. 자유인으로 인정 받은 후, 더 지독해졌을 엡스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랫은 노예로 지내는 12년 동안 놀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인간'이 벌이는 잔인함에 무감각해지지 않은 것이다. 플랫은 시시로 놀란다. 채찍질이 벌어지는 광경과 매질의 깊이가 이제 익숙해질만도 한데. 어제 보았던 일이 오늘 벌어지는 것에 '또' 놀란다. 잔인함의 감지할 수 없는 크기, 그 겁없음에 말이다. 그래서 <노예 12년>은, 노예로 지냈던 날들의 참상을 고발이 아니라, '주인'의 잔인함에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자신과 싸웠던 날들의 기록이다. 플랫이 육신의 비참함에 가려 놀라기를 그만 둬 버렸다면, 플랫은 '솔로몬 노섭'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다시 찾을 수 있었을까. 이 책 역시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노예 '12년'은 한 권의 책이고, 그것은 한 두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12년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이 정도'의 시간이지만, 플랫이 겪었던 12년을 보편적인 시간으로 환산할 수 없다. 어떤 숫자를 이어 붙여도 그가 겪은 낮밤을 합당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플랫이 이름을 찾던 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기쁨은 어디에 자리 잡아야 좋을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패치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부 짖는 소리가 들린다

플랫 덕에 수많은 채찍질을 피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자유인이 된다니 기뻐요 - 하지만 , 오! 주여, 주여! 전 어떻게 될까요? 295

패치에게 위로를, 플랫이 자유인이 되고나서도 매질을 견디고 마침내 죽었을 무수한 패치들에게 배스의 말을 전한다. 이 한권에 패치와 배스의 말이 모두 들어 있으나 끝내 서로 만날 수 없던 목소리다. 이렇게라도 잇는다면 들릴까.

무시무시한 죄악이 이 나라를 짓누르고 있어요. 언젠가는 그에 대한 처벌을 받을 겁니다. 그걸 심판할 날이 올겁니다.-그래요, 엡스. 화덕에서처럼 활활 타오르는 날이 올 거예요. 어쩌면 조만간, 아니면 나중에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신은 공정하시니 틀림없이 그날이 옵니다. 256

그러나 그날은 언제 도착하는 것이며, 노예는 과연 '노예제 폐지'와 함께 사라진 것일까. '그렇다'는 대답은 언제 누가 할 수 있을까. 이름 모르는 섬에서 '노예'로 감금되었다가 탈출했다는 뉴스가 바로 귓전에 있고, 형제복지원이 간판만 바뀌고 그 고통은 지속되고 있다는 뉴스가 바로 어제에 있었는데. 인간은 마침내 자신의 자유를 다 확인하고 나서야 다른이의 자유를 둘러볼 수 있고, 인간이 누리는 자유는 늘 다른 이를 침해해야 만족하는 자유 같아서 나는 책을 읽는 오늘의 자유를 '불편'하다고 느낀다. 혹시 자유는, 자유를 '문득'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으로부터 진정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닐지

'자유'라는 이름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나는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아주 공평히 말해서, 내 자유에 대한 권리는 도로 정비라는 이름으로 뿌리째 뽑히는 플라너스의 권리보다 조금도 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무리 많이 가져가도 말 한마디 한 적 없는 자연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고, '고맙다'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또한 나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기업에게 분노를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어떤이에게는 내 자유가 나 이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고, 어떤 이에게서 내 자유는 한없이 쪼그라 들었다. 당신이 갖고 있는 자유, 역시 그렇지 않나. <노예 12년>은 내가 가진 자유 이상의 가치, 모두의 자유를 생각하게 한다.



*
물론 자기 재산을 잃는 건 힘든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건 댁의 자유를 잃는 것과 비교하면 별로 힘드지 않을 겁니다. 
아주 공평히 말해서, 댁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저기 엉클 에이브럼의 권리보다 조금도 크지 않아요.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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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3-26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밤 님 글은 항상 집밥 같은 맛이 있습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선에서의 절충 같은.....

봄밤 2014-03-26 21:2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제가 깡마르는군여!! 그럼 저는 외식을 하러가야겠습니다.

찬이 별로 없어서...곰발 님 맛난 것 싸와서 같이 들어요.... : ) 헤헷

곰곰생각하는발 2014-03-26 23:38   좋아요 0 | URL
날씬하다고 자랑하시는 겁니깡 ~~ 수많은 여성 알라디너들에게 돌맹이 맞을거임 ~

봄밤 2014-03-27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일입니다 ㅠㅡ즈이집 집밥이 며칠 내 오뚜기밥이었던걸 떠올리다보니 그만..!!
 
[전자책] 피터 판과 친구들 기린과숲 e시선
유형진 / 기린과숲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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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판과 친구들

 

'피터 판'에서 두 가지*를 떠올린다그것은 '피터 팬'의 심심한 변용일 수도 있고피터라는 이름의 판Pan이라는 가능성일 수 있겠다는 것피터 팬은 그 유명한 동화 속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요새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Pan은 목신산과 들에 살면서 가축을 지키고 춤과 음악을 좋아하며 명랑한 성격을 가졌다는 반인반수다첫 장을 넘기고 피터 판이 '피터 팬'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의 친구들이 그다지 매력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후문이다.) 피터 팬의 친구라면 팅커벨이라든가혹은 팅커벨이 아닐까그러나 피터 판의 꿈과 모험을 제일 먼저 맞는 이, <초록코털괴물>이었다그래서 피터 판은 판Pan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패닉'이라는 말이 판Pan에게서 유래한 사실을 아는지간혹 잠들어 있는 인간에게 악몽을 불어넣어서 그렇다고 한다뿔난 망아지처럼 초원을 뛰어다닐 피터 판의 '친구들'을 만나자그리고 잊지 말자우리가 만나야 하는 것은 바로 '피터 판'이라는 것을.

 

피터 판과 친구들이 떠날 곳이 <허니밀크랜드>라고 했을 때 [워터멜론 슈가]가 잠시 떠올랐지만, <초록코털괴물>과 <풍선머리조종사>와 <옷걸이요정>의 생김새를 떠올리느라 둘의 연관성을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렸다다음에 또 읽으면서 [워터멜론 슈가]와 <허니밀크랜드>의 유사점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데 친구들 이름이 뭐라고요또 잊어버리고 말았다. 성급한 결론은, 우리가 가보지 못하는 세계는 저마다 비슷한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 황홀하지만달콤하고 아름다운 만큼 현실의 추접스러움과 절망스러움을 동반한다는 것. <허니밀크랜드>도 다르지 않다. '흑탕물과 폐유가 뒤섞여 흐르는 여름날의 어떤 아스팔트에 서서 우리의 계약을 떠올립니다.'「피터 판과 친구들 프롤로그」 부분.

 

피터 판과 친구들이 '에피소드 12'까지 만들동안 피터 판은 등장하지 않는다그러나 피터 판의 친구라고 소개하는 이들이 피터 판의 분신이라면피터 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고 있는 셈이다짐작했겠지만. <초록코털괴물>과 <옷걸이요정>, 그리고 <풍선머리조종사>는 피터 판의 친구가 아니라 피터 판 '마음 속'에 사는 친구들이다이들은 각기 피터 판의 한 부분씩을 맡고 있다합치면 피터 판의 모습을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시도하지는 않겠다. 어떤 '윤리'라는 생각이다.

 

피터 판은 이렇다.

<초록코털괴물>처럼 '행복'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행복하다그러나 <옷걸이요정>처럼 행복을 돈을 주지 않고 살 수 없다고 믿는다그래서 나의 다른 일부, <초록코털괴물>에게 늘 1700원씩의 행복을 산다. (이름으로 미루어 볼 때 마음이 가장 예쁘게 생긴 것 같은)<초록코털괴물>은 거울보기 좋아하는 <옷걸이요정>을 사랑한다그러나 <옷걸이요정>은 <초록코털괴물>의 1700원치 행복을 사랑할 뿐이다이 둘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는다. <초록코털괴물>이 <옷걸이요정>을 사랑하면 할수록 <옷걸이요정>은 불안하다행복을 사지 못할까봐. 그러나 <초록코털괴물>은 짝사랑에 슬퍼하느라 행복해’, 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눈물로 다 흘려버린다둘은 다른 곳에서 살아야 맞는 것 같다그러나 한 마음 속에 틀어 있다피터 판의 마음속에는 <초록코털괴물>이 있는가 하면, <옷걸이요정>이 있기도 해서 심란함이 그치지 않는다그리고삼천 번 죽고도 살아있는 <풍선머리조종사>도 있는데, <풍선머리조종사>는 매일 죽고도 살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이 둘의 괴리를 벗어나고 싶다.


<풍선머리조종사>는 <초록코털괴물>을 무척 싫어한다싫어하는 이유는 나오지 않는데 나를 근거해서 추측해 보건데아마도 병신 같은 나를 싫어하는 이는 누구보다 나인 경우여서가 아닌가 한다행복하면서행복을 팔면서 <옷걸이요정>에게 눈물을 질질 짜는 <초록코털괴물>이 꼴도 보기 싫다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두통이 자주 오는 <풍선머리조종사>는 여행가기를 좋아한다조부모에게 물려받은 바람이 <1밀리바>씩 빠지는 풍선 머리를 치유하기 위해 떠도는 것이다직감하겠지만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다시 풍선으로 태어나지 않고서는그리고 풍선머리조종사가 계속 여행할 수 있는 것은매일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 판의 친구들은 친절하게도 외양을 알 수 있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모습의 일부에만 집중해 부르느라 전체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이렇게 흔한 비유를 들고 싶지는 않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다. <초록코털괴물>이라는 이름은 초록코털은 쉽게 떠올일 수 있지만 초록코털이 있는 얼굴, 다리(?)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옷걸이요정>은 옷걸이의 모습 그대로다. 요정이라니 우드재질에 고급스런 마감을 갖으려나 상상할수도 있지만 우리집에는 그냥 세탁소에서 주는 흰색끈으로 감은 철사 옷걸이가 많으므로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옷걸이요정>을 생각하면 왜 행복을 돈으로 주고 사야 안심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어떤 옷이든지 입어 볼 수 있지만 모두 거울이 있는 옷장 속에서만 한정된다. 어떤 옷이든지 입을 수 있지만, 어느 것도 자신의 옷일 수는 없다. (게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은 그야말로 걸치고 있을 뿐일 수도 있다!) 옷을 입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옷걸이요정>은 거울 속의 자신만 볼 수 있다. 이 허함, 허무함을 1700원으로 위로하는 알뜰함을 생각하건데, 그는 분명히 세탁소 철사 옷걸이일 것이다. 


<풍선머리조종사>역시 마찬가지이다. 외양은 '풍선'일 것 같은데 '조종사'라고 하니 떠올리기 쉽지 않다. 후에 양파를 좋아한다든지, 양파망을 하고 있다든지 세부적인 묘사가 나오지만 그것 역시 아주 일부를 표현하는 것 뿐이다. 피터 판은 친구들의 속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 하면서도 그들을 잘 구현해 내지는 못한다. 이것은 불러내는 이가 친구에 대해 아는 것이 '이만큼'이라는 한정일 수 있고, 그들을 훤하게 손바닥 보듯 보고 싶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가능성을 후자에 두고 싶다. 이유로 '비밀이 없는 영혼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어떤이의 말로 대신하자. 자기 마음 속의 친구를 알아보는 일이라도 그렇다. 나의 끝까지 달려나가, 내가 모르는 나의 원초를 파내서, 내 욕망이 부딪히는 소리를 모두 받아 적는다. 이것은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아름답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달그닥 거리는, 서로 다른 마음의 아주 '일부분'만을 알아채고 적는다. 이를테면 '삼키는 눈물'의 맛 같은 것. '휴가철 막힌 고속도로에서 파는 뻥튀기의 뻑뻑한 맛입니다.' 피터 판과 친구들 프롤로그」 부분.


친구들을 만나다보면, 에필로그다. 그곳에 '슈퍼문'이라는 기막힌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동네 슈퍼문(세븐일레븐)은 일단 닫히지를 않아서 언제 열릴지를 모르는데, 시인의 말에 따르면 '행복이란 슈퍼문처럼/동네마다 문 여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지만/일생에 한번은 무심코 쳐다본 슈퍼문으로부터/얼음같은 총알이 날아와/당신 심장에 박힐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피터 판과 친구들 에필로그」 부분. 라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더 쓰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여 놓았다. 


그때 당신은 살고/내가 대신 죽겠습니다.'

「피터 판과 친구들 에필로그」 부분.

 

겁도 없이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시인이다. 

나는 이제 '피터 판'과 '친구들'을 다 만났다시집을 덮으면 이영주 시인의 간결하고 다정한 발문을 만날 수 있다이제 내 친구들을 불러야겠다하나 둘셋 넷‥‥. 이름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름을 잊고 있었던 친구다. 우리동네 슈퍼문이 잠시 밤을 갖고, 무심코 열리는 날까지 불러봐야겠다.

 






*(궁금) 피터 래빗에서 왔을 가능성은 없나요? 라는 제보가 들어왔다. (답변) 토끼는 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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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백이호 옮김, 이인식 / 김영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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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은 철선의 굽은 곡선처럼 매우 서서히 우회적으로 지금의 형태로 진화했다그 형태는 평범하지만 내재된 연관성은 엄청나게 복합적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은마치 100개의 클립이 들어 있는 상자 안에서 특별한 클립을 하나 집어내는 것처럼 자의적이고 어려울 수 있다이제 문화와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인공물 자체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면클립의 꼬리가 서로 엉켜 연결되는 것처럼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99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는 디자인과 공학에 초점을 맞춘 책이지만명확하게 보이는 분야에 권장하면서 진실로 맥락이 닿아 있는 어떤 분야에 추천하는 것을 잊은 것 같다아니, 그 '어떤 분야'가 생소해서 이름을 모르고 넘어 간 것일수도 있겠다. '이해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 '고고학'을 배우는 이들에게 유용한 교양서로 읽힐 만 하다. 물건을 '만드는 입장'에서 '물건의 변화'를 바라보면서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이라고 너무 놀라진 말자. 글자 그대로 옛것古을 생각한다考는 분야일 뿐이다. 인공물을 살피는 이들의 눈매는 그것을 만든이의 눈이 오래 머문 곳을 찾는다. 인공물의 시기와 맞물린 흥망무엇보다 어째서라는 물음을 늘 지녀야 할 이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또는, 반대로 고고학적으로 인공물에 접근하는 태도가 디자인과 공학 분야에서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헨리 페트로스키가 포크와 나이프를 나열하고 시간에 따른 변화를 살펴보는 방법은 고고학 수업을 떠오를 정도였다. (더 궁금한 사람은 몬텔리우스의 형식학적 방법과 페트리의 계기 연대법을 참고하면 좋다.) 책의 내용은 경영과 디자인, 그리고 발명가들의 입장에서 유익한 '관점'을 제공하려는 것 같다. 바로 여기에서 고고학적 측면으로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 것 같은데, 어려운 것 아니고, 그저 옛것을 생각한다는 단순한 마음가짐으로 소개해 보려 한다.


일단 포크가 네 갈퀴를 갖게 되기까지 여정을 (고고학적으로)따라가 보자포크가 다량 확보되어야 한다. 시기를 알수 있으면 좋지만 알 수 없어도 좋다. 그리고 포크의 원료공정의 가짓수, 형태등에 따라 나누는 작업을 시작한다포크의 머리몸의 길이곡선의 휘어짐어떤 것이 시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지 캐낸다그리고 포크를 사용한 계층의 파악도 잊어서는 안 된다한 시기에 통용된 포크라 하더라도 귀족이 쓰던 포크와 일반인이 썼을 포크의 양식이 같을 리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포크의 발달을 살펴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의 발달은 지역마다 다르고 계층마다 다르다. 또한, '복고'를 최초의 출현으로 착각하는 오류는 금물이다. 1920년대 유행했던 옷 스타일이 2000년대 들어와 다시 유행하는 '복고'는 옷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인공물에게도 돌아온다. 21세기인 지금도 백자 세트를 생산해 내는 것처럼 말이다. 


 포크는 식탁에서 중요하고 싶고, 뽑내고 싶어서 쓸데 없이 열 갈퀴를 가질 수도 있었다. 갈퀴마다 작은 톱니를 세워 음식물을 빠트리지 않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왜 네 갈퀴의 단순한 디자인으로 굳혀진 것일까. 인공물이 가장 발달한 후에는 순수하게 '필요한 기능'과 사회 문화가 '요구하는 부분'을 집중해 오히려 이전보다 쇠퇴한 경향을 보인다. 모든 발전과 양상을 경험한 물건의 최종태는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책상이 직사각형에 네개의 다리를 가진 것은 '생활'이 그런 책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책상은 아직도 다양한 형태를 꿈꾼다. 그러나 그것이 집집마다 쓰이기까지는 멀고 먼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네 갈퀴의 포크가 마침내 괜찮은 것으로 자리 잡아진 후에도 어느 시기에는 갈퀴를 두 개 가진 포크가 유행 했을 수도 있다. 그 시기 유독두 갈퀴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대 유행 했다거나아니면 유난히 원료인 철이 모자랐거나(전쟁 등으로 인해)때문에, 물건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원인은 사회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사람이 가장 자주 쓰는 것이 가장 민감하게 변한다. 사람은 죽고 없지만쓰던 물건들은 남아서 후세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옛것을 보고 생각한다는 학문은 결국 나 이전에 나처럼 살았을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이 책을 단순히 물건의 발달과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생각을 키워주는 것, 또는 앞으로 발명될 물건에 대한 가능성을 따질 수 있는 도구로 덮어두지 않기를 바란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종 다양하게 늘어난 포크를 보면서, 유난히 먹을 것이 풍족했거나 풍족하기를 원했으며, 그것을 사치스럽게 먹는 것을 우선의 가치로 삼았을 사회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물건의 발명에는 그것을 사용하면서 지냈던, 그리고 지낼 사람들의 생활 에 관심 갖고 이해하는 일이 우선한다. 


인공물의 진화와 유행쇠퇴를 읽으며 진실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지점은 디자인과 기업 아이템의 흥망이 아니라그 속에 있는 생활의 변화일 것이다기업의 이익 때문에(깨끗해 보임, 정돈된 이미지, 보온효과) 출시됬던 맥도날드의 대합형 플라스틱 폼 포장은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종이 포장을 고수하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가장 유용한 제품은삶을 가장 잘 이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란현재 살아가고 있음을 충실히 알 뿐만 아니라, 지금 이전과 이후 모두를 고민할 수 있는 것에 있다.



 

유물을 기술하는 이들은 그 시대 쓰였던 물건의 이름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알 수 있는 물건과 빗대어, 또는 기능을 추측해 이름을 짓는다. 이것에 경종을 울릴 만한 일화가 이 책에 다양하다우선

 

1860년대 영국 버밍엄에서 망치의 종류가 무려 500가지나 된다는 사실에 마르크스는 크게 놀랐지만이는 결코 자본가의 계략 때문은 아니었다만일 어떤 계략이 있었다면 오히려 더 많이 만들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망치의 종류가 급격히 불어났던 이유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특수하게 쓸 곳이 많기 때문이었다. 257

 

500가지나 되는 망치의 종류라니! 망치의 이름을 오백개를 생각해 본다이렇게 다양한 숫자라니아무리 상황이 다르다고 해도, 5세기쯤에도 망치가 열 종 정도는 번듯한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은 무리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당시 전해진 물건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고루하다. 지금의 망치를 자세히 살피면서 거슬러 올라가는 느린 길에 전해지지 않은 망치들의 이름이 있을 것이다.

 

또 놀랐던 것은 공방에서 도구를 부르는 이름에서였다. 저자는 윌리엄 스미스에 대한 회고록에서 장인의 마음과 공구의 진화에 관한 실감나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어느 의자의 이름은 '퍼진 엉덩이'였다옹기장이는 작업실에서 이 의자가 보이지 않으면 "퍼진 엉덩이 가져와!"라고 소리를 질렀다다른 의자는 '늙은 영감태기'라고 불렀다그중 가장 쓸모가 많으면서도 이름이 기묘한 의자는 외발의 '아무도 아닌 놈'이었다. 196

 

근엄하게 유물의 형태를 추출해 이름 붙였던 것들이 퍼진 엉덩이나 늙은 영감탱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게다가 아무도 아닌 놈이라고 부르고 애용했을 수도 있다이런 이름만 전해진다면당시 공방의 생활이나 활력삶에 더 밀접하게 다가갈 수 있을텐데, 남지를 않는다그러나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큼은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작은 일화에 오래 머물기를지금도 공방에서는 그런 이름들로 도구를 부르고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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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3-22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 이런 미시적 역사서 좋아합니다. 재미있겠군요.

봄밤 2014-03-23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코, 하지만 역시 미시역사서라기 보다 역시 디자인 발달사/비화로 읽는 편이 더 맞는 것 같아요. 리뷰를 고쳐야겠어요ㅠ
포크가 네 갈퀴를 갖게 된 이야기는 제가 상상(?)을 가미한 것입니다요. 책에 당시 문화나 사회양상까지는 다루지 않습니다.